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허물기

by 김혜정


11월 15일, 세 번째 상담.


그럼 이 얘기는 다음에 이어서 할까요? 하고 지난 시간 상담사는 말했었다. 나의 인정 욕구에 대한 뿌리 탐구와 자의식 해체를 예고했지 말이다. 성격 검사도 하기로 했으니 그 결과도 같이 보기로 했고 말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장 완성 검사지가 메일 송신의 오류로 늦게 도착하게 된 이유로 성격 검사 결과는 다음 시간에 보기로 정정되었다. 그리고 상담의 주제는 그 사이 불거져 나온 다른 문제로 옮겨가게 되었다.


나에게는 너무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 그 이름 '관계 허물기'


관계를 허문다는 건 어쩌면 너무 잔인한 일이다. 그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이고 나와 상대방 사이에 오고 갔던 많은 이야기들도 잿더미가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 관계가 한 사람이 대화를 독식하는 형태였다면 어떨까. 독식을 당하는 사람에게 그 탑은 이미 모래탑에 불과하고 그 이야기들도 아궁이에 쑤셔넣은 장작과 불쏘시개일 뿐이다.


대화라는 건 둘이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여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 모르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자기가 원할 때, 자기가 할 말이 있을 때 상대방의 상황이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전화를 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멀리서 들어오는 열두 칸 열차처럼 처음엔 희미한 경적 소리 같던 목소리가 내 고막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퍼지고 울려대며 달려든다. 정해진 트레일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 그들의 이야기는 일정한 레파토리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최근의 일로부터 화제를 끌어낸다. 물론 상대방에게 어떤 일이 있고 요즘 어떤 기분인지는 한 톨어치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중대한(내가 보기엔 사소한) 일만이 중요하다. 그들은 그 문제를 점점 심도 있게 다루면서 종국에는 과거의 사건들, 과거 자신이 겪었던 억울한 에피소드들과 연결짓는다. 결국 자기는 과거에 누군가로부터 정신적으로 피해를 받았고 그 피해에 대한 보상은 아무에게도 받지 못했으므로 가슴에 응어리만 남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 불똥을 상대방에게 던질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걸 대단히 잘 알고 있는 나는 그 태세 앞에서 그 불똥을 잘 받아낼 준비를 한다. 미련했던 나는 그랬다. 그 불똥을 잘도 받아냈다. 그게 내가 처리해 내야 할 임무이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불똥을 15년 넘게 받아오던 내 마음 그릇에는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단단한 줄 알았던 질그릇 같은 내 마음은 뜨거운 불똥을 받아내고 또 받아내며 어느새 호로록 불에 타버리고 타다 남은 잿빛으로 변하였다. 상대방의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말을 듣거나 남을 뒷담화하는 말을 듣거나 세상 저질스러운 욕설 따위를 받아낼 때마다 내 질그릇은 더 얇아지고 휘어졌다. 그럼에도 그들에겐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할 거라는 선량한 마음으로 나는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질그릇 속에 켜켜이 쌓여가는 미움을 걷어내 달라고 기도했었다. 이게 나의 사명이고 십자가인가 보다, 이게 숙명인 건가 보다 했다. 하지만, 어느 지인에게 얻었던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나는 그 '관계'라는 것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했다.


'관계'를 내가 불편하다고 해서 모두 끊어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나를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더라도, 아무리 끝없는 돌림노래라 해도 가족은 가족인데? 가족이라면, 나의 피붙이가 아니어도 내 남편의 피붙이라면 내 가족의 범주에 들어있는 사람이 아닌가? 고심했었다.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사고를 가졌다는 것을 어느 친자식도 왈가왈부하지 못하고 그냥 평생을 덮어두고 살뿐인데, 그래서 들어주는 며느리를 늘어지게 붙잡고 있었던 것뿐인데 나는 나를 먼저 지켜야 하는가?


어머니가 개인적인 사유로 당신의 친정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을 때, 나는 치를 떨었다. 그 개인적인 사유로 늘어놓는 말들도 전혀 합당치 않았다. 나는 어머니께 그래도 장례식에는 참석하셔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어머니는 당신의 어머니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않았다. 그런 분이다. 이 일을 끝으로 나는 어머니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나의 질그릇은 다시금 형태를 되찾았고 진정한 평안을 얻었다.


그런데 2년이 훌쩍 지난 며칠 전, 갑자기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나? 전화를 받고, 난 목이 아파서 병원에 나가 볼 참이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지만 이어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염려는 머릿속에서 다시 그 전의 기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2년 만의 통화를 어머니는 바로 어제 통화한 사람처럼 아주 쌩쌩하게, 농담을 걸치며 해내고 있었다. 머리가 저려왔다. 난 그렇게 뻔뻔하게 살 수는 없는 사람인 고로.


내가 상담 주제로 꺼낸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어머니의 전화는 안 받아도 되는가'

코로나로 인해 3년 동안 어머니는 자식들을 오지 말라 했다. 음식만 만들어서 갖다 달라고 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말은 명언이다. 안 보는 시간만큼 마음도 떠났다.

그런데 나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여태껏 많이 들어준 사람이라는 이유로, 도덕적인 의무감을 멍에처럼 지고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나의 정신적 해방을 위해 그 멍에는 갖다 버려도 마땅한 것인가.


상담사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냐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가족이라도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다른 시댁 식구들에게 나의 행동이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내가 극복했다고 믿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정당성을 부여받을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싫으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후.. 이 모든 말들은 나에게 힘이 되긴 했다. 극복해야 할 일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피하기만 하는 것은 상책이 아니요, 직접적으로 내가 왜 힘든 것인지 말해야 해결이 되는 일인데, 그 이유들을 말하다가 더 큰일이 일어나게 될까 두렵다. 상대방에게는 들을 귀가 없어서 말이다. 친자식들도 다 덮고 사는데 억지로 그 귀를 연다고 열릴까.


그 이후에도 전화는 여러 번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회피는 싫지만 직면할 용기가 아직 나에게 없다. 상담사는 나에게 거절의 뜻을 드러내 보라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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