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정 Nov 14. 2023

행복과 불안의 간극


5월 22일


인생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이 수긍했지 않은가. 나 또한 어딜 가나 그런 감정에 사로잡힌다네. 활동하고 연구하는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볼 때, 인간의 모든 노력이 욕구 충족을 위해 사용되며 그 욕구라는 것이 궁핍한 생활을 연장시키는 것 외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그리고 연구 성과에 만족한다는 것이 우리를 가둔 감옥의 벽에 온갖 형상과 밝은 풍경을 그려놓는 것 같은 몽상적 체념에 다름 아님을 알게 될 때, 빌헬름, 그럴 때면 나는 말문이 막힌다네. 그러면 나는 내면으로 되돌아와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곤 하지! 그것 또한 사실적인 묘사나 생생한 에너지가 넘치는 세계는 아니라네. 어렴풋한 예감과 어두운 욕망의 세계지. 그곳에선 모든 것이 내 감각 앞에서 몽롱하게 떠돌고, 나는 꿈을 꾸듯 그 세계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다네.


아이들은 뭔가를 원하면서도 왜 그것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학식 있는 교사나 가정교사들의 의견이 일치하네. 하지만 어른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네. 그들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이 세상을 방황하지. 뿐만 아니라 목적에 맞게 행동하는 경우도 드물다네. 비스킷과 회최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는 매한가지지. 아무도 그런 사실을 선뜻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명약관화한 일이네.


이와 관련해서 자네가 무슨 말을 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에 인정할 것은 인정하겠네. 말하자면 아이들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인형 옷이나 입혔다 벗겼다 하고, 엄마가 사탕과자를 넣어둔 서람 주위를 맴돌다가 마침내 원하던 것을 손에 넣기라도 하면 그걸 한입에 털어넣고는 "더 줘!"하고 떼를 쓰는 인간들, 이런 인간들이야말로 정말로 행복한 거겠지. 또 보잘것없는 자기네 일과 제 열정에까지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여놓고 자기네가 하는 일이 인류의 행복과 안녕을 위한 굉장한 프로젝트인 양 유세를 떠는 사람들 역시 축복받았다 할 것이네. 그런 재주를 가진 자들에게 부디 축복이 있기를! 하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만사의 향방을 주시할 줄 아는 사람, 형편이 괜찮은 시민들은 자신의 작은 정원을 낙원처럼 가꿀 줄 알며, 불행을 겪는 사람들도 무거운 짐을 지긴 했지만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고, 저 밝은 햇살을 단 1분이라도 더 바라보길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임을 아는 사람, 그래, 그런 사람이라면 묵묵히 자신의 세계를 일궈나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사람은 아무리 속박을 받아도 가슴에는 늘 자유라는 달콤한 감정을 간직한다네.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p.20~22


사진 출처 : 지식백과



비스킷과 회초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방황하는 처지는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마음은 안정적이고 평온한 상태였는데, 태풍이 한 번 몰아치더니 이내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가 시작한 새로운 과업이 나에게 정녕 맞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연유에서다. 미래를 겨냥하고 새롭게 시작한 공부지만 이 길이 나의 길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마음이란 이렇게 빨랫줄에 걸린 빨래처럼 가볍게 흔들리는 것인가. 나는 평정심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목표를 조금 수정하며 다시 안정을 얻었다.


그런 와중에 오늘 오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내 마음을 홀리는 문장들이었다. 내 마음에 딱 맞는 옷처럼 그렇게 편안하게 입혀졌다. 철학자 괴테 아저씨가 이 책을 쓴 것은 무려 1771년부터였고 그의 나이 고작 23세였지만 47세인 나의 현재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문장들은 넘쳐났다. 그래서 하루 치의 편지를 그냥 훔쳐와 버렸다.

 

괴테의 말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영롱하게 날아와 내 마음에 박힌다.

인생은 한낱 꿈에 불과한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그 욕구가 충족된 후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욕망을 갖는 것이 어른의 세계라는 것임을. 인정한다. 욕망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까 봐 벌벌 떠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욕망으로 살고 욕망으로 죽는 인간이지만, 그러나 괴테는 그보다는 자신의 정원을 가꾸며 무거운 짐을 지고서라도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길임을 말하고 있었다. 마음의 감옥을 만드는 것은 사회나 환경의 탓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할 뿐이라고. 스토아 학파들처럼, 괴테도 로고스(이성)를 중요시했던 까닭일까. 인간은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사는 것이다. 지금이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SCT라는 문장 완성형 검사지에 이런 말들을 기록했다.

9. 내가 바라는 여인상(女人像)은 진취적이고 똑똑하며 자기의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다.

15. 내가 믿고 있는 내 능력은 현재는 잠재되어 있으며 10년쯤 후에는 내 생각을 초월하여 발현될 것이다.

16. 내가 정말 행복할 수 있으려면 지나치게 미래의 내 모습에 집착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아야 한다.

18. 내가 보는 나의 앞날은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전체적으로는 희망적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이룰 것이다.

28. 언젠가 나는 학원(혹은 교습소)을 운영해 돈을 많이 번 후, 해외여행을 다니며 작가 활동을 할 것이다.  

30. 나의 야망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41. 내가 평생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학원을 운영하고 작가 활동을 하는 것이다.


미래를 향해 있는 목표들, 이것이 나의 현재를 불안하게 하는지 행복하게 하는지. 다시 한번 뒤돌아 보았다. 그럼에도 나는 현재 행복하면서도 불안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떼어낼 수 없는 것들로 내 안에 꼭 붙어 있다.




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말들

6. 내 생각에 참다운 친구는 나를 비판하지 않고 나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해 주는 친구이다.

11. 내가 늘 원하기는 내 마음대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32.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38. 행운이 나를 외면했을 때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준비한다.

42. 내가 늙으면 고독을 즐기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 

43. 때때로 두려운 생각이 나를 휩쌀 때 기도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 편안해진다.  

45. 생생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2층 단독주택집에서 마구 뛰어놀고 노래 부르고 옥상에 누워 엄마, 오빠랑 별을 본 것이다.


괴테가 말했듯, 내 마음대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나는 추구한다. 지금도 그렇다. 약간은 불안하지만 행복하다. 그리고 마음 먹으면 시시때때로 행복할 수 있다. 다만 누군가 나의 길을 훼방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만은 피해 가기를

46. 무엇보다도 좋지 않게 여기는 것은 타인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하는 무례함이다.


이것을 경계하며 이런 사람은 만나지 말기를, 그리고 자유와 행복을 순간마다 누리시기를 모든 분들께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변기통 위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