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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Apr 08. 2023

홍당무는 이제 안녕

이정화 작가의 신작 《홍당무는 이제 안녕》      


p.47  죄책감과 수치심의 차이      

죄책감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를 책망하는 마음이라면 수치심은 자기 스스로에 대해 떳떳하지 못한 부정적인 마음이다. “발표 준비를 제대로 안 한 내 행동은 잘못됐어. 그래서 나는 발표를 망쳤어.”는 죄책감이고, “발표를 제대로 못한 나는 바보 같아. 멍청하게 발표를 다 망쳐 버렸어.”는 수치심이다. 죄책감이 양심과 같은 나의 내적 기준에 기인한 거라면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과 같은 외적 기준에 의한 감정이다. “더 준비를 많이 했어야 했는데 소홀했어.”는 죄책감, “준비가 소홀했던 내 발표를 보고 사람들이 우습게 봤을 거야.”는 수치심이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9년 간 학원 국어 강사를 했고 두 아이를 낳은 후엔 시간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 논술 공부방을 차렸다. 11년 전의 일이다. 강사를 할 때는 몰랐던 홍보라는 작업이 새로운 과제로 주어졌고 예상보다 홍보와 학부모 상담이라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알리는 일은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만큼의 뻔뻔함이 필요했다. 한 눈에도 위풍당당해 보여야 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겐 1인 기업으로 우뚝 설 만한 용기가 없었고 나의 진정성을 알아봐 줄 이도 없었으며 심지어 새로 가맹한 프랜차이즈에 대한 인지도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쫄아버렸다. 강사 시절에는 학원에서 알아서 해 주던 일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야 하는데 나는 성급하게 쫄아버렸다. 학부모님들의 방문 상담!! 그것은 나를 쫄게 했다. 그들은 나에게 다른 프랜차이즈와의 차별성에 대해 심문했고 나만의 수업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했으며 그들이 원하는 것들이 언제 어떻게 채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당장 내놓으라 했다. 나는 쫄아들었다. 아직 시작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해 내가 어찌 확답을 할 수 있으랴. 지나치게 솔직한 성격을 지닌 나는 그 질문들 앞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고1학년 대상으로 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친 경험은 약간 있었지만 사실 20명을 대상으로 한 거였다. 이제 막 시작하는 소수정예 초중논술의 성격과는 다른 거였다. 차라리 이제 내가 막 시작하는 거니까 천천히 믿고 맡겨 보시라고 조금 거만하게 했다면 통했을까, 불안하고 못 미더운 시선으로 나를 탐문하는 듯한 학부모님들 앞에서 이상하리만치 나저자세가 되었다. 그렇게 평가를 받아 내어야 하는 위치에서 두려움 똬리를 틀고 앉아 버렸다. 대면 상담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이것은 나에게 수치심을 주었다.

    

얼마 후, 공부방 홍보를 위해 학부모 설명회를 열라는 지사의 제안이 들어왔다. 커피숍을 빌려 설명회를 열었다. 우리 논술의 프로그램과 로드맵, 변화하는 입시 체제와 교육 과정 등에 관해 본사 직원분이 상세히 설명하면 나는 주어진 시간, 고작 10분 정도 동안 내 소개를 하는 거였다. 나는 그 10분 스피치를 준비하기 위해 그 전날 밤에 원고를 쓰고 달달 외우고 발표를 연습했다. 녹음을 해서 들어보고 다시 녹음해 보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아무도 모를 나 혼자만의 터널을 아마 서너 시간은 달렸던 것 같다. 물론 실전에서 그 터널은 뻥 뚫렸고 잘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20명이 넘는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나를 알리는 10분의 시간 나에게 중압감을 주었다. 그것은 그리 만족스러운 기억이 아니었다. 나를 알리는 방법으로 그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었지만  자신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기억 탓에 그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설명회를 열지 않았다. 그저 입소문으로 신입생이 들어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길 뿐이었다. (발표 자리는 여전히 불안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발표를 많이 시켰다. 매 시간 아이들의 발표를 위해 수업 시간을 30분씩 추가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발표 앞에서 불안해했기 때문이. 학교에서 자진해 발표하는 친구들은 소수였다. 그저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논술은 쓰기 영역이므로 발표 실력을 꼭 향상시킬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대중 앞에서 말하는 훈련을 시켜주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때 발표 불안이 심했던 것이나 학부모님들 앞에서도 불안이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도 발표 불안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떨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발표 잘하는 법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다. 발표에 관한 책은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스피치를 잘하는 기술에 관한 것이었다. 말하는 법 자체를 다룬 거였다. 그것도 물론 도움이 되었다. 준비를 철저히 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 발표할 때 키워드를 떠올려 당당히 말하고 시선 처리나 제스처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 두괄식으로 말하는 것 등. 하지만 그런 기술을 이용한다고 해서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발표 불안에 관한 책이 더 빨리 나왔더라면!!

브런치의 미모의 작가가 '발표 불안'에 대한 책을 펴냈다.

이름하야

이정화 작가의 신작 <홍당무는 이제 안녕>

    

공식석상에서의 발표가 힘든 이들에게, 발표 불안 콤플렉스가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꼭 필요하다. 이 책을 10년 전에 만났더라면 내 발표 불안 콤플렉스는 아주 싹을 잘라 버렸을 텐데!! 이제야 만난 것이 너무 아쉽다.     


글로벌 세계에서 멕시코, 콜럼비아, 온두라스, 인도, 캐나다, 미국, 프랑스, 스페인의 국경을 넘나들며 유학을 하고 사업을 하고 통역을 하며 다채로운 경력을 쌓은 그녀가 발표 불안을 겪었다는 것은 비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아무도 계속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무도 모를 이 비밀을 굳이 왜 폭로한 것일까. 그건 아마도 심성이 따뜻해서일 것이다. 사람 좋아하고 기꺼이 남을 돕는 일에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줄 아는 사람. 자신과 똑같은 아픔을 겪었던 사람이 있다면 혹은 지금 막 겪기 시작해서 수렁에 빠진 이가 있다면 오지랖을 발휘해서라도 건지려고 하는 사람. 작가라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에게 있다는 '나만 알기 없고 공유하기'가 천성인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이정화 작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발표 울렁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다. 우리 아들들도 그렇고 대다수의 학생들도 그렇다. 많은 회사원들이 그럴 것이고 연예인들도 방송인들도 알고 보면 부지기수일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우리 모두는 조금씩은 다 발표 불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발표할 일들이 쌔고 쌨다. 초중고 대학대학원에서의 수업과 각종 면접, 회사에서의 업무 보고, 자기 사업 설명회에, 조직원들의 모임, 글로벌 협업 공식석상,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의 현장까지. 발표할 기회가 널렸다. 그런데 발표 불안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리거나 회피한다면 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미래가 창창한 들에게는 발표의 자리는 성장의 기회다. 기회란 모름지기 눈앞에 왔을 때 잡아야 한다. BTS 리더 RM이 유엔 연설에서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스피치를 그렇게 멋지게 한 것도 발표에 대한 믿음과 능력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자기 허용!!

대중들이 수용해 주리라는 믿음!!

감정의 방향과 강도를 조절할 줄 아는 능력!!

'지금아니면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도전 정신!!

이런 자기 확신 덕분에 RM은 K-pop 로벌한 은 위상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대중을 향한 발표는 긴장을 동반한다. 완벽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하지만 10년 넘게 발표 불안에 시달렸던 저자의 책 속에는 발표 불안의 심리적 요인들과 사이다 같은 해법들이 숨 쉬고 있다. 문은 두드리라고 있는 것이고 책은 읽으라고 있는 것이다. 책의 문을 두드려 발표 불안의 심리에 다가가 보자. 불현듯 자기의 심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p.75 긴장은 생각으로 흘려버려     

발표 불안은 생각의 습관이다. 발표와 관련된 내 생각이 대부분 부정적이고 불안감을 유발하는 것과 연결되어 굳어져서 ‘습관’이 된 상태가 발표 불안이다. 이 부정적이고 불안한 생각에 따라 몸이 반응하는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돌파구가 보인다.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바꿔서 그에 따른 몸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발표 불안을 극복하려는 핵심 방법의 하나다.     


p.94~95 너를 강제로 좋아해 볼 예정이야     

발표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과 관계있다. 여러 사람 앞에 서서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불편해진 사람은 청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화자의 발표를 예민하고 꼼꼼하게, 면밀히 살핀다. 이미 발표라는 행위 자체가 의식 속에 큰 이벤트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발표할 때 맹숭맹숭 건성으로 보기가 어렵다. 날카롭고 깐깐하게 보게 된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은 내가 다른 이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다른 이가 나를 그렇게 볼 것이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내 발표 불안의 원인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을 비판적으로 보는 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발표 불안을 극복하려면 ‘다른 사람을 보는 내 관점을 바꾸기’로 하자.     


p.107 타인의 시선에 대한 근육     

이렇게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타인의 시선에 대한 근육이 조금씩 생기게 된다. 이 근육이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점차 더 단단해지면 최면 필터 없이도 현실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불안한 마음이 어느 정도 가신 상태에서 청중을 보게 되면 타인의 시선은 그리 매섭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매섭게 생각했던 건 다름 아닌 긴장감에 휩싸여 있던 나 자신이었음을.     




이 책을 읽자마자 내가 실천에 돌입한 것이 있다. 바로 칭찬 샤워!! 여태까지는 학생들이 발표를 마치면 박수만 쳐 주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발표 후 청중들에게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칭찬 샤워를 받으니 발표한 아이들의 어깨가 하늘로 뻗쳐 올라가는 게 보인다. 아이들 눈과 귀에 레이더가 달리고 관찰력과 표현력도 좋아진다. 진작에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 역시 더 이상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수치심을 느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발표 불안은 버릴 수 있다. 내 생각의 주인은 바로 나니까. 론 실전 연습이 필요하지만 결국 불안의 원인은 내 생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발표 불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이제 책 속에 들어가서 내 생각을 알아보자. 거기에 답이 있다.


훗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 모임을 진행하고 싶은 소망이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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