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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Dec 19. 2023

이런 사람이 나르시시스트입니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 신화 속 미소년인 나르키소스와 연관지어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Naecke)가 1899년에 만든 말로, S. 프로이트가 이를 정신분석 용어로 도입한 뒤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정신분석에 따르면, 유아기에 리비도가 자기 자신에게 쏠려 있는 상태를 1차적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 나중에 자라면서 리비도는 자기 자신을 떠나 외부의 대상으로 향하게 되는데 애정 생활이 위기에 직면하여 상대를 사랑할 수 없게 될 때, 유아기에서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상태로 되돌아가는 2차적 나르시시즘이 발현된다. (지식백과 참고)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라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다. 자기에 대한 애착을 지니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자기애는 정신분석 전통에서 조금씩 발전하면서 대중화되었는데 그 가운데 '건강한 자기애'에 대한 개념이 탄생했다. 하인츠 코헛(Heinz Kohut)은 자기애에 발달선이 있다고 믿으며 건강한 자기애와 병적 자기애를 구분하였다. 기애가 지나치면 병적 자기애, 즉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진단한다. (DSM, 자기보고식 질문지로 진단)


코헛의 자기심리학 모델에 따르면, 병적 자기애에 해당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 증상은 발달 단계 초기에 부모의 공감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와 공감적 관계를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감은 자녀가 본디 어떤 아이인지 이해하는 마음을 아이와 나누고, 일찍이 아이의 입장이 돼보는 것이다. 이 과정이 충분하지 않으면 자녀는 자존감을 조절하는 최대 능력치를 키우지 못한다. 부모가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춰 적절하고 현실적으로 조율해서 아이가 자존감을 조절하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비합리적인 과대평가와 열등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자기애적인 어른이 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나르시시스트)의 특징>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애적 특징이 한꺼번에 전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 *5판에 따르면, 자기애성 성격장애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 가운데 50~70퍼센트가 남성이며,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은 다음의 16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대화의 주제는 오로지 자신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거의 항상 자기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자기가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주목해 주기를 기대하는데, 그 의견은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강조되기도 하고 현실에 근거한 의견이라도 그의 말은 끝없이 반복된다. 따라서 그와 가까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이 등장할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기중심적이고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의 요구나 감정을 인지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으며, 상대방의 감정이나 신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2. 최고에 대한 환상이 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하 나르시시스트)의 마음에는 성공, 권력, 탁월함, 아름다움, 완벽한 짝에 대한 환상이 가득하다. 그는 모든 면에서 가장 좋은 것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애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자기보다 과장되고 과대한 자기이다. 그렇기에 환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들은 어마어마한 좌절과 분노를 느낀다.


3. 끊임없는 칭찬이 필요하다.


나르시시스트는 겉으로 자신감이 넘쳐도 자존감 self-esteem이 견고하지 않아서, 쉽게 상처받고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끊임없이 자신을 북돋기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칭찬, 찬사를 기대하고 요구한다. 찬사받을 업적이 없을 때조차도 우월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비판에 극도로 반발한다. 자기 내면에 있는 흠결이 올라오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기감은 극도로 연약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4. 특권 의식을 느낀다.


나르시시스트는 남들이 자신에게 특혜를 제공해야 하며, 자신의 요구를 군말 없이 즉시 이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면 초조해하며 화를 내거나, 남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수동공격을 한다. 그들 눈에 타인은 원래 자신의 요구에 따르는 존재로 보일 뿐, 타인의 필요와 바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배운 적이 없고, 남들이 자신의 요구를 즉각 들어주지 않으면 발끈하는 아이와 닮았다.


5. 남을 이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르시시스트에게 자석처럼 끌린다. 사람들은 나르시시스트가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있고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사람과 삶을 나누고 싶어 한다. 나르시시스트가 기대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는 경우, 남들을 이용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타인의 기분이나 이해관계를 헤아릴 마음도 없다. 결과적으로 나르시시스트는 친구 관계에 문제가 생기며, 혹시 오래된 인관관계를 유지한다 해도 신의를 저버리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들은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속이고 거짓말을 일삼기 때문이다.


6. 남을 시기한다.


질투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또 다른 흔한 증상이다. 자존감이 낮고 남들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보니, 나르시시스트는 어떤 물건이나 사회적 지위, 찬사 등 자기에게 없는 것을 손에 넣은 사람을 위협의 대상으로 본다. 그는 자신이 마음먹었을 때 원하는 모든  왜 가질 수 없는지 이해 못하고, 마땅히 자기 몫이라고 느끼는 보상을 얻는 데 방해꾼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복수심을 불태운다. 남들이 자신을 시기한다고 믿기도 한다. 그를 믿던 상대방은 애먼 혐의를 받아 억울한 처지가 된다.


7. 관심의 중심에 있는 것을 즐긴다.


나르시시스트는 끊임없이 칭찬을 들어야 한다. 낮은 자존감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나르시시스트는 대화를 장악하고 자신의 지식과 성취를 과장한다. 잘난 체하고 낯이 두꺼운 유형(후피형)이나 상처받기 쉽고 민감한 유형(취약형)이나 틈만 나면 주목받고 싶어 하고 관심에 목말라하는 것은 공통점이다.


8.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나르시시스트는 다른 사람의 요구와 감정을 인지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 남들이 왜 자신의 관점으로 봐주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타인에게 감정을 이입할 줄 모르거나, 남들도 각자 힘든 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의 힘든 사정을 인지하더라도 어째서 그들이 자신의 요구에 맞춰 주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9. 야망이 끝이 없다.


나르시시스트는 최고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최고가 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고, 능력이 부족할 때 격분하거나 깊은 실망감에 빠져 자신에 대해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자신의 영향력이나 외모나 부가 자신이 생각하는 기대나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지에 골몰한다. 이런 특권 의식과 우월감이 그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인맥을 쌓으려고 하고, 신분 상징(좋은 차, 좋은 집 등)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이유다.


10. 굉장히 불안정하다.


나르시시스트를 처음 만나면 아주 매력적이고 특권 의식과 자신감이 있다는 인상을 받지만, 대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불안정하다. 그는 남들은 깎아내려야 직성이 풀린다. 그는 거짓말하는 사람(의리 없는 친구나 동료)을 종종 거론하는데, 그가 무의식적으로 부인하는 바로 그 특징을 자신도 드러낸다.


11. 눈에 띄게 매력적이다.


나르시시스트는 권력과 지도력을 행사하는 자리를 탐색하다가 남들을 조종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손에 넣기 위해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고 관계가 발전된 상대에게 충동적으로 험담을 하는데, 이런 행동으로 결국 남들에게 거부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을 깎아내리는 공격적인 사람으로 돌변하고 자신의 요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불같이 화를 내며 현실을 부정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나르시시스트의 자신감과 매력에 끌리다가도, 점차 그가 의심스럽게 굴고 관심을 얻고자 남을 속인다는 걸 알아차리면 그의 곁을 떠난다.


12. 경쟁심이 지나치다.


나르시시스트의 세계관에는 오로지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그는 사람들을 교묘하게 다루면 자기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승자 그룹에 속하고자 온 힘을 다한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고 승자여야 하므로 남의 성공을 받아들일 줄 모른다. 전승 아니면 전패가 있는 세싱에 살다 보니, 패배를 맛보면 우울감에 시달린다.


13. 뒤끝이 길다.


나르시시스트는 겉보기에 자신감이 넘치고 남의 생각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 같지만, 극도로 민감하고 자신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목숨을 건다. 자신을 모욕하는 이에게는 복수심을 품고, 그들의 의견에 어깃장을 놓으며, 그들이 원하는 건 주지 않고 버틴다. 비판을 듣거나 자신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이를 사적인 공격이나 도전으로 받아들여서 지독한 원한을 품는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면 이 감정을 오랜 세월 고스란히 간직한 채 상대방을 필사적으로 깎아내린다. 자신에게 이런 감정을 안긴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할 때도 있지만, 실질적인 대화의 장을 열 수가 없다. 그가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비판을 용납하지 못한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잘못을 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를 비판한 이가 자기를 패자로 만든 장본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는 비판을 들으면 감정이 폭발해 남을 인정사정없이 비난하고, 소리 지르고, 울부짖는다. 그와 가깝고 그를 아끼는 사람을 헐뜯기도 한다.


15.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려고 항상 바쁘게 지낸다.


나르시시스트는 콘서트며, 연극이며, 값비싼 저녁 식사 자리며, 고급 파티에 참석하려고 한다. 한가하다는 건 그가 자신의 믿음만큼 우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내면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16. 자신이 모든 걸 통제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남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좌중의 중심에서 모임을 주도한다. 그는 나서서 모든 약속 일정을 잡으며 자기 무리를 이끈다. 이런 행동이 남에게 폐가 되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남의 요구가 얼마나 희생되건 자신이 리더의 위치를 당연시한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목표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최우선으로 자리하도록 줄기차게 연락한다. 남들은 하던 일도 접고 이 연락을 받아야 한다. 그는 자기 전문 분야에서 대단한 친절을 베풀기도 하는데 이는 남을 깊이 아끼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능력 있고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지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는 남이 자기를 알아주는지 항상 예의 주시한다.



*미국정신의학회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APA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정신질환 진단 분류 체계. 세계보건기구 WHO가 공인한 국제 질병 분류 ICD와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정신질환 진단 분류 체계다.


로리 홀먼, <그는 왜 자기 말만 할까?>, p.35~53




나르시시스트는 논문에서 검토한 바에 의하면, 외현형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내현형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나뉜다. 성격의 특성으로 분류한 것인데, 자기애 성향이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가, 속으로 숨겨져 잘 나타나지 않는가로 볼 수 있다. 전자를 과시형(과대형), 후자를 취약형이라고도 부른다.


내가 처음 나르시시스트라는 용어를 접하게 된 건 몇 달 전 유튜브를 통해서였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알고리즘은 제법 유명한 심리 관련 유튜버나 정신과 의사들을 소개해 줬는데 그들이 나를 자극했던 것이다. 나는 점차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되어 갔고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정보는 속속들이 나의 과거 트라우마와 과거 나의 정신을 병들 뻔하게 했던 몇몇 사람들을 해부하도록 했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5가지 유형으로 그들을 해부한 것은 매우 참신했는데 그건 아직 학문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원 산하 기관을 통해 개인 상담을 받으면서 나르시시스트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잠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힘든 관계에 얽매여 있었는지를.


나는 나르시시스트에게 조종당했었던 하나의 희생양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내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거절도 못하고 끊임없이 들어주었던 건 나 역시도 약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었다. 지난번에 쓴 것처럼, 내면에 충족되지 못한 애정을 그 착취적인 관계에서 어느 정도 보상받았기(보상받았다고 무의식적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며, 또한 극복하지 못한 채 남아 있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내면에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느껴지는 이상하고 불쾌한 감정의 근원을 내 안에서만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르시시스트가 어떠한 식으로 상대방을 착취하는가를 분명히 이해했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나르시시스트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어서 각자 이유와 항변은 있겠지만, 본인들의 행태가 현재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파악야 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성찰해 나간다면 이 땅의 많은 나르시시스트들과 그의 희생양들이 하나둘 사라질 수 있으련, 나르시시스트 본인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없음이 참으로 애석할 뿐이다.


그들에겐 사랑이 없다는 것, 제대로 된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상담의 자리에 절대로 나가지 않을 거라는 것이 극한의 한계다. 생각보다 많은 나르시시스트가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들을 특히 내현형 나르시시스트들을 빨리 걸러낼 수 없다는 걸 알리기 위하여, 그리고 나르시시스트가 병적인 자기애로서 장애에 해당되므로 피해자들은 하루빨리 그들의 특성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알리기 위하여


이 글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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