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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Aug 14.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는 이런 것이다


7시간 후면 기억이 사라질까 두려워, 실같이 가늘어진 생각이라도 다시 불러내기 위해 타자를 친다. 기본 정보를 찾아보았다. 아, 웹툰이 원작이었구나. 웹툰 작가라는 얘기? 어, 살짝 아쉬운 이 기분은 뭐지? 웹툰을 안 보는 나로선 약간의 거리감이 생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누굴까 궁금했다. 그리고 다 본 후에는 이 감독의 다른 영화는 뭐가 있을지 꼭 검색해서 이전 영화도 보리라 생각했다. 다시 뒤져봤다. 그의 필모그래피. 뭐가 나올까.     



일단 이 영화의 감독은 엄태화다. 81년생, 얼굴이 잘 생겼다. 영화배우 해도 되겠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벌써 111만 관객을 모으며 현재 상영작 1위를 석권했다. 개봉은 8월 9일에 했다. 이 영화는 며칠 전 <오펜하이머>를 예매할 때 “엄마, 난 오펜하이머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더 보고 싶은데!”라고 아쉬움을 쟁여둔 목소리로 소극적으로 주장하는 큰아들 통해 처음 알게 된 낯선 영화였다. 기본 정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멋진 신세계’나 ‘주토피아’를 떠오르게 하는 단어라서 ‘콘크리트’랑 앙상블을 이루는 게 어찌 반어적이고 재미있을 듯도 하지만 아무튼 지금 나는 <오펜하이머>를 무지 보고 싶은 고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너 친구들이랑이나 보러 가라고 면전에다가 보이지 않는 주먹을 날렸더랬다. 그랬던 내가 큰아들을 배신하다니! 가벼운 펀치에 날아간 작은 소망이 무색하게 엄마인 나는 이 영화를 너무 뽀지게 재밌게 관람하고 온 것이다. 미안하다다다다다!!!      


왼쪽이 감독 엄태화, 오른쪽은 동생 엄태구(택시 운전사ㆍ안시성 조연, 낙원의 밤 주연)


아무튼 이 영화의 감독 엄태화의 필모그래피는 생각과 달랐다. 웹툰 정보는 다른 곳에 쓰여있는지 모르겠지만 웹툰 작가보다는 명실상부한 영화감독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았다. 스토리 보드 작업을 담당한 작품 다수 있었다. 원래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던 사람이고 스토리도 잘 엮으니 스토리 보드 작가로 기반을 다진 것 같다. 그러나 맨 처음 만든 26분 분량의 영화 내용을 보면 굉장히 의미심장한 바가 있으니 괴질과 전쟁 등으로 어수선한 세상의 분위기를 빌려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폐화되어 가는 인간의 불완전한 모습을 그려보고자 했다고 연출 의도에 쓰여 있는 것이다. 오늘 본 <콘크리트 유토피아> 역시 그렇다. 인간의 불완전한 모습을 기저에 깔아놓고 재난의 상황 때문에 어수선해지고 험악해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현실 세계에 지나치게 적응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혹은 적응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대립각에 세우면서 평범하고 성실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어떻게 좌절하고 종국에는 어떤 결말을 맺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의도하는 바가 비슷하다. 작가 엄태화가 주목하는 것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 빚어내는 나약함과 비열함이다. 혼자 있거나 수동적으로 살아갈 때는 나약하다. 자기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불완전함을 숨길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겉으로 드러나고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게 될 때는 뻔뻔함을 입게 된다. 비열해진다. 다른 이들의 추종을 허락하는 위치에 올라가면 자기 본연의 불완전함을 잊고 만다. 과거의 불완전함을 완전히 지우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그것은 흔적을 남기고 결국 어디선가 질질 끌려 나와 자기를 넘어뜨린다. 또한 그 권력에 굴복하는 사람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나왔던 주인공 한병태와 같다. 그 ‘굴종의 열매’를 받아먹은 송구함과 황송함으로 권력은 그에게로 이양된다. 한병태가 엄석대의 행위를 고자질하는 무리에게 오히려 비위가 상해서 석대 편을 들었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 권력을 이양받은 사람은 권력자를 옹호하고 나선다.      



우리 편인가, 남의 편인가. 나에게 이로운 사람인가 해로운 사람인가.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인간들은 흑과 백으로 모든 것을 규정짓는다. 중간에 흑돌과 백돌의 바둑돌이 나온 것도 어쩌면 이런 흑백논리를 비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 지금 생각이 나는데 그 권력자의 눈에 들어온 바둑돌 하나는 흰 것이었다. 그래, 작가는 하나도 대충 세운 것이 없다. 세밀하고 치밀했다. 구성과 심리와 표현이 모두 좋았다.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하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비판 의식과, 선이었던 것이 악으로 변하고 악이었던 것이 선으로 변하는 정신없는 줄다리기 싸움을 따라가는 것도 영화의 놓지 마 정신줄이었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잠시 신비로웠다가 마지막엔 목놓아 울고 말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나 샘 레이미 감독의 영화 촬영 기법이 보였을 땐 감탄이 절로 나왔고 마지막 주인공 여자의 대사 “아니요. OOO 사람들이었어요.” 이 말을 들었을 땐 눈물이 폭포처럼 터져나와 목줄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앉아 있었던 상영관은 나가는 문이 위에 있어서 많은 관람객들이 계단을 올라 내 옆을 지나갔다. 사람들이 거의 다 나가고 엔딩 크래딧 영상다 올라갔지만 먹먹한 가슴은 쉬 진정되지 않았다.



엄태화 감독이 표현한 건 정치적 싸움과 인간에게서 나는 비린내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OOO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영화에 딱 어울리는 명언이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감상만 써보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봐서 더 인상깊었던 영화였다.


다들 연기력이 좋았지만 이병헌의 표정과 대사는 압권이었다!! 특히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을 연상케 하는 대사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 생각나서 웃고 또 웃었다.


저번에 용산 CGV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본 영화 <밀수>도 그때 1위였는데, 이번에 별마당 도서관 구경 갔다가 코엑스몰 주차비가 너무 비싸서 주차비 아끼느라 메가박스에서 갑자기 보게 된 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1위다. 15일 개봉일에 보기로 한 영화 <오펜하이머>도 아마 그날이면 1위가 될 것이다. 내가 보면 1위가 된다!! 핫!!


 HAHAHA!! 1위일 때 빨리 보는 거 아니고?ㅋㅋㅋㅋ


코엑스 스타필드의 메가박스 영화관. 이런 자유로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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