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의 자리
불편할 것도 없다.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1회에 10만 원씩 한다는 상담을 공짜로 받게 되었는데 무엇이 불편하고 불안하단 말인가. 근데 이상하게 불안하다. 나의 무엇이 끄집어내어 질지 몰라서 불안하다. 무작정 덮어놓고 사는, 있어도 없는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면서 사는 스타일도 아닌데, 내 무의식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실체들이 하나씩 하나씩 낚싯대 끝에 달린 찌를 물고 튀어나올까 겁이 난다.
돌아오는 수요일 오전 11시, 나는 내 생애 첫 심리상담을 받게 될 것이다. 센터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은 어떨까? 그날의 날씨에 따라 달라질까? 내 마음의 준비 상태에 따라 달라질까? 예약을 한 건 한 달 전인데, 여전히 내 마음은 노크를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상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거 아냐?
상담이라는 걸 해 볼 생각은 한 10년 전쯤, 남편과의 소통이 벽에 완전히 부딪혔을 때 처음 했었다. 그야말로 소통의 부재였다. 하지만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중요한 건 방법을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을 실천하는 데 있는 것. 소통법을 실천하는 건 상담사의 능력보다는 내담자들의 각성과 의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상담사가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솔루션을 준다고 해도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요, 헛짓이 되는 것이니. 게다 상담실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아무 말도 안(못) 한다면? 그거야말로 얼치기짓이다. 생각만 해도 민망한 일이다. 그래서 난 합리적인 방법으로 남편에게 진실한 대화를 해볼 것을 제안하며 상담을 면하기로 했다. 그 진실한 대화는 긴긴밤의 긴긴 대화로 이어졌고 결국 나름 소기의 목적은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전쯤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기존의 진실한 대화법이 공든 탑이 되었던 건지, 아니면 파에톤의 태양마차처럼 곤두박질치기 직전에 우리의 재앙은 우리 스스로가 끝내야 한다는 절박한 믿음이 컸던 건지, 우린 다시 한번
소통의 대화를 통해 상담을 피했다. 어쩌면 상담은 우리에게 최종의 관문 같은 것이었다. 우리끼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종국에는 타인의 힘을 빌려야 하는 거고 그 힘은 상담사에게 있는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믿고 있었다. 절대 반지를 상담사에게 끼워주고 우리는 소국의 호빗들처럼 작아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게 낯설고 싫었다. 호빗처럼 작아지는 게 싫었다. 분명히 남편은 모르는 사람 앞에 앉아서 자기 얘기를 꺼내지 못할 거고(내 앞에서도 꺼내지 못하는데 남 앞에서 술술 말할 리 만무하다), 나는 내가 쥐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상담사에게 듣고 오는 날이면 '거 봐 맞지? 내 말 그대로잖아.' 하면서 기고만장할 것이었다. 개방적이지도 않고 수용적이지도 않은 내담자들에게 상담이라는 건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굳이 이런 시나리오를 들고 카드까지 긁으며 상담을 받으러 갈 이유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우리는 상담실에 카드를 긁는 대신 밥집에 긁었고, 산책길 위 아메리카노에 긁었다. 그렇게 뿌린 씨앗은 열매로 돌아왔다. 우린 대화법을 터득했고 상담실에 찾아갈 필요를 거두었다.
나를 알아가는 가장 유익한 방법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상담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 상담은 굉장히 가치로워졌다. 그건 달랐다. 나에게 필요했다. 오래전부터 나 자신과 내 정신역동에 대해 알고 싶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진정으로 욕망하는 건 무엇인지, 뭐가 문제고 또 뭐가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과거 미해결 과제를 풀 수 있을 것인지도.
어쩌면 타인과의 관계를 해결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알아가는 것이 더 어려운 거라고 생각했다. 타인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자기에게는 늘 주관이 앞서기 때문이다. 또 타인과 생각이나 성격이 맞지 않는 경우 극단적으로는 관계를 허물 수도 있지만 자기와의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자기 도피이고 심하면 자살이 아닌가. 그러므로 타인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견고하게 세워야 할 것은 자기와의 관계, 자기에 대한 인정과 허용, 사랑이다. 자기 이해도가 높고 객관화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자아가 건강한 것이니만큼.
그리하여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나 자신을 알게 될 것이다. 모레면 곧 나의 상담사를 만나 나의 빗장을 열고 그에게 많은 것을 털어놓게 되리라. 《나의 첫 심리상담》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나는 상담사 왜가리 헤런을 만나게 될 두꺼비 토드다. 토드처럼 나도 기대하지 않았던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상담의 효과를 기대한다
누군가가 나의 진실함을 완전히 수용해 주는 경험.
화장실에 다녀온 것처럼 후련해지는 마음.
나의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용기.
나의 진정한 성장과 안녕.
나를 이해하는 시간.
트라우마의 해결.
상담은 나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고 나를 돌아보거나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상담을 통해 나는 스스로를 더 직면하게 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비우게 될 것이다. 비곗덩어리같이 군데군데 붙어있는 지방 덩어리를 태우고 없애서 훨씬 가볍고 슬림한 몸을 갖게 되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있는 불편한 생각과 감정 덩어리들은 상담사의 마법으로 전기로 지져져서 소멸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바다의 심연과 같은 나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게 될 것이고, 그때 미처 알지 못했던 미궁 속으로 걸어 들어가 두껍게 껴입었던 옷들을 벗어던지고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실의 나로 돌아올 때 나는 나의 나 된 것, 내 욕망의 근원, 내 트라우마의 뿌리에 대한 키(key)를 흔들며 웃어 보일 것이다.
이제 그 내막을 하나씩 펼쳐 나갈 일만 남았다.
내 예상처럼 상담은 잘 진행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