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정 Oct 11. 2023

성스러운 마리아의 초상, <11분>


마리아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고, 아직은 하나의 시도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리아는 지금 자신이 덜컥 결정을 내리도록 만드는 감정, 절망이라는 감정에 의해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 오늘 당장 시작하겠어."

- <11분>, p,94


마리아는 절망과의 싸움에서 아직 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기지도 않았다. 그저 새로운 시도에 자신의 온 마음과 몸을 내맡기고 그저 자신의 삶이 흘러가는 대로 뭔가에 이끌리는 듯한 운명에 기대보고자 했다. 아니, 그녀는 스스로 일종의 의식을 갖추고 훌륭한 여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자신의 운명을 따르면서도 동시에 맞서는 삶을 살기로 한다. 그렇게 그녀는 절망이라는 감정에 기꺼이 부딪 보기로 한다.

우리 역시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다절망의 순간들과 마주친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도 절망이고 지금의 지긋지긋한 현실도 절망이다. 그러나 절망으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하는 것,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그저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왜냐면 절망의 뒷면은 희망이기 때문이다. 절망을 뒤집어보지도 않고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건 자기에 대한 무책임이 때문이다.



도망치지 않은 자신이 뿌듯하다. 이제 계속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계속한다면, 그녀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되어보지 못했던 것, 최고가 될 것이다. 삶은 그녀에게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속성으로 가르쳐 주었다. 강해지려면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 다른 해결책은 없다.

- p.103


인생은 투성이다.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 투성이. 선택과 결정만 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나 제자리다. 그러므로 본인의 선택과 결정을 믿고 그것을 실행해 보아야 한다. 직접 해 보아야 본인의 선택과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선택이 올바르지 않은 것이었다 해도 그것으로부터 깨달음 얻을 수 있다. 그 깨달음은 다시 시작해 볼 용기로 거듭난다. 그러므로 올바른 선택과 결정인지를 모르고 시작한 일이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용감한 자이다. 물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거나 강해지기 위해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진리가 아니지만 ㅡ 독자는 저자의 이 말에 속는 척 하고 넘어가지마는  어떤 일이든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해내는 사람이 강한 자라는 것은 언제나 진리다.



일 주일 후, 마리아의 일기.
나는 영혼을 담고 있는 육체가 아니다. 나는 '육체'라 불리는, 눈에 보이는 부분을 가진 영혼이다. 요 며칠 동안 나는 그 영혼을 아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영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 비판하지도,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다. 그냥 날 바라보기만 했다.
오늘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사랑을 생각하지 않은 지 아주 오래됐기 때문이다. 사랑은 마치 나는 열외라는 듯, 나한테서는 환영받지 못할 거라고 느끼기라도 하는 듯 날 피해다니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 p.103


사랑에 대해 나는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 마리아의 이 말,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말은 나 역시 20대에는 사랑밖에 몰랐고 눈만 뜨면 사랑했으며 눈을 감고 있는 동안에도 사랑에 목말랐던 사람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 순수한 열정과 사랑에 가슴이 시리고 아팠던 기억이 바닐라 라떼 속에 빠지는 아이스크림처럼 달달하게 떠오른다. 나도 그랬다. 마리아처럼 사랑을 외쳤고 사랑을 그리워했고 사랑에 목을 맸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난 그런 순수성을 잃어버린 듯하지만 20여 년이 지나 이 책을 다시 읽으니 다시금 사랑했던 순간들을 영롱하게 만나게 된다.



작든 크든, 거만하든 소심하든, 친절하든 냉정하든, 모든 남자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코파카바나에 들어선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호기롭게 큰소리를 쳐 두려움을 감출 뿐이다.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은 두려움이 사라지길 기대하며 술을 마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아직 접하지 못한, 밀랑이 내게 소개해 주는 않는 '특별손님'같은 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그들은 모두 두려워한다.

- p.114-115


남자들이건 여자들이건 모든 인간은 두려움에 떤다. 어제 글에도 썼지만 누구나 주머니에 한 줌씩의 두려움을 갖고 다니는 법.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사람이 무서워서이기도 하고 인생이 외로워서이기도 하다. 두려움 때문에 울고 두려움 때문에 우울에 빠진다. 남자들도 두려움에 떤다. 세상이 자신을 외면하는 것처럼 느낄 때,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자신을 느낄 때 갑자기 두려워지는 것이다. 어쩌면 남자들은 오래 전부터 국가나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의무와 책무가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남녀가 사이좋게 평등을 외치는 시대지만 여전히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위치에 남자가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니만큼.



여기서 한 마디 더 하고 싶다.

우리 삶의 끝에는 언제나 고독이 있다는 진실. 모든 것으로부터 놓여나는 자유를 맛보게 되는 순간, 우리는 궁극의 고독에 마주서게 될 것이다. 궁극의 고독은 온전한 홀로서기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돕지 않으며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은 상태. 사막에 와 있는 것처럼 건조하고 황량한 대지 위에 자기 자신과만 만나는 고립된 경지. 외로움은 타인을 의식하지만 고독은 타인을 배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 연습을 해야 한다. 고독의 경지에 머물러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연습을. 사랑과 영혼이 충만한 삶, 아낌없이 베푸는 삶,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을 시도해 본 삶,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외로워해 본 삶, 거짓 없고 후회없는 삶을 모두 살아본 사람은 이제 고독을 준비해야 한다. 언제든 궁극의 고독과 마주쳐도 도망치거나 당황하지 않도록.




그러나 이것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랑은 인생 가운데 가장, 아니, 넘치도록 아름다운 감정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는 궁극의 고독에 영원히 빠져도 좋다.

ㅡ by 김혜정 ㅡ



p.s. 성과 사랑의 행위에 대하여 이보다 더 자세 묘사한 책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자체 검열에 걸려 더 적나라하게 쓰지 못하는 점은 유감이지만 한 번씩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기괴한 장면이 나와도 놀라지 마시고.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