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끌렸지만 감상은 미루고 있던 영화가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 집 영화를 볼 타이밍이 온다면 다른 건 검색하지 않고 이 영화부터 보리라 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제목을 보고 나는 나름대로 줄거리를 상상했다.
한 가족이 있고 그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달라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아버지는 아들의 행동을 제압하려 하고 자기 뜻대로 아이를 조종하려 한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윤택한 삶을 아들이 대신 성공적으로 이루고 폼나게 살아내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고삐를 부둥켜 잡아 흔들수록 아들은 엇나간다. 아들 역시 아버지만큼 고집과 집념이 넘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어 하기에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가치에 등을 돌린 채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에만 빠져 산다. 그렇게 둘의 사이는 겉돌고 아버지는 가난과의 사투 속에 시들어가고 결국 병을 얻어 죽고 만다. 아들은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듣지만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끝내 찾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난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기에게 퍼부었던 것은 단지 폭력이나 집착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인생의 의미, 사랑의 의미, 집착의 의미, 고난의 의미,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면서 가슴이 아린 곡들을 만들게 되고 싱어송 라이터로 인기를 얻고 대스타가 된다. 가수가 된 그의 삶은 그전에 자유롭게 살았던 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지고 명성과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지만 가슴은 점점 텅 비어 버리는 허망함에 빠진다. 그렇게 외로움과 고독에 사무쳤을 때 어느 바(bar)에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하룻밤 풋사랑으로 여자는 혼전임신을 한다. 책임감이 강했던 그는 곧바로 대중에게 사실을 천명하고 간소한 결혼식을 올린다. 9개월 후 그는 갑자기 아버지가 된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인생의 수레바퀴가 이렇게 굴러갈 수도 있는 거구나, 급상승하는 물체는 그만큼 빠른 속도로 추락할 수도 있는 거구나, 인기는 글러먹게 되었지만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된다더니 나는 아버지와 직업을 잃었지만 아내와 아들을 얻게 되었구나 하고 어느 날 일기를 쓴다. 치매에 걸렸지만 아직 살아계시는 어머니를 찾아간 날, 어머니는 방에서 나오며 아들에게 두툼한 노트를 건넨다. 아버지가 꼭 전해주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이 났다며 어설픈 미소를 짓는다. 그는 노트를 넘겨본다.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너무나 정성스러워서 이 한 페이지를 쓰는 데 얼마가 걸렸을까 코끝이 시큰해진다. 아버지는 장성해 가는 아들을 여전히 사랑했지만 폭력 속에 자랐던 환경 탓에 그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자신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 한 권의 글은 아들에게 주는 메시지였지만 자기 삶에 대한 회고록이었고 한 사람의 인생이었다. 고장 난 기계처럼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후회와 번민과 아쉬움과 연민, 그리고 미안함이 눈물과 뒤범벅되어 있었다. 투병 중에 고통스러운 통증이 시야를 가렸지만 그래도 한 자라도 더 쓰려고 애를 쓴 흔적이 떨리는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는 글씨로 남아 있었다.
아들은 그렇게 아버지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다. 돌아가실 때조차 찾아가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고 탓한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땐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살아갔던 자신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갓 태어난 아이에게 자신은 절대로 원망의 대상이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컸고 기고 걷고 뛰었으며 아빠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인 것처럼 잘 따랐다. 자신이 아들의 전부가 되고 자신도 마찬가지로 아들이 전부가 되는 큰 사랑의 감정에 자꾸 시큰한 눈물이 터져 나온다. 아이를 위해 더 많은 것을 주고 싶고 더 많은 걸 배우게 해주고 싶은 욕심이 커져 가지만 자신은 점점 무능해져 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아들이 편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자신의 능력을 한탄하게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물론 아버지가 행했던 폭력은 절대 따르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들을 향하는 진정한 사랑의 감정이 무엇인지 가슴으로 느끼고 그렇게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내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었지만 내가 지어낸 줄거리보다 훨씬 더 감동이 컸다. 가슴이 미어져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영화 자막이 올라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케이타’의 마음속에 있었다. 우리 큰아들의 어렸을 적 모습, 말투, 행동이 너무 비슷했고 ‘우리 아들은 왜 이런 걸 잘하지 못할까’하고 속으로 속상해했던 내 모습도 케이타의 아버지인 ‘료타’와 비슷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똘망똘망한 두 눈, 또박또박 말하는 케이타가 너무 사랑스럽지만 뭔가를 해도 조금 더 잘 해내기를 속으로 바랐던 과거의 나도 영화 속에 있었다. 지금의 나는 180도로 바뀌었지만 과거의 나는 그랬다. 료타랑 비슷했다. 그런데 우리 큰아들이 다른 아들과 바뀐 아들이었다면!! 아~ 정말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이다. 절대로 현실이 되어선 안 될 일이다. 내 인생의 반을 큰아들을 위해 살았고 지금도 큰아들은 나에게 절대적인 존재다. (물론 작은아들도!!) 큰아들에게 이렇게 더 미안한 건 지은 죄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공생관계가 되었다. 눈 어두운 코뿔소와 등쪼기새처럼 말이다.
아들아, 우리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 엄마가 죽기 전에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말이야. 나의 과거는 료타랑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한 가지는 절대로 다른 점이 있어! 나는 아들을 누군가와 바꾸지 않을 거거든. 내 핏줄을 받은 다른 아이가 있더라도 절대로. 넌 원래 내 아들이었고 지금도 내 아들이고 영원한 내 아들이니까. 그래, 나도 너 덕분에 그렇게 엄마가 되었어. 사랑해. 아들..
p.s. 이 영화의 감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주로 가족 이야기를 영화화한다. 2022년에 나왔던 <브로커>라는 영화도 이 감독의 작품. 나는 어떤 영화든지 인간의 내면 심리를 다루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그런 작품을 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2018년의 <어느 가족>이나 2016년의 <태풍이 지나가고>는 보고 싶다. 참고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2013년의 영화였다. 와~ 10년 전 영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