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정 Dec 29. 2023

양다리 걸치기

성격 편

이제야 알겠다. 그토록 아리까리했던 내 성격을.

뭐 물론 100퍼센트 알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90퍼센트는 알겠다.


둘째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다녀왔다. 초등 2학년 때부터 줄기차게 주 1회 배워 오던 것이 깜냥이 되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을 하고 말이다. 역시 의지와 꾸준함을 이길 자는 없도다!! 첫째 아들이 사물놀이로 졸업식 무대에 올라갔을 때만큼 손과 심장이 벌벌 떨리지는 않았지만, 둘째 아들의 드럼 연주에도 사뭇 가슴 뻐근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어머, 못 본 새 많이 컸네~ 몰라볼 뻔했어~^^. 아니, 어쩜 그렇게 드럼을 잘 쳐~ 대단해~." 오랜만에 마주친 둘째 친구의 엄마들에게 칭찬 세례를 받고 운동장에 나가 또 만나는 사람들과 저마다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고 다른 가족들 사진을 찍어주고 정신없이 분주한 가운데 초등 졸업식이 막을 내렸다.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딸그락거리며 밥을 먹고 남편과 다시 학교 강당으로 가서 드럼을 수거해다 집에 갖다 놓고 남편을 미용실에 데려다주고 수업을 하러 공부방 앞에 도착하니, 후~~~ 그제서야 정신줄이 놓인다. 정신줄 바짝 붙잡고 있느라고 고생했다.


가벼운 마음이 외출 후에 무거운 마음으로 변해올 때면 무수하게 생각이 번잡해짐을 느낀다. 껄끄러운 사람과 마주칠까 봐 신경 썼던 내 소심한 마음과 그 껄끄러운 사람의 자녀가 날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순간의 당혹감, 당혹감과 동시에 튀어나온 나의 "오랜만이다~~"하는 인사와 속으로 불거지는 미안함. 언제 한 번 만나서 커피 한 잔 하자고 했던 학부모와의 인사와 커피 한 잔에 대한 부담감을 못내 표현하지 못하는 미안함. 애써 밝고 명랑하게 웃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밝고 명랑한 것인지 모르지만 시종일관 총총거리며 다른 가족들 사진 찍어주느라 바쁜 나의 설레발. 나의 그 모든 행동을 바라보며 근처를 배회하던 나의 배우자 박땡땡 씨의 얼굴에 가득 껴 있는 피곤함. 비밀이어서 말 못 하지만 둘째 아들과의 나부랭이 같은 신경전과 친구와의 약속 시간을 찰떡같이 지키느라 밥 먹고 부모를 내팽개친 아들에 대한 배신감. 아들이 곧 사과를 했지만 다시 구구절절 옳고 그름을 따져가면서 버릇을 바로잡아주려고 노력하는 나의 처절함. 무슨 중요한 말을 하려고 하는 아들에게 학원 시간이 임박함을 알리면서 이따 밤에 다시 이어서 얘기하자고 등 떠미는 엄마인 나의 옹색함.


이 모든 것들이 실타래같이 친친 감겨 내 마음 한가운데 넓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내가 원래는 내향형이었구나.


맞다. 난 원래 어렸을 적에 내향형이었다. 보통 그땐 내성적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나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일기에도 그런 말을 많이 쓰곤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부터 좀 더 활달해지기 시작해서 대학 때 더 활발해졌고 내향형에서 외향형으로 나를 적극적으로 바꾸면서 아마 신비롭게 즐거운 경험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외향적인 성격이 훨씬 자유로웠고 바깥 세계와 친숙해지기가 쉬웠으며 타인들에게 더 많은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밝고 활기차게 생활하니 에너지도 넘치게 되고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능력들이 밖으로 끄집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작정을 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성적인 성격보다 외향적인 성격이 사회생활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바꾸었다. 내 성격을. 난 내성적인 사람보다는 외향적인 사람이 좋다!!!!!를 외치며 일기에다 그런 나의 행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출산한 후부터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살아가는 것이 왠지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도 힘들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맞춰나가는 것도 힘들었다. 에너지가 달렸다. 육아의 고달픔과 새로운 직업 생활의 불안정감이 내 에너지를 더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부정적인 동력이었다. 7~8년을 그렇게 악착같이 버텼으나, 코로나가 터진 후 내 에너지는 소진되었다. 바닥을 치고 내동댕이쳐졌다. 번아웃이 왔다. 아....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나를 위한 거였다. 나는 내면의 평안을 확실하게 느꼈다. 외부와의 차단은 나를 자유롭게 했고 더 이상 시달릴 것도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일은 꾸준히 했지만 관계로부터의 단절은 나에게 쉼과 휴식이 되었다.


오늘 내가 오랜만에 나갔던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웃고 인사하며 즐긴 그 시간은 실로 행복했다. 사람들이 반가웠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그 행복의 여운이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는 이상 그것은 진정한 행복은 아니었다. 순간의 행복에 불과했다. 물론 순간의 행복도 중요하다. 그 작은 행복이 모여서 큰 행복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여운이 그렇게 짧게 느껴진 것은 의외였다. 그래서 난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생애 최초 17~18년 동안은 내성적인 아이였고 한동안 24~25년 간은 외향적인 사람으로 살았지만 그 이후부터 지금은 원래의 내 성격으로 돌아와 있는 거라고. 외향적인 사람이냐, 내향적인 사람이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의 성격 혹은 성향일 뿐이니까. 하지만 나처럼 두 성향 사이를 극과 극으로 오가면서 혼란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궁금하다. 자기 진짜 성격이 어떤 것인지. 나는 오늘 알았다. 난 그동안 생존을 위해, 사회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 외향적인 성향을 취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외향적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왜냐. 난 이제 혼자 있거나 소수의 내 사람들과 있는 게 훨씬 편하고 좋으니까. 그래서 행복하니까.


외향적인데 힘들고, 내향적인데 힘든 분이 혹시 여기 계신가? 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시길 추천한다. 자신의 성격과 반대로 살아보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그러면 두 줄 위에서 하는 줄타기처럼 이 줄과 저 줄을 마음대로 갈아탈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내향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이게 오늘 내가 알게 된 비법이다. 뭐, 거창한 건 아니지만, 이런 확신이 드니 기분이 째진다. 그리고 감사하다. 이런 깨달음을 주셔서. 야호!!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 사람이 나르시시스트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