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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 엄만 왜 그랬을까?

1부. 나의 유년 시절의 그림자

by 김혜정



초등학교 몇 학년 때까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시장에 갈 때마다 나를 항상 ‘꼬리’처럼 데리고 다녔다. 집에서 시장까지는 걸어서 10~15분 남짓이었지만, 인도엔 늘 사람이 가득해 엄마 손을 꼭 잡고 걷다가도 어느 순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고 다니며 엄마의 뒷모습을 찾아 종종걸음으로 쫓아가곤 했다.


시장은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안은 더 북적였다. 생선, 야채, 정육, 생필품, 없는 게 없었다. 구경하는 사람, 흥정하는 사람, 바닥에 물건을 벌여 놓고 파는 사람, 또 허리를 굽혀 그 물건을 들여다보는 사람, 대접에 막걸리를 따라먹는 사람, 줄 서서 오징어 튀김을 기다리는 사람, 하반신 장애 때문에 땅에 엎드려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하모니카 연주로 돈 버는 사람까지 그야말로 사람 구경을 실컷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엄마를 놓칠까 불안해하면서도 주변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에겐 참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물건이나 식재료를 살 때, 돈을 건네며 꼭 이렇게 묻는 버릇.


“아줌마, 내가 예뻐요, 얘가 예뻐요?”


여기서 ‘얘’란, 바로 엄마 옆에 서 있는 나였다.

그 질문을 받은 시장 아줌마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1번. “아휴~ 당연히 딸내미가 예쁘지. 그걸 뭘 물어~허허.”

2번. “글쎄~ 둘이 똑 닮았는데? 똑같애, 똑같애.”

3번. “(손가락을 오므리며) 엄마가 쪼끔 더 예쁘네.”

의외로 가장 많은 답변은 2번 “둘이 닮았다”였다.


엄마의 반응도 상황마다 달랐다.
딸이 예쁘다 하면 “그래요? 그래도 내가 좀 더 낫지 않나? 하하하”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닮았다 하면 어디가 닮았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얼굴형이 닮았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래요? 난 잘 모르겠는데…” 하며 말꼬리를 흐리고 돌아섰다. 간혹 엄마가 더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입가의 작은 보조개를 잔뜩 움푹하게 드러내며 아무 말 없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때의 엄마는 어쩐지 들뜬 아이 같았다.


이 ‘미모 대결’은 시장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엄마의 친한 지인이 집에 방문해도 엄마는 어김없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분은 성격도 체구도 남자 같은 분이었는데, “무슨 그딴 소릴 하고 자빠졌어? 당연히 딸내미가 예쁘지!” 하고 일갈하듯 답하곤 했다. 그러고는 민망한 듯 나를 보면서 "니 엄마 왜 저러냐? 이렇게 이쁜 딸내미를 두고서." 했다.


나도 엄마가 좀 이상하게 보였지만, 그 순간마다 멋쩍은 웃음으로 넘어갔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엄마는 비교 대상을 이모로 바꿨다.


“이모랑 엄마 중에 누가 더 예뻐?”


아빠와 엄마 중 누가 좋냐는 질문에 버금가는, 참으로 곤란한 질문이었다.
시장 아줌마들의 마음도 이랬겠구나 싶었다.


나는 늘 적절히 안전한 답을 골랐다.


“이모는 성격이 더 좋고, 얼굴은 엄마가 더 예뻐.”


사실 성격 좋은 사람이 더 예뻐 보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모가 더 예뻐.”라고 말했다가는 저녁밥을 못 얻어먹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생존을 먼저 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하고 말고. 그 질문에서 도망쳐 봤자 끈질기게 따라올 질문이라는 것도 난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미모 대결'은 '유두 대결'로 다시 찾아왔다.

얼마 전, 엄마 집 근처에 큰 찜질방이 생겨 오랜만에 둘이서 찜질방 나들이를 갔다. 목욕을 하려고 옷을 벗고 걸어가는데, 엄마가 느닷없이 내 젖꼭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언제 이렇게 젖꼭지가 커졌어? 원래 째끄맣지 않았어?”

“어?”

“젖꼭지가 크면 남편복 있다던데… 언제 저렇게 커졌지?”

“엄마, 나 애 둘 엄만데.”


모유 수유까지 했으니 처녓적보다는 커진 게 당연하지 않을까. 게다 내 유두는 그렇게 큰 편도 아닌데. 엄마는 그게 그리 이상했던 걸까?
아니면, 딸이 엄마보다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확증편향 탓에 질투가 난 걸까?

엄마의 유두가 옅어지고 작아진 게 안쓰러워 보이는 동시에, 여전히 누군가와 자신을 저울에 올려놓고 끊임없이 견주며 살고 있는 엄마가 안타까우면서도 마음이 좀 그랬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엄마 눈에는 내가 아직도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초등학생이었던 때부터 쉰이 가까운 지금까지, 딸은 딸일 뿐,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의 엄마가 되고, 학원 원장이 된 지금까지도 엄마에게는 여전히 어린아이로 보이는 게 아닐까. 아니, 오히려 어린 아이이길 바라는 건 아닐까.


엄마는 내가 어른이 되어 독립하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겉으론 덤덤해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서운해하고 불안해하며 지켜봤을지도 모른다. 영원히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온 마음을 부어 돌보는 ‘작은 보호자’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느꼈을지도.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나는 독립을 선언했고, 나를 얽매지 않는 사람을 찾기 위해 결혼을 서둘렀다. 완벽한 독립을 이루며 해방감을 만끽하던 그때, 엄마는 정서적 버팀목이 떠나가는 슬픔을 혼자 감당하며 눈물을 훔쳤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왜 그토록 비교하고 확인하려 했을까.


엄마는 어릴 적, 참 예쁘고 고운 아이였지만 부모에게 사랑도, 인정도, 칭찬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자랐다.

“시골에서 여자가 학교는 무슨 학교냐.”

그런 외할아버지의 호통 속에서 엄마는 밥을 하고, 밭일을 하고, 동생을 업어 키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습의 기회는 모두 동생들에게 돌아갔다. 도시에 대한 환상으로 수도권에 시집왔지만, 남편에게도 시아버지에게도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저 ‘얼굴 예쁘다’는 말만이, 세상을 향해 내밀 수 있는 엄마의 유일한 자신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누군가만 만나면 묻고 또 물었다. “누가 더 예쁘냐”라고.
그것은 확인받고 싶은 마음, 존재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오랜 결핍이 만들어낸 작은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엄마한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이를 악물고 정서적 억압을 버티면서까지 엄마 옆을 지켜왔던 것처럼, 엄마도 누군가한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묻고 또 물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왔던 것이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 가치와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엄마의 비교 논쟁은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엄마는 엄마의 결핍을 어떻게 메워 나가야 할까.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를 짓는 난, 아직 부모화된 자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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