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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Sep 27. 2023

편견의 값어치

 


오늘(9/26) 아주 잘한 짓이 있다.

 


전등 하나가 깜빡깜빡거렸다. 오늘 당장 수업을 해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전등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을까. 토요일부터 시작됐지만 토요일과 월요일엔 수 초만 깜빡거리다가 이내 불이 환해졌었다. 근데 오늘은 고장 난 로봇처럼 연신 깜빡여대니 수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부속품만 갈면 될 거라 생각하고 가까운 철물점으로 갔다.


철물점 사장님께 깜거리는 전등 동영상을 보여드리고 부속품을 갈 수 있으시냐고 여쭤 보았다. 사장님은 그 전등은 부속품 갈 수 없고 전등 자체를 갈아야 하는 거라고 하시면서 거금 25만 원이 든다고 덧붙이셨다. 그렇게 비싼 비용이 들어야 한다면 일단은 주인 분과 먼저 상의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수업을 해야 해서 그러는데 바쁘지 않으시면 깜빡거리는 전등만 꺼주시면 안 될까 하고 다시 여쭈었다. 방문해 주시면 수고비를 드리겠다고. 사장님은 출장은 무조건 3만 원이니 3만 원을 내면 된다고 대답하셨다. 와~~, 전등 뚜껑을 열고 전선 하나만 빼는데도 3만 원이나 들다니. 고약한 자본주의 세상!! 속으로 되뇌던 ‘너무 비싸’'비싸'라는 말이 뒤돌아 나오면서 입밖으로까지 툭 튀어나왔다.

 

10분쯤 후에 철물점 사장님이 방문하시었다. 사장님은 의자에 올라가 깜빡거리지 않는 전등 케이스를 열었다. 깜빡이는 건 오른쪽 건데 왜 왼쪽 거를 보시느냐고 물었다. 이쪽저쪽 중 어디에 연결된 전선을 빼야 하는지 내부를 봐야 안다고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찰나와 같은 시간 동안 주변을 정리했다. 3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이 흐른 후, 오른쪽 등은 깜박일 수조차 없이 스스로를 빛낼 힘을 잃었전보다 약간 어두워진 공간에서 나는 빳빳한 만 원짜리 지폐 세 장을 아까워하며 장님의 손에 건넸다.

 

사장님은 돈을 받으시면서

“무슨 과목 가르치시는 거예요?”하고 물으셨다.

“아! 네~ 저는 논술이랑 국어 가르쳐요. 세계사도 하구요.”

“그럼, 한 달에... 비용은 얼마예요?”

혹시 아는 분 있으세요?”

“아, 제가 결혼을 늦게 해서 애가 좀 어려서요오...”

“아! 그러세요오~? 중등은 십OO 원이에요.”

근데 우리 애는 공부를 포기해서…….”

 

사장님은 말끝을 흐리시고는 영수증은 사진을 찍어 폰으로 보내 주시겠다며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하셨다. 영수증을 받으러 갈 시간이 있었지만 그게 좋겠다고 나도 동의를 하고는 메모지에 번호를 적었다. 하지만 몇십 분이 지나도록 좀처럼 문자가 오지 않았다. 내일이 지나면 곧 연휴인데 연휴 중에 집주인 분께 연락을 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내일도 난 이곳에 올 일이 없었다. 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만두를 사러 갔다오는 길에 다시 철물점에 들렀다. 처음 방문했을 때처럼 사장님은 유튜브로 정치 뉴스를 보고 계셨다. 먼저 일을 처리하지 않고 유튜브만 보고 계시는 사장님께 약간 화가 났다. 기다리는 사람만 목이 빠지는 법이지. 나는 영수증을 받기 위해 그 옆에 다. 그때 사장님의 폰이 띠링하고 알람 소리를 내며 문자를 보여줬다. 노인분들이 보시는 글자 크기처럼 매우 큰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OO초등학교 알리미>라고. 그것도 두 번이나 연속으로 띠링띠링. 순간 아차 싶었다. 그 사장님의 겉모습만 보면 자식이 이미 성인이 되어 군대 정도는 갔을 법했는데 아까 말씀으로는 아이가 어리다고 했으니 적어도 중학생은 됐겠지 지레짐작했던 게 얼마나 지나친 우였는지. 얼마나 편견에 가득 찬 나는지!!

 

또 그 찰나에 정성스럽게 써 주신 영수증을 받아 들고서 뒤돌아 나올 때 나는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느끼며 등으로 사장님께 사죄를 드렸다.

 

'어차피 논술이든 국어든 세계사든 보낼 생각은 없으셨다 하더라도 아까 초등 논술비 안내 안 드린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제 맘대로 추측하지 않을게요. 드러나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게요. 세상은 수많은 벌집으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자기만의 벌집에 평생토록 꿀을 모으는 건데, 제가 사장님의 벌집을 제 마음대로 보았네요. 보이지 않는 일침을 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염치없지만  경솔한 생각과 말 때문에 마음 상하지 않으셨길 바랄게요. 꾸벅.'

 

총총총. 하루종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기에 길거리를 나오며 자동 반사적으로 까만 우산을 활짝 펼쳤다. 내가 초등 논술 교육비를 안내하지 않았을 때 우물쭈물하다가 차마 묻지 못한 사장님 마음이 어땠을지 자꾸 미안해져만 갔다. 3만 원 출장비가 나의 편견의 값어치에 비해 너무 싼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속을 찔렀다.


그래도 찔리는 마음이 있어 다행인 걸까. 사장님은 서운한 것도 없고 이제는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이는데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뒤돌아보며 나는 공중에다가 하염없이 입김을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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