대학원 가는 날이다. 일주일에 두 번. 오늘이 두 번째 요일. 골든라인을 타고 김포공항역에서 9호선 급행열차로 갈아타고 30분 간 앉아 가면서 유튜브를 이어서 봤다. 나르시시스트에 관하여 정신과 전문의가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영상이었다. 나르시시즘이라는 것이 단순히 자기애적 인격장애인 건 줄 알았는데 깊이 들어가니 종류가 다섯 가지나 됐다. 흥미로운 영상을 끊고 다음 3호선으로 다시 환승하기 위해 고터(고속버스 터미널 역)에서 내렸다.
터널같이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게이트를 통과하고 또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양쪽으로 맞대어 있는 에스컬레이터 중 한 대는 고장이 났는지 기술자 분들 여럿이 모여서 에스컬레이터 상단을 해체하고 내부를 수리하고 있었다. 난 그 반대편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했다. 거의 플랫폼에 다다랐을 때 3호선 열차에 올라타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내 바로 앞사람이 급하게 뛰어갔고 나도 덩달아 뛰어갔으나 내 코앞에서 열차의 이중문이 닫히고 말았다. 잘못했다가는 코가 베일 뻔했다. 그리고 바로 내 뒤로 누군가 툭 하고 부딪혔다. 돌아보니 70대 정도로 보이는 어르신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도 아쉽긴 나와 매한가지인 듯했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같은 플랫폼 조금 옆에 서 계시던 다른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웃고 계셨다. 그것도 아주 환하게. 나는 아무 감정이 없는 상태였지만 - 시간이 많이 넉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많이 아쉬운 상황은 아니어서 - 나를 바라보고 이를 드러내며 귀엽다는 듯이 웃고 계시는 할아버지께 미소로 화답을 해야 할까 싶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관계는 아닌지라 난 무표정을 유지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뒤 스테인리스로 되어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잠시 모구모구 피치맛으로 목을 축이고 핸드폰을 들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눈에 어떤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분이었다. 60대는 요즘 노인이라고 부르지도 않지만 60대 노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명랑한 모습이었다. 노인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에 가까웠다. 모자를 쓰고 등 뒤에 가방을 멨고 실내화 주머니 같은 네모난 가방을 들고 계셨다. 그런데 그 가방을 그냥 들고만 가시는 게 아니라 앞뒤로 마구 흔들면서 경쾌한 발걸음으로 걷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 초점이 정지했다. 아니 그분을 향해 시선이 따라갔다. 마구 따라갔다. 내 앞 먼발치 구간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내 눈은 그분을 향해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저스트 텐 미닛도 아닌, 저스트 텐 세컨즈(just 10 seconds) 그 짧은 시간이 꼭 영화처럼 느껴졌다. 이런 말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너무 슬픈 영화를 한 편 보는 느낌이었다. 그 노인분의 모든 것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속상했다. 처절하게 속상했다. 과한 연민이었는지 몰라도, 내가 오만한 발상을 한 건지는 몰라도 그분의 지난 인생이 어땠을지, 어떤 삶을 살았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그냥 눈에 밟혔다. 그분의 부모님은 살아계실지, 아니면 돌아가셨을지, 어떤 마음으로 그분을 키우셨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분은 생계에 대한 책임이며 경제적 활동을 스스로 잘 감당하고 계실지,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바깥활동을 하는 것 자체에 이제는 아무런 불편함은 없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오지랖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난 그분이 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머리와 어깨도 불규칙적으로 흔들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탄 후에는 그전보다 몸을 덜 흔드실 때, 마음이 저리고 눈물이 솟구쳐 오르는 걸 느꼈다. 잠깐 동안 눈물을 훔쳤다. 저스트 텐 세컨즈 동안 그분의 인생을 내가 알 수는 없었지만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을까를 생각할 때 내 앞에 놓인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그러나 그분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증상이나 병증이 한낱 비장애인의 눈에 연민으로 비친 것만은 아니리라. 그냥 그분이 거세게 팔을 흔들며 가다가 옆과 앞뒤로 사람이 빼곡히 들어찬 에스컬레이터에 오르자마자 가만히 서서 가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을까 염려가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동안 편견에 의한 불공정한 일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염려가 되었다. 혹시나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을지. 60년을 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어떻게 회고할지. 소아마비는 보통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병증이니까.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의도치 않은 소아마비를 안고 살아왔을, 그러나 남을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타인을 배려하며 사는 것이 습관이 된 그분의 뒷모습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사소한 눈떨림이 시작되기만 해도 이래서 바깥 활동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조급한 마음이 생기는 나에게 그분은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가셨다. 인생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인정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