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자기에게 가장 기뻤던 일과 가장 슬펐던 일,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 일을 기억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최대한 그 기억을 자세히 쓰면서 그때의 감정을 톺아보게 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에 이루고 싶은 일들을 버킷리스트로 작성하도록 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지난 일들을 거의 잊어버리곤 하지만 한두 명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놓으면 불현듯 자기 머릿속에 있는 기억들이 튕겨 나오게 마련이다. 아, 나도 생각났다! 아, 그때 이랬어요, 저랬어요. 그래, 그런 걸 한번 글로 써 봐. 최대한 구체적으로~!! 네~!! 알겠습니다!!
먼저 아이들에게 한 해를 정리해 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부여한 후, 느지막이 나는 어제서야 펜대를 잡아보았다.
2023년 연말에는 둘째 아들의 졸업식도 있었고 2023년의 마지막 저무는 해와 2024년의 새로 뜨는 해를 지켜볼 수 있었던 1박 2일 부산 가족여행도 있었던 고로, 빡센 일정으로 인한 여독이 좀처럼 가시지 않은 까닭이 있었다고나 할까. 분주한 가운데 마음을 비울 시간과 여유가 부족했다. <니체의 말>을 완독하고 밀리의 서재를 통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청취하면서 쓰고 싶은 말들이 귓가를 맴맴 돌고는 있었지만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제대로 내 말로 잡아다 쓰진 못했다. 이건 딴 얘기지만,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말들은 요즘 나에게 생기를 주고 공감을 준다. 읽든 듣든 마음이 지극히 편안해짐을 느낀다. 그래서 이번 방학에 새로 시작할 연재는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을 소재로 할 듯싶다.
2023년을 회고하며 나도 한번 글로 써 본다.
1. 가장 기뻤던 일
- 2023년 47세의 나에게는 생각지도 않은 좋은 일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뻤던 것은 글로써 인정받은 일이었다. 그 기쁨이 차고 넘쳐 이미 브런치에 다 쏟아내긴 했지만, 전자책 출간의 제의를 받아본 것이나 헤드라잇이라는 플랫폼 창작자로 선정된 것, 그리고 독서감상문으로 지역에서 수상을 한 일이 있었다. 물론 전자책 출간 계약은 철회했고 헤드라잇 활동도 지금은 하고 있지 않으며, 내년에는 독서감상문 공모전에도 출품하지 않을 계획이라 이 세 가지는 모두 유명무실한 일이 될 테지만, 그래도 글쓰기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일은 나에겐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2. 가장 슬펐던 일
- 2023년엔 10년 간 알고 지낸 지인들과 관계를 정리했다. 타의가 아니라 자의였다. 서로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나의 트라우마가 계속 건드려지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나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사람과 그들은 쇠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만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잠들어 있던 것 같은 트라우마가 소생했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의 밖에서 트라우마는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달랐고 그들은 나를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사람에 대한 그들의 경험과 나의 경험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좁혀질 수 없는 강이 그들과 나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굳이 여전히 살아있는 트라우마를 자꾸 흔들어 깨워야 할 것인가? 굳이? 굳이 애쓸 필요가 있을까? 난 긴긴 시간 동안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그로써 자의적으로 관계를 정리했다. 그건 슬픔이면서 동시에 해방이었다. 정신적 해방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난 꿈에서 그들을 만난다. 지겹도록 끈질긴 인연으로... 관계란 이다지도 질긴 것이다.
3. 가장 아쉬웠지만 감사한 일
- 2023년 하반기에는 상담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나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인간 심리에 대한 탐구욕이 학창 시절부터 내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심리에도 타인의 심리에도 촉각을 세우는 일이 많았다. 내가 보는 관점과 타인이 보는 관점이 다를 때면 왜 그게 다른 것인지 궁금했고 성격에 문제가 있어 보이거나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조금이라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짱구를 굴렸다. 하지만 전문 지식이 없는 내가 뾰족한 근거도 없이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다. 사람은 본래 잘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 믿음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의지를 이미 포기해 버린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확고한 믿음으로 얘기하고 있어도 내 말이 씨도 먹히지 않는 경우가 있을 때면 난 굉장히 답답함을 느꼈다. 아~ 내가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라서 공신력이 없는 거구나, 내 말이 씨로 먹히려면 제대로 학식을 갖추고 자격증도 취득해서 신뢰를 얻어야겠구나 생각했다. 내 말에 대한 타당성을 얻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원을 알아보니 내 스케줄과 맞는 곳은 특수대학원 뿐이었다. 나의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선 내로라하는 학교에 가는 것이 더 희망적이었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맞추어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라는 상담대학원을 선택하였다. 이것은 학벌 면에서 아쉬운 점이었다. 하지만 열네 분의 훌륭한 교수님들과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는 수업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대학원을 가는 날은 원기가 충만해졌고 수업 시간 나의 발표는 무르익었으며 기말고사 성적까지 올 A+ 이 나왔을 정도로 매 순간이 열정이었다. 몸은 부서지는 듯했지만 정신은 맑았다. 물론 내가 듣고 싶은 수업들을 어느 정도 듣고 나면 학벌을 높이기 위해 편입을 감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의 교수님들과 학우님들이 너무 좋고 또 내가 수월하게 공부를 하기 위해서 여기 머무르는 것이 최선책일 수도 있다.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역시.
글은 나의 반영이고 나의 삶이다.
2023년엔 줄기차게 걷고 달렸다. 그렇다면 2024년은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 우선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를 좀 더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소통하는 한 해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물론 상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내 수업도 조금만 더 확장하고, 주변의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지금 나는 '작심'이라는 스터디 카페에 와 있다. 5천 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2시간을 보장받았지만, 나의 정신은 이러한 곳에서 해방이 된다. 읽고 쓰는 삶을 위해 2024년은 돈을 아끼지 말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자. 한발 두발 내딛는 이 걸음이 나의 삶의 행적이고 기록이다. 다음 주부터는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 작은 아들과 남편은 드럼을, 나는 피아노를 치고 첫째 아들도 악기 하나를 배우게 되면 나중에 작은 연습실을 빌려서 합주를 해보는 것이 또 하나의 소망이다. 인생을 화려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뭐가 걸리는가.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인데,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라. 기분이 째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