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상담의 오프닝 ㅡ 왜 상담하고 싶으신 내용을 적어두셨어요?
11월 8일, 수요일 오전 11시, 두 번째 상담이 시작되었다. 상담사의 얼굴은 늘 편안하고 온화해 보였다. 실제 성격은 급하다고 했는데, 페르소나를 완벽히 소화한 모습이다.
상담사는 나에게 오늘은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으시냐고 물었다. 나는 띄워 두었던 핸드폰 창을 들여다보며 2~3초를 흘려보냈다. 상담사는 선생님이 지금 보고 계신 게 무어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 어떤 얘기를 하는 게 좋을지 고르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상담사는 의아해했다. 어떤 얘기를 나눌지를 적어두었냐고 말이다. 나는 브런치에 쓸 내용을 제목 형태로 적어두었는데 사실 저번에 얘기했던 것과 비슷한 방향으로, 그러니까 저번 것과 연결되는 내용으로 점차 심화시키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만약 이야기를 중구난방식으로 하다 보면 맥이 끊길 수 있고 또 내가 상담받고자 하는 것이 핀트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라고 말이다. 상담사는 "오~ 그러시군요. 보통은 내담자분들이 그렇게까지 생각해 오지는 않는데 상담할 내용을 그렇게 미리 준비하시는 경우는 처음 봐요. 그렇게 하시는 특별한 이유 같은 게 있으실까요?"
상담사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뱉었다. (나는 상담사의 이 질문이 참으로 신박하고 참 절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저녁 <상담기초실습> 수업을 통해 이 기법은 '즉시성 반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담을 받은 후에 상담 기법을 알게 되는 게 그 반대편보다 훨씬 낫다.) 나는 갑자기 생각해야 했다. 내가 왜 상담할 내용을 미리 적어두었는가?
나는 계획형이니까 ㅡ 끌려가지 않겠다.
그건 내 성격 탓이다. 어떤 중대한 일을 앞둔 상황에서 나는 계획을 먼저 해두어야 안심이 되는 '계획형'이니까. mbti 성격 검사에서도 다른 건 다 바뀌었어도 유일하게 제자리를 철석같이 지키는 놈은 'J' 뿐이다. 계획을 해두면 마음이 안정된다. 계획한 대로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나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계획이 틀어지면 절망하는 편은 아니다. 계획은 수정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 정도의 유연성은 있다고 본다. 계획 없이 우왕좌왕하는 건 많은 손실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내 소중한 시간도 허비되고 그간 사용된 비용도 허비되며 노력도 물거품이 되고 성취감도 얻지 못하게 될 게 아닌가. 이 개인 상담 시간도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이고 소중한 시간이므로 나는 이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상담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어느 정도 계획을 했으며 중요한 이슈를 놓치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기록을 해둔 것이라고 답했고, 이어서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다.
"어찌 보면, 제가 이렇게 하는 건 다른 사람한테 끌려가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인 것 같기도 해요. 이 '다른 사람'이라는 말에 상담사님도 포함시키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제가 다른 사람한테 잘해주고 맞춰주면서 살아오는 동안 그게 기쁘지만은 않고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고 판단하는 건 그들에게 끌려갔던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듣기 싫은 이야기를 계속 참고 들어주거나 어떤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을 하지 못했던 것도 결국 끌려간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생활 면에서 저는 굉장히 독립적이고 강한 편인데 인간관계 면에서는 그게 잘 안 됐었거든요. 지인들한테도 그랬고, 가족들한테도 그랬어요. 근데 지금은 좀 많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지인들은 끊어버렸고 엄마한테는 제 마음을 얘기했거든요. 이제는 많이 편안해졌어요. 근데, 그중에서 어떤 지인 때문에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게 트라우마였던 건지 알고 싶어요."
"아~ 그러셨군요. 선생님은 지난 일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시고 성찰도 깊이 하신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지인이라는 분은 지난 시간에 잠깐 언급하셨던 그 지인 분인가요? 그 일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있으시겠어요?"
지난 트라우마를 다시 꺼내는 일은 눈을 떨리게 한다.
아, 순간 첫 번째 상담 때 이 얘기는 다음에 자세히 얘기하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얘기는 성격 검사 결과가 나온 후에 하게 될 줄 알았는데,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둘둘 말린 양탄자를 좌르륵 펼치듯 과거의 경험을 풀어놓았다. 말하는 동안 왼쪽 눈이 파르르 하고 떨렸다. 내 얘기를 경청하며 상담사는 "아, 힘드셨겠어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선생님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시는 분이 안 계셔서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라 많이 힘들었겠다고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 뿐이었는데요. 저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선생님의 외로움이 느껴져요." 하고 중간중간 반응해 주었다. 내 경험 속에는 없는 제 3자이고 인제 두 번째 본 낯선 사람일 뿐이지만 상담사는 부드러운 말씨와 온화한 눈빛으로 내 마음에 공감을 보내 주었다. 편안했다.
상담사는 내 그 경험이 트라우마가 맞다고 설명해 주었다. 어떤 충격적인 경험이 심리적, 신체적 안녕감을 해치고 그 기억에 붙들리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제가 선생님 상황이었어도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 같아요. 그래도 1년 정도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정도 극복하셨다니 참 다행이에요." 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왜 나를 외롭게 하는가? 그러나 외로움은 고독이 되고.
상담사는 "근데 지금 저는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선생님한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세요?"하고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선한 영향력이요."
"아~ 선생님은 세상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행동을 많이 해 오신 거군요. 근데 저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안에서 선생님의 외로움이 느껴지네요." "아, 그러세요? 그럴 수도 있어요. 저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었거든요."
"언제부터 외로움을 느끼셨어요?" "중학교 때부터인 것 같아요. 그때부터 저는 인생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고, 찾고도 싶었어요. 근데 마음이 정말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그러다가 결혼을 했는데 결혼 후에는 남편이랑 소통이 잘 안 돼서 더 외로워졌어요. 그러다가 마음에 맞는 모임을 만나게 됐고 그 사람들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관계가 될 거라고 믿어서 엄청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데 그 안에서 트라우마를 겪게 된 거죠. 이 일이 있고 코로나로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면서 신기하게도 제 외로움이 사라졌어요. 사람한테서는 내 공허함을 채울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외로움은 사람을 향하게 되지만 고독은 자기 내면을 향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고독으로 가는 문을 열게 된 거죠."
나는 왜 인정받으려고 하는가? 쩜쩜쩜.
나는 현재 나의 고독을 벗 삼고 있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고 브런치 친구님들과 소통을 할 때와 상담대학원에 다니면서 같은 대학원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행복감이 커진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내가 성취를 중요시하게 된 동기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의 잘난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며 여전히 내 능력치보다 더 높은 목표를 세우면서 그걸 하나씩 성취해 나가면서 더 잘나지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중이라고 얘기했다.
상담사는 물었다.
"그럼 선생님 본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저는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가 않아요. 예전에 아이들 낳고 집에 있을 때, 내 존재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아 너무 힘들었거든요. 저는 무언가를 하고 자꾸 성취해 나가는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하는 저는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아, 그러시군요. 선생님은 남편에게도 부모님께도 인정을 받아야 사랑이라는 감정을 크게 느낀다고 하셨는데, 사실 사랑은 인정과는 다른 거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존재도 사랑할 수 있어야 그게 진정한 사랑인 거죠. 부모님이 우릴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도 안 하는 건 아닌 것처럼요. 그냥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게 사랑이지요."
"네, 맞아요. 저도 인정과 사랑은 다르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제 깊은 마음에는 인정에 대한 결핍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정 욕구가 해소되지 않고 계속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는 거죠. 왜 그런 걸까요? 어떻게 해야 인정 욕구가 사라질까요?"
아직도 결핍 중인 인정 욕구
나는 맨 처음 상담을 갔을 때부터 주 호소 문제로 인정 욕구를 꺼내 놓았었다. 내 안에 있는 인정 욕구가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거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사람을 진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인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래, 인정보다 사랑이 우선이고 사랑이 강자다. 사랑을 뛰어넘을 세상의 진리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난 인정을 갈구한다. 나 자신도 내가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남에게도 인정을 받아야 내 가치가 더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뿌리가 깊은 인정 나무로 살아가려고만 한다. 내 성취동기도 인정이요, 성취의 목표도 인정이다.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것 같다. 나 그대로의 모습,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의 모습은 내가 아닌 것만 같다. 내 지금의 모습에 만족을 하면서도 더 나아가 발전하는 내 모습도 동시에 추구한다. 이건 그렇다면 사랑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단순한 인정의 결핍 때문인가? 난 이 점이 궁금하다.
이제 다음 시간에는 내 성격 검사 결과가 나올 것이다. MBTI 검사와 그렇게 크게 다른 질문은 없었는데, 과연 내 성격은 어떻다고 나올까.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이면 좋겠다. 나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