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때 왜 나는 엄마를 발작시켰을까

1부. 유년 시절의 그림자

by 김혜정


고3 언저리, 나와 엄마 사이에는 읽어내기 힘든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부모의 관심 밖에서 '입시'라는 단어조차 생경했던 나는, 머릿속에 잘 담기지 않는 지식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아침 7시 30분쯤이면 집에서 나갔고, 밤 10시 학교 종소리가 울리면 가장 나중에 혹은 끝에서 두 번째로 교실 전등을 끄고 나왔다. 언덕배기 학교를 내려올 때면 등 뒤로 으스스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도 내 걸음은 느릿느릿 꾸물거리는 거북이처럼 느리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까만 방 까만 책상 위에 놓인 초록색 스탠드부터 켰다. 그리고 오빠가 조립에 성공해서 선물처럼 던져준 카세트의 버튼을 눌러,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이문세의 별밤을 듣곤 했다. 고3의 낭만은 그런 것이었다. 새벽까지 공부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으름장을 놓고 라디오부터 켜는 것. 아주 작게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활짝 열고 흠뻑 취해 하루의 노고를 푸는 것.


책상 오른쪽, 옆으로 길쭉한 직사각형 창문은 아주 작게만 열렸는데, 창문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고 그 좁은 골목을 걷는 사람이 있나 없나 훔쳐보는 시간은 스릴이었다. 어떤 때는 길을 걷던 사람이 위를 쳐다봐서 흠칫 놀라는 일도 있었으니, 까만 방 작은 스탠드 불빛이 그다지도 밝은가 싶었다.


시린 밤공기가 내 뺨을 스치던 감촉을 기억해 본다. 차가운 하늘의 별들도, 흐릿하게 비추던 가로등도, 내 뺨을 비비던 내 차가운 손끝 내 온기도. 그렇게 찬바람을 쐬고 다시 의자에 앉으면 차가워진 몸뚱이가 얼음 녹듯 스르르 녹아내려 어느새 따끈한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 안도감에 부르르 몸을 떨어재끼고 다시 공부에 집중을 하려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왼쪽 뺨을 책상에 댄 채 단잠에 빠지곤 했다. 이게 고3 땐가 고2 땐가.


학창 시절은 그렇게 나 자신과 싸우고, 지고, 다시 지지 않으려고 싸우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빠는 일을 갔고 오빠는 대학을 다닐 때였으니 그 시절엔 집에 있을 사람은 엄마뿐이었을 거다. 그러니 엄마가 없었던 날인데 나는 형용할 수 없는 해방감에 가슴이 부풀어 올라 거실마루에 대(大) 자로 뻗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양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엄마 손에 들려 있던 것들을 받아서 옮기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누워 자빠져 있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엄마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이 씨부랄 거. 이거 안 보여?"

"보여."

"근데 그러고 자빠졌어? 팔 부러지게 이렇게 들고 오는 거 보고도? 이런 XX이 있나."


그때 당시 엄마 말의 절반은 욕설이었다.

욕설을 빼고 말하는 엄마를 상상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엄마가 싫었다. 싫었는데도 난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최초로 엄마한테 반기를 든 건 바로 그때였다.


"아니 왜, 가만히 누워있는 것도 죄야? 누워있는 건 내 자유야. 왜 이래라저래라 해~~!!"


엄마를 향해 소리를 꽥 질렀다. 엄마는 나의 최초의 반항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더 사악한 욕설이 엄마 입에서 터져 나왔고, 집이 떠나갈 듯 엄마의 목청소리는 집안을 들썩였다.

나는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엄마한테 대들어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예상을 아예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불길한 일이 일어났다.

엄마와 나의 자세가 180도로 바뀐 것.

"내가 못 살아, 내가 이 집구석에서 살고 있는 게 등신이지, 이런 X년까지 나를 무시하는데~ 에에~~" 하는 레파토리와 꺽꺽거리는 울음소리와 악다구니는 서로 뒤섞여 쩌렁쩌렁 울려 퍼지다가

엄마는 대(大) 자로 뻗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엄마의 사지가 뒤틀리기 시작했고 점점 몸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혼자서 엄마의 마비된 몸을 다 풀 수 없다는 계산이 돌아가고 당황한 나는 앞집 아줌마를 불러왔다.

"세상에~! 아니 이게 웬일이야! OO 엄마!"


험한 모습을 아줌마한테까지 공개하고 싶었던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아줌마가 없었더라면 엄마의 사지는 비틀어진 채로 굳을지 몰랐다. 어디까지나 엄마를 위한 최선의 방법, 최악의 방법이었다.


30분을 공들여 엄마를 정상의 몸으로 돌려놓고 엄마의 축 쳐진 모습을 보는 게 어쩐지 정말 지겨웠다. 그동안 억눌러 왔던 내 감정, 그것도 100분의 1 정도 좀 내어놓았다고 이런 난리 부르스를 춘다면 나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억누르며 살아야 하는 걸까. 엄마의 하소연은 아줌마에게 가 닿았지만, 나의 고통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다. 엄마를 향한 반항조차 엄마의 '신체화'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죄책감이라는 화살로 날아와 나에게 꽂혔다.


나는 내 아픔을 말하지 못한 채, 타인의 아픔을 수습하는 사람으로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살았다.

나는

,

그래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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