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나의 유년 시절의 그림자
"혜정이 옆에 앉을 사람~?"
숨이 멎는 듯한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호령같은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준이 눈치를 보던 남자 아이들 몇 명이 서로 눈치를 보며 세준이를 부추겼다.
"세준아, 너가 가. 너 먼저."
바보같은 남자 아이들의 주눅 든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걸 참지 못하고는 자타공인 일진(= 세준)은 눈으로 씩 웃으며 입모양으로는 욕을 했다.
ㅡ 이 씹새야. 니가 가.
힐끗 바라본 내 눈에 세준이 입모양이 들어온 순간, 세준이 눈이 멈칫, 곱상하고 뽀얀 얼굴의 세준이의 붉고 두툼한 입술이 움찔거렸다.
나는 얌전하고 순진한 아이였지만, 날 좋아하는 남자애들의 행동은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세준이는 겉모습이 수려하고 호리호리했지만, 남자 아이들 사이에선 마동석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도 세준이가 날 좋아한다는 소문은 남자 아이들을 통해 들려왔고, 세준이도 어느 날엔 결국 내 옆에 앉았다. 나는 가슴이 벌렁거려서 수업을 귀로 듣는지 코로 듣는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알사탕같은 이런 연애질을 눈뜨고 다 지켜보신 분이었다. 아이들이 툭딱거릴 때마다 웃으며 눈으로 귀여워하셨던 게 여전히 내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이와 동시에 선생님은 아이들 무리에 섞여 있는 '나'란 존재를 물 밖으로 끄집어내 파닥거리는 물고기처럼 심장을 뛰게 만들어 준 최초의 어른이었다. 덕분에 조용했던 나의 학교 생활은 4학년부터 새로운 생동감으로 넘쳤다.
5학년, 6학년 때에도 줄곧 학교는 연애 놀이터였다. 왠지 모르게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풋풋한 연애에 관대한 미소를 지으셨고, 가끔씩 장난도 많이 치셨다. 6학년 때에는 우리 옆반 남자 선생님이 본인이 나의 '시아버지'라고 우리 담임선생님한테 대놓고 농담을 할 정도로. 나는 왈가닥까지는 아니었지만, 연애를 좋아하는 아이였던 건 분명했다.
그렇게 남녀 친구들이 선생님과도 섞여서 잘 놀고 또 잘 놀러 다니던 초등 시절이 끝나고 중1이 되자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전교에서 단 세 명만 먼 여중에 배정을 받은 것이었다. 친했던 친구들은 한 덩이씩 떼어낸 수제비처럼 뚝뚝 떨어져 나갔다. 아쉽게도 각자의 바쁜 상황에 사이가 금세 소원해져 갔다. 친구가 없어진 학교는 무덤같았고,나는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지만 초등 때의 친구들만큼 살가워지지는 않았다.
무서웠지만 가끔은 심부름 잘한다고 밀크캐러멜을 두세 개씩 손에 쥐어주시고, 가끔은 옆으로 여는 큰 장롱 깊은 속에서 박카스도 하나씩 꺼내 주셨던 할아버지.
방에 누워 혼자 TV 보시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 진지 드시라고 흔들어 깨울 때면 유독 인중이 길어 보였던 할아버지. (그래서 더 오래 사실 줄 알았다.)
2층 뒤뜰에 있는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가며 몇 시간을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가을부터 광에 연탄을 천정 높이만큼 쌓아두고 겨울이 되면 하얀 연탄을 까만 연탄으로 꼬박꼬박 갈아주시고는 안방 아랫목도 뜨끈한가 손으로 짚어보러 들어오셨던 할아버지.
직접적인 소통은 단 한 번도 나누지 못했지만, 행동으로 표정으로, 그리고 그림자로 존재를 나타내셨던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고인이 되셨다.
나는 14살이었고 엄마는 그때 41살이었다. 엄마가 24살에 시집을 왔으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산 기간은 장장 17년이었다. 할아버지 때문에 집을 몇 번이나 뛰쳐나갔고, 죽네 사네 했는데도 엄마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눈물로 지켰다고 했다. 간경화로 몸이 점점 굳어가는 걸 엄마는 마음 아파했고, 매일밤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온몸을 깨끗하게 닦고 또 닦고 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날, 엄마는 집이 떠나가게 대성통곡을 했다. 몸이 팔딱거렸다가 까무러쳤다가를 반복했다. 아이처럼 발버둥을 치고 복장을 손으로 잡아뜯는 통에 숙모와 고모가 엄마를 진정시키면서 같이 우느라 애간장이 녹았다. 엄마의 그런 과격한 슬픔에 나는 엄마가 어떻게 될까 무서워 눈물이 났고, 엄마가 잠잠해졌을 때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자꾸 어른 거려 눈물이 났다.
시간이 약인지, 세월이 약인지, 그렇게 할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우리 집은 잠시 고요해지는 듯했다. 엄마와 할아버지의 갈등이 큰 소동의 뿌리였으므로, 할아버지의 죽음은 비록 안타깝고 슬프지만 이젠 이렇다 할 갈등의 요소는 사라진 게 아니겠나. 그런 생각으로 나는 화평과 평화와 안식과 안녕을 기원해 마지않았다.
엄마의 심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물어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시간이 엄마에겐 고통과 상처의 흔적으로 남을 시간이었을 거라고 나 혼자 짐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빠는 단 한 번이라도 힐끗이라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메마르고 야위어진 몸을, 엄마는 불쌍히 여기고 애석해하며 닦아드리고 마지막까지 보살펴 드렸다는 얘길 들은 건 뜻밖이었다.
그러나 엄마에겐 적어도 그 긴 세월 동안 가족들을 따뜻하게 먹이고 재우고 입힌 '시아버지'에 대한 예우였을지 모른다. 하도 많이 베이고 뜯겨 얼룩진 상처만 남았다 할지라도 친정에서조차 받아 보지 못한 아주 작은 사랑과 정성이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는 남아 있었을지도.
죽음의 세계로 넘어간다는 건 어쩌면 너무나 잔인하고 냉정한 일이다. 함께 산 세월을 송두리째 삶의 뒷면으로 가져가 버리니까. 살아남은 자는 더이상 말할 수 없고 더이상 무엇도 해줄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뒤에 남은 자는 쓰디쓴 상처보다 안쓰러운 숨결을 더 기억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뒤돌아보게 되고 뒤돌면 가슴이 시려워져서 또다시 눈물이 맺히는 게 아닐까. 지난한 세월은 고통이고 고생이었지만, 그런 엄마에게도 할아버지와 함께 한 세월엔 더 복잡한 마음이 맺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