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 11. 내 첫 상담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이 숫자 1에 부여하려다가 이내 다른 생각에 빠진다. 빼빼로같이 다 똑같이 생겼어도, 기호 조각에 불과한 것 같아 보여도 이 1들은 어느 위치에 서 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
내 속 자아들도 그렇다. 숫자 1처럼 겉으로는 하나같아 보여도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여러 개의 자아로 내 속에 기생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 분명히 있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겉 자아인 나는 내 속 자아들을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그냥 있을 거라고 치부하고 가끔씩은 일기를 쓰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속 자아들과 소통을 할 뿐.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존재. 바로 내 n개의 자아.
나의 첫 상담자는
11월 1일 첫 상담. 상담에 앞서 인적 사항과 나의 주 호소 내용이 무엇인지, 들고 온 문제 거리가 무엇인지를 쓰는 간단한 자기소개 양식이 주어졌다. 문제 거리를 쓰는 일에 익숙한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쓰르륵 빈칸을 채워나갔고 상담실을 따뜻하게 해 놓으신 나의 상담자는 그 사이에 둥글레차를 한 잔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기똥차게 내가 펜을 놓는 순간 다시 들어왔다.
나는 대뜸 나의 상담자에게, 수련 중이신 선생님이시냐고 물었다. 나이는 나보다 네다섯 살 정도 많아 보이시는 분이었는데 난 궁금한 건 물어보는 스타일이라, 끙~, 무례하지만 무례해 보이지 않게 물었다. 무례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진심을 담아서 말하는 것. 그리고 말 처음과 말끝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다. 나의 상담자는 "저는 현재 레지던트예요." 하고 옥수수 알갱이처럼 가지런한 이를 내보이며 부드럽고 편안한 어조로 답하셨다. 인턴, 레지던트라는 호칭은 의사라는 직업에만 붙이는 게 아니구나. 어쩌면 이곳에서만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어떤 게 진실일까 궁금해하는 사이, 그분은 여기 상담센터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다고 덧붙이셨다.
"오~ 안정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계시니 좋으시겠어요~." 진심으로 부러움이 몰려왔다. 상담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학회에서 요구하는 자격 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상담 수련 과정이 필요했다. 상담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내담자가 필요한데 학교의 산하 기관인 이런 상담 센터에서 일정 기간 인턴과 레지던트로 근무를 한다면 이건 물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꽤나 득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인턴으로 뽑히기 전까지는 내담자로서만 여기 머물 수 있을 뿐이다.
상담자는 주 호소 문제가 무엇이냐고 아주 온화한 얼굴로 물었다. 목소리가 나긋나긋했고 폭신거리고 보드랍고 따뜻해 흡사 상담실 내부 공기와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이미 그 공간이 더울 정도로 따뜻해서 꼭 겨울에 이곳을 찾은 것 같은 착각이 일었었는데 따뜻한 둥글레차에 상담사의 목소리까지 따뜻하니 이거야 뭐 뜨끈함, 그 자체라고 해야 되나? 일단은 무장이 해제되었다. 굳이 총칼을 차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 따뜻한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뾰족한 말을 하고 날카로운 눈길을 보낸다 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나의 성격표
나는 미리 준비해 간 많은 생각들 가운데 가장 먼저 이 표를 꺼내 들었다. 나의 성격표. 성격에 대해 먼저 다루어보기로 했다. 성격은 타고난 기질과 달리 변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도 성격이 여러 번 바뀌었다. 어려서 초등학교 때까지는 대중 가운데 조용했고 말수도 적고 소극적인 편이었다. 집에서는 말 많은 엄마 따라 말이 많았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발랑 까진 아이들처럼 산만하게 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중학교 때는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해져서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졸려하거나 심심해하는 찬스가 있으면 선생님의 호명에 따라 앞에 나가서 이선희나 이상은 노래를 부르고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날이면 목소리가 왕왕 울리는 화장실에서 거울로 내 얼굴을 바라보며 같은 노래를 무한 반복으로 불렀다.
알고보면 쓸데있는 알쓸TMI
[ 갑자기 추억지다. 내가 7살 때부터 살았던 그 집은 그 동네에선 최고로 높은 2층 단독 주택이었는데 화장실에는 - 우리는 목욕탕이라고 불렀다 - 엄청 커다란 창문이 있었고 그 창문을 열어제끼면 담쟁이덩쿨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가 일품인 그림 같은 집이었다. 상상해 보면 왠지 독일의 어느 주택가에서 살았던 것만 같다. 미장이였던 우리 할아버지가 직접 지으셨다던 집이었는데, 물론 돈을 많이 버셔서 돈으로 지으셨을 테지만. 할아버지와 이 집에 대해선 언젠가 한 번 글을 쓰고 싶다.]
딴 얘기로 많이 샜지만 아무튼 중학교 때도 조용하지만 노래는 왕왕 부르면서 보냈고 (초딩 때도 조용하지만 남자아이들 사이에선 이름이 거론되는, 간혹 짝꿍을 정할 때 여자 친구 옆에 남자 친구가 가서 앉으세요 하면 뒤에서 너가 가, 너가 가, 아 너가 간대메~ 하는 우격다짐 소리를 듣곤 했다. 좋은 쪽으로~) 고등학교 때부터가 성격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시기였다. 왜 그랬는지 고등 시절부터가 친구를 사귀는 찐 재미를 느끼는 때였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 때는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 되어갔고 강사 생활을 하면서는 거의 무법자가 되었다. 나 자신을 책임지고 독립하는 것에 방점을 찍은 후 인생책임론자가 되어 인생은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요, 인생의 주인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인 거라는 진리를 깨닫고 만다. 이때까지가 소극적 성향에서 적극적인 성향으로 바뀐 성격 역전의 시대.
우회전, 좌회전으로 내 맘대로 운전하듯 그렇게 성격의 방향을 바꾼 것은 아니지만 성격은 환경의 변화라는 틀에 내 의지가 맞물리면서 역동적으로 변해 왔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듯이. 그러나 아이를 낳아 남편의 도움 없이 전적으로 키우는 동안에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고장이 났고 그 이후로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운명의 틀이라는 것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본래의 성격과 변화된 성격이 뒤섞인 대격변의 시대, 혼란의 시대에 마구 뒤섞이면서 성격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 물론 성격을 내 맘대로 정해서 살 수만 있다면 정체성을 운운할 것도 없지마는, 그게 맘대로 되는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성격은 환경에 의해 변할 수 있는 거고 또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바꿀 수도 있는 거라고 믿으면서도 내 성격을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고 어떤 때는 감당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알아야 했다. 내 성격이 정확히 어떠한지, 그리고 나는 어떤 성격을 감당할 수 있는지. 아직 상담자에게 이 부분을 정확히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후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은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성격의 소유자냐에 따라 앞으로 내가 치고 나갈 일들을 감당할 능력이 되는지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 일들이라는 건,
하나는 학원을 차리는 것이고 하나는 상담사가 되는 것인데, 이 두 개의 직업은 상반된 성격을 요한다. 나는 두 가지의 성격적 특성을 다 가지고는 있다. 그러나 분명 두 직업 현장에서 나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두 가지 직업을 모두 가질 수는 있지만 어떤 분야에서 더 적은 스트레스를 느낄 것인가가 나에겐 판단 기준이다.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나는 검사를 받기로 했다. 기질 및 성격 검사라고 하는 TCI와 MMPI-2. 아직 해보지는 않았지만 그 결과가 나를 살짝 실망시킬 것 같아 두렵다. 내 성격에 대해 약간은 왜곡된 판단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여.
상담은 내면을 끄집어내는 과정
상담사와 나눈 대화는 폭이 넓었다. 내 예상으로는, 1회기마다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그것을 매듭지으면서 그와 관련되는 다른 문제를 2회기에 논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첫 회기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내 문제의 원인들을 어느 정도 매듭지어 놓아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거의 모든 문제 거리들이 상점에 진열해 놓은 보석들처럼 야무지게 나열되었다. 하나를 뱉으면 다른 하나가 얽혀 나왔고 끄집어져 나온 걸 얘기하면 또 다른 것이 기어나왔다. 어차피 내 안에서 꿈틀거리다 여러 토막 난 것들이라 생소한 것은 없었지만, 상담사는 내가 이미 많은 성찰을 통해 자기 문제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빠른 속도로 상담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리고 내가 성격이 참 좋다고 했다.
"어떤 부분에서 성격이 좋다고 생각하셨어요~?"
나는 또 한 번 단도직입적으로 상담사의 견해를 추궁했다.
"보통은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힘들면 그 사람을 원망하거나 탓하게 되는데 선생님은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고 또 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잖아요~. 그게 쉬운 건 아니거든요. 그건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거고, 어떻게 보면 사랑이 큰 거라고 볼 수도 있는 거지요."
"아, 그런가요? 네, 맞아요. 물론 상대방이 스스로 문제를 인정하거나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도우려고 하는 거지만, 도와주려고는 하는 거 같아요."
"근데 그렇게 큰 사랑은 갑자기 생기는 건 아니거든요? 그 사랑의 근원은 어디 있는 걸까요? 사랑을 많이 받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상담사의 질문에 나는 사실 초등학교 때까지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고 고백했다. 부모님께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컸다고. 하지만 그다음 가정의 경제 기반이 무너지게 되면서부터 집안의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그 이후로는 많은 시간을 불안과 싸웠던 것 같다. 상담사는 그 초등 때까지 받았던 사랑이 인생을 살아갈 힘이었던 거고 그래서 내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성격을 얘기하다가 사랑이 삶의 충분조건이라는 다른 얘기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내 삶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니까.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건 어렸을 적의 사랑과 추억의 힘이라는 생각. 만약 그 시절조차 사랑도 없고 추억도 없었다면 어땠을지. 아마 사랑은 베풀 만큼의 한 줌도 없었겠지. 인생은 정말 인삼처럼 쓰기만 한 거냐고, 왜 세상은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해 주고 뜯어가기만 하는 거냐고 허공에 발길질을 하며 살고 있었을 테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사랑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성격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니 성격과 사랑을 연결지은 상담사의 발언에는 의미가 충분한 것이었다.
첫 상담이 남긴 것
첫 상담에서 내가 상담사에게 들은 얘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이것뿐이다. 남에게 베푸는 마음이 성격 좋은 거라는 것(이게 맞는 말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린 시절 받은 사랑이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
많은 얘길 해주진 않았지만 상담사는 본연의 역할인 경청하기와 적절한 감정반영, 그리고 과녁을 적중하는 질문하기로 나의 말문을 더 많이 열어주었다. 부드러운 말씨와 온화한 표정으로 내담자인 나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연스럽고 편안했고 따뜻했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따뜻함. 이걸 기억하면서 다음 시간을 기약한다. 나도 먼 훗날 그분처럼 상담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진행할 수 있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