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막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붙잡기 위해 멀리서 엘리베이터를 향해 숨을 할딱거리며 뛰어오는 참이다. 어후... 다행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뻔하다가 다시 열리고 간신히 엘리베이터를 집어 탔다. 헉. 한 칸밖에 없는 엘리베이터에 가볍게 점프하여 들어가니 낯선 얼굴이 당신을 반긴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은 하루를 통틀어 수백 명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엘리베이터를 상대적으로 작게 만든, 이 안에 먼저 타고 있다가 버튼을 눌러 준 사람이 흑인이라는 점은 조금 놀랄 만한 일이다. 키는 195cm 정도 되는 것 같고 덩치는 곰보다 더 큰 것 같다. 흰 달걀처럼 새하얀 흰 눈자위를 크게 확장했다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당신을 보며 윙크를 한다. 몸에는 광채가 흐르면서 피부가 매끈하고 근육이 울룩불룩 엠보싱이다. 민소매를 입고 반바지를 엉덩이 아래춤에 걸쳤다. 당신의 엘리베이터 종착층은 59층, 63 빌딩의 레스토랑인데 다른 버튼은 아무것도 눌러져 있지 않다. 희한하게 아무도 타지 않고 문도 굳게 닫혀 있다. 수직으로 상승할 뿐이다. 약간 긴장이 된다. 가운데에 떡 버티고 서있던 흑인이 버튼 앞쪽 구석에 웅크리듯 서있는 당신의 쪽을 향해 몸을 기울인다. 순간 당신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흑인을 만나는 상황을 표현하려다 이렇게 됐다. 자정까지 시간이 28분까지밖에 안 남았으므로 수정은 할 시간이 없다. (100일 글쓰기 실천 중, 밤마다 자정이 되기 전에 글을 쓴다. 1일 1글쓰기가 조금씩 몸에 배고 있다.)
이런 상황이 아니어도 만약 당신이 혼자 길을 걷는데 흑인들 여럿이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면 어떨까?
<내 안의 차별주의자>를 읽다가 내 안에 있는 차별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흑인을 많이 만나본 건 아니지만 주로 길에서 마주쳤던 흑인은 원어민 선생님들이었다. 몇 초 정도 스치고 지나간다 하더라도 여운이 10배 정도로 길게 남았던 것 같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아! 우리나라 진짜 글로벌 국가네~ 흑인들도 이렇게 많이 오고! 하는 거였지만 만약 흑인들의 수가 훨씬 많아져서 우리나라의 곳곳에서 흑인을 흔하게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남아 지역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처럼 흑인들도 노동을 하러 많이 들어온다면.
뭇매를 맞을지 모르지만 마음이 약간 불안해질 것 같다. 내 안에 차별주의가 있기 때문일까. 어떤 인종이든 차별 없이 동등한 인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보는 아닌데, 그럼에도 이상하게, 증명할 수 없이, 흑인이나 동남아 남성들에 대한 편견은 내 뇌세포의 어딘가 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16세기 중반에서 19세기까지 아무런 잘못도 없는 흑인들을 노예로 팔아먹고 노동력을 착취했던 서양 열강에 대하여는 손가락 열 개로 모자라 두 손 두 발 들고 비판해 마지않으면서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지금의 변화된 현실에서도 차별 의식을 갖고 있다는 건 정말 두 손 두 발 들고 아연실색할 일이다.
어느 인종이 잘났고 어느 인종이 못났는가를 따지는 것은 어떤 학문에서도 주소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의식에서도 찾을 수 없어야 한다. 백인의 고운 자태와 금발의 미녀를 보며 부러움을 금치 못하고 흑인들의 흰 눈자위와 희끄무레한 손바닥은 검은 피부로 하여금 더 두드러진다고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는 것은 비열하고 못난 의식이다. 행여나 나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나를 무섭게 하지는 않을까, 우리나라에는 무얼 하러 왔을까, 왜 어떻게 오게 되었을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비양심적인 행위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분노를 느낀다. 내가 왜 어디가 못나서,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고 소리치고 자다가도 이를 박박 간다. 그렇다면 이 지구상에 행복하게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흑인들에게 그 존재 자체로, 그 피부색 자체로, 그 생김새 자체로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대하는 건 무엇인가? 그건 무의식과 의식이 손잡고 만들어 낸 폭력이다. 그 또한 묻지 마 폭력인 것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남녀평등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물론 남녀평등이란 것도 아직은 허울뿐이지만, 그럼에도 과학 기술의 변화와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조금씩은 변화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인종에 대한 차별 의식은 여전한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유럽에 가면 유색인종이라고, 혹은 중국인이라고 차별받고 폭력을 당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 이제 나라도 그런 생각은 일절 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차별주의자>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 한 토막 적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