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정 Nov 13. 2023

변기통 위에서


아침을 먹고 포만감을 느끼면서 잠시 상념에 잠겼다. 관절에 안 좋다는 양반다리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왼손은 턱을 받치니 그렇게,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 머릿속으로 주루룩 흘러갔다. 내가 들었던 말들과 내가 내뱉었던 말들이 이내 머릿속 창공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처럼 부유했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은 올바르고 타당한 것인지, 내 정신을 번잡하게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지 다시 곰곰 씹어 보았다. 그러다가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 변기통 위에 앉았다. 변기통으로 걸어가는 5초는 드라마의 허리를 잘라먹는 광고 시간처럼 내 생각도 잘라먹었다.  변기통 위로 내 몸이 옮겨가자 내가 하던 생각은 궤도를 이탈하여 이내 다른 가지 뻗어나갔다.


생각을 쪼개어 보자.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떠오르는 생각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 나를 번잡하게 하는 생각 따위로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생각을 나도 모르게 곱씹게 되면 그 생각은 차차 검은색으로 변해 간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그 검은 생각은 땡땡한 응어리로 뭉쳐져 쓰레기통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 그곳은 어디일까. 나는 그것을 자물쇠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어떤 곳에 있다고 해야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다만 그 생각에는 자물쇠가 달린다. 가벼운 플라스틱 자물쇠가 아니라 우리가 어렸을 때 흔히 보았던 구릿빛 무겁고 큰 자물쇠다.


자, 다시 한번 나는 생각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철학에서 철학함이라고 부르더라. 고로 나는 지금 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몸뚱이처럼 어느 정도 자란 후에 성장이 멈추고 그다음 인생의 선로대로 노화해서 죽어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생각은 생겨나자마자 파생되고 또 생겨나며 사라졌다가 다시 생긴다. 어디로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뻗어나가고 탄생하며 소멸할지 그 향방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생각이라는 것은 대단히 창조적이며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 몸뚱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 그 생각이라는 것은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는 희한한 동물이다.)


이렇게 생각은 꼬리잡기를 잘도 한다. 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생각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내가 처음에 언급한 생각이라는 것을 시간대로 구분해 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생각은 일어나는 일과 관계가 있는데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기억'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이라고 하기보다는 기억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필요하다.) 즉, 기억을 한다는 것은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 즉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기억'과는 달리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상상, 공상, 예상, 짐작, 추측, 예지, 희망 등이다. 이러한 것들은 미래에 현실화될 수 있는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이와 결을 달리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망상이다. 이 망상이라는 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것도 아니고 미래에 일어날 것도 아닌, 그저 허황되고 비합리적인 병리적인 증상이다.


따라서 내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고 하는 생각이라는 것은 이 중에 '기억'에 해당되며 그중에서도 '부정적인 기억'을 말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기억은 내가 그것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않을 때, 나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아니면 자물쇠를 채우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개인의 몫이다. 여기서 나는 기억의 쓰레기통을 쓰레기통이라고 하지 않고 '휴지통'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가 메일을 관리할 때도 메일을 휴지통에 버리면 그곳에서 얼마간 보관한 후에 싹 깨끗하게 비우듯이 나의 부정적인 기억도 '기억의 휴지통'에 담았다가 아주 깨끗하게 비우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처리되지 않은 생각에는 잠시 자물쇠를 채워 두고 필요할 때 열쇠로 딸깍 열어서 그 기억을 꺼내본 후, 다시 자물쇠로 채워둘지 휴지통에 버릴지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선되어야 할 것은 분석하기다. 스쳐 지나가는 일상적인 생각은 가만히 두면 6초 후에 사라지지만, 뇌 피질에 저장되는 생각은 그 중요도에 따라서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뉘게 된다. 긴급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단기 기억으로 저장되었다가 사라지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라거나 반복적으로 입력되는 생각은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다. 그냥 바로 소멸되는 생각이라면 분석할 시간조차 없다. 내가 분석해야 할 생각이라는 것은 장기 기억에 저장되어 자꾸 검정 색으로 변해가는 부정적인 기억이다. 이것을 쪼개야 한다. 자물쇠로 채울 기억인지, 휴지통에 버려야 할 기억인지는 쪼개기를 하다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약간 멍하게 있을 때 쥐도 새도 모르게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자꾸 떠나지 않는 검은 기억은 휴지통으로 가야 하는 생각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잠시 자물쇠로 채우면 된다. 휴지통으로 버려야 할 기억만 제대로 추려내도 우리는 한결 가벼운 정신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


자물쇠에 채워진 기억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도 있고 아니면 몸집을 키울 수도 있다. 몸집을 키운 기억이 자물쇠를 빠져나오고 싶어 할 때, 우리는 열쇠를 가지고 그 기억을 풀어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쪼개서 나를 힘들게 하는 기억은 휴지통으로 보낸다. 어떤가? 어려운가?


건강한 성인들은 하루에 6200번의 생각을 한다고 한다. 이것을 분 단위로 바꾸면 1분당 평균 6.5번의 생각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겨레, 곽노필 기자, 2020)

우리가 흔히 들었던 '오만 가지 생각'이라는 말은 약간은 과장되었지만 왜 그런 수식어가 붙었는지 이해가 된다. 그만큼 우리 뇌는 오만 가지 생각을 담고 있는 저장고니까 말이다. 냉장고에 신선한 과일과 음식, 오래되고 썩어가는 음식이 동시에 담겨있듯이, 우리 뇌 속에도 신선한 생각과 썩어가는 생각이 동시에 담겨있다. 아무리 부지런하고 건강한 사람이라도 냉장고매일 청소하고 비울 수는 없듯이, 우리뇌 속의 부정적인 기억들 바로 청소하고 곧바로 비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점검하면서 썩어가는 기억들 비울 수 있는 용기는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용기도 있어야 하고 결단력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정적인 기억에 얽매이지 않고 건강하고 즐거운 생각을 더 많이 품으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 


각에 현재란 것은 없다. 지금 바로 한 생각도 1초가 지나면 과거의 기억으로 변해버리니까. 그래서 난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한다. 미래를 그리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 미래는 내가 그리는 대로 현재가 되어 줄 수 있으니까.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부정적인 기억은 비워 버리려고 용을 쓰고 있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토록 평범한 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