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소년의 손을 잡고 나란히 도시의 문 앞에 서 있는 광경을 떠올렸다. '옐로 서브마린' 초록색 파카를 입은 소년은 서슴없이 나와 헤어져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문 안쪽에 발을 디딜 것이다.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p.536~537 / 무라카미 하루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이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여섯 정도 된 어른 남자와 열여섯에서 열일곱 살 정도 사이의 소년의 뒷모습을. 나란히 도시의 문 앞에 선 채 손을 맞잡은 모습을. 나는 그림을 배워 본 적이 없지만 높다란 회색의 벽과 인간이란 존재의 뒷모습 정도는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꽤 그럴듯하게 그려보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왔다.
소설의 맥락을 스스로 깨뜨리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건, 왜 내가 그동안 그림을 못 그린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해왔느냐 하는 문제의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나'와 '소년'이 손을 잡고 도시의 문을 향하여 서 있는 것을 상상하는 그 중요한 순간에, 나는 소설 속 도시의 벽보다 내 안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나의 벽을 향하여 서 있었다.
누군가를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저 나는 왜 그동안 내 안의 가능성에 한계를 그려 놓았던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다른 사람을 탓하고 싶고 환경을 탓하고 싶은 것이다. 왜 나를 구겨진 양동이처럼 만들어 놓았는지, 왜 자꾸 나를 남들의 더러운 감정을 받아내는 양동이로 자라게 내버려 두었는지, 왜 세상은 이토록 살기 좋고 심는 대로 거둘 수 있는 재미난 곳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려주지 않았는지, 왜 내가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배우도록 역동시키지 않았는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이루어 나가면서 자신의 벽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걸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지.
내 안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찌그러진 양동이가 하나 있었다. 튼튼해 보이지만 남몰래 어딘가가 찌그러진,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양동이였다. 양동이 귀퉁이에는 아주 작은 구멍도 있었다.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차렸을 때 나는 흠칫 놀랐다. 그 작은 구멍은 내 안의 양동이에 물이 가득 찰 수 없게 한다는 걸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인식할 때마다 어쩐지 내 양동이는 조금씩 더 찌그러져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양동이를 새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비로소 나는 모든 걸 나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구멍이 있었기에 그 구멍을 남몰래 채우려고 똥줄을 태웠고, 양동이가 구겨져 있었기에 그걸 반반하게 펴내려고 망치라도 두들길 수 있었다. 결핍이 힘이었다.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내 양동이를 새로운 것들로채우게 했다.
이것을 알아버리고 나서 나는 비로소 내 안의 벽을 깨치기 시작했다. 한 3년 전쯤, 코로나가 극성이었던 그때부터가 그 시작점이었다.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단지 흘러가는 시간이아니었다. 시간을 멈추고 정곡을 바라보는 것, 내 안에 곧게 서있는 단단한 벽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 벽을 허무는 일은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전제 조건이어야 했다.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꼭 해야만 하는 일. 그러기 위해서 나에겐 내 안에 세워져 있던 벽 자체도 내 것이었음을 수용할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벽을 깨칠 망치는 내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미 과거에 매어 살지 않기로 했다. 누가 만들었든 내 안의 벽은 내 것이고 허물 수 있는 것 역시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마음대로 새로운 캔버스에 소설 속 두 사람의 뒷모습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하. 그건 허상의 존재가 아무렇게나 지껄인 말이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은 없다. 그림을 평가하는 못된 존재만이 있을 뿐. 우리는 그런 못된 존재로 살아가지 말아야 한다. 어떤 그림을 그려도 그 자체를 아름답게 바라볼아름다운 눈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로, 어떤 미련이나 어떤 회한도 없이, 그저 나 스스로를 대견해할 준비를 하면서 미치도록 미쳐볼 예정이다. 나를 세상에 던져볼 것이다. 세상이 받아주든 말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