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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May 01. 2022

유퀴즈의 제작일지

우리네 삶 자체

삶이 녹아있고 위로가 녹아있다.


승객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시작한 <길 위에서 쓰는 편지>였지만 그것은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승객들은 타인의 글에 위로받고 자기의 삶을 고백하는 글을 남겼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던 말들을 택시 기사님이 전해 준 노트에 털어놓았고 가슴 아픈 그날의 감정을 눈물로 덜어냈다. 고단한 삶을, 애처로운 삶을, 가슴 찡한 삶을, 행복한 삶을 고스란히 종이 위에 쏟아 놓았다. 택시 기사님이 일으킨 나비의 날갯짓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고 위로를 주었다. 자신을 보듬고 타인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큰 물결을 만들었다.


택시 기사님 편을 보면서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이렇게 브런치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글로써 소통하며 위로를 받고 또 깨달음도 얻고 있지 않나. 그래서 이런 글쓰기 플랫폼을 만들어 준 브런치 제작진 분들에게 감사하고 가끔씩은 경의를 표하지 않나.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그 택시 기사님은 개인적 차원에서 4년 간이나 운영하고 계신다는 것이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아무리 세파를 피하려 했던 것이 이유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중에 보니 그 편지글을 묶은 책이 2020년에 출간되었다.

<길 위에서 쓰는 편지>를 제목으로 한 책이.




151회가 끝날 때 유의미한 글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슬픈 노래와 함께


어느 작가가 쓴 글일까. 엔딩 멘트를 눈이 따라갔다. 멘트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글이 남기는 잔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글을 다시 보고 싶어서 유튜브를 열었다. 유퀴즈 온 더 블록 151화 <나의 제작 일지>라는 제목으로 '영감을 주는 60초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폭풍 같았던 지난 몇 주를 보내고도
아무 일 아닌 듯
아무렇지 않은 듯
쳇바퀴에 그저 몸을 맡겨야만 하는  


<나의 제작 일지>

2018년 어느 뜨거웠던 여름날에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길바닥의 보석 같은 인생을 찾아다니며 한껏 자유롭게 방랑하던 프로였다.
저 멀리 높은 곳의 별을 좇는 일보다
길모퉁이에서 반짝이는 진주 같은 삶을 보는 일이
참으로 행복했었다.

유퀴즈는 우리네 삶 그 자체였고
그대들의 희로애락은 곧 우리들의 블루스였다.
이 프로그램을 일궈 온 수많은
스태프, 작가, 피디들은 살면서 또 언제 이토록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보통 사람들이 써 내려가는
위대한 역사를 담을 수 있어서
어느 소박한 집 마당에 가꿔놓은
작은 꽃밭과도 같은 프로그램이라서
날씨가 짓궂더라도
계절이 바뀌더라도
영혼을 다해 꽃 피워 왔다.
자신의 시련 앞에서는 의연하지만
타인의 굴곡은 세심하게 연연하며
공감하고 헤아리는 사람
매 순간이 진심이었던 유재석과
유재석을 더욱 유재석답게 만들어준 조세호
두 사람과 함께한 사람 여행은
비록 시국의 풍파에 깎이기도 하면서
변화를 거듭해왔지만
사람을 대하는 우리들의 시선만큼은
목숨처럼 지키고 싶었다.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마주했을 땐
고뇌하고 성찰하고 아파했다.
다들 그러하겠지만 한 주 한 주
관성이 아닌 정성으로 일했다.
그렇기에 떳떳하게 외칠 수 있다.
우리의 꽃밭을 짓밟거나 함부로 꺾지 말아 달라고
우리의 꽃밭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것이라고
시간 지나면 알게 되겠지.

훗날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제작진의 마음을 담아 쓴 일기장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왜 잔잔 이별의 노래를 BGM으로 깔아 놓은 건지,

왜 행복했었다..라고 과거완료형의 선어말어미를 쓴 건지,

왜 프로그램이 끝날 것처럼 표현해서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건지 뒤돌아서는 임을 붙잡고 싶은 불안한 심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다행히도 끝은 아니었다.

특집 타이틀에 맞게 그동안의  제작진 일동의 마음을 담일기를 한 편 써 내려갔나 보다 했다.


나의 최애 프로그램, 잘 챙겨 보지는 못하지만 토요일 오후 몸을 쉬고 싶을 때 어김없이 보게 되는 프로는 단연 유퀴즈재방이다. 

눈물 나도록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가난한 환경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전문직이든 일용직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에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화수분 같은 사람들, 너무 순수하고 맑아서 투명한 물처럼 찰랑이는 사람들, 자신보다 가족을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을 직접 만나 위로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스크린으로나마 그들을 만나 함께 눈물짓고 공감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귀하다고 느낀다.


앞으로도 이 세상 곳곳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보통의 시민들의 삶을 어루만져 주기를 선량한 시민 한 사람으로서 《유퀴즈》 제작진 분들께 열렬히 바란다.


 

그런데 여기까지 글을 쓰다가 궁금증이 일었다. 유퀴즈 151편에 관한 정보가 뭐 있는 건가? 별생각 없이 열어본 네이버 창에서는 여러 신문사의 중간 평을 앞다퉈 보도해 주고 있었다. 그걸 보니 애매했던 맥락이 단박에 이해되었다. 꼬였던 매듭이 순식간에 풀렸다. 지난번에 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유퀴즈에 나왔다는 얘길 큰아들에게 듣고 귀를 의심했던 적이 있는데 그게 논란이 되었던 것이다.


프로그램 성격에 전혀 맞지 않는 인물이 출연한 점에 대해 그때 잠깐 남편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아마 그건 당선인 측에서 그 프로그램 출을 무리하게 요청했을 것이고 유퀴즈 측에서는 차마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라 초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우리끼리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이렇게 불거져 유퀴즈측은 물론 MC 유재석 씨에게조차 불똥이 튀어 해명을 요구받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하는 여론도 있고 했다.


유재석 씨도 정치권의 불합리한 처사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쌍심지를 켰으니 제작진은 안팎으로 얼마나 괴롭고 당혹스럽겠는가. 그런 이유로 유퀴즈제작진이 입장을 밝히기 위해 이번 특집 편 <너의 일기장>에 마음을 담은 ‘제작 일지’를 실을 수밖에 없었음을 알고 나니 제작진이 왜 ‘폭풍 같았던 몇 주’를 보냈는지,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마주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유재석 씨와 조세호 씨에게도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 컸을지 그 고뇌가 전해졌다.



 

 사람의 일은 이렇게 의도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택시 기사님은 의도치 않게 여러 시민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고 그 결과물로 책도 출간하고 티비에도 출연하셨는데 그런 택시 기사님의 뜻깊은 마음 발견한 유퀴즈 제작진은 의도치 않게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 정치 공방의 희생물이 되어 고래 싸움낀 새우가 되었으니... 아, 통탄할 일이다.


우리는 논란에 휩쓸리지 말자.


만약 유퀴즈측에서 당선인 섭외를 긍정적으로 검토했었더라면 MC가 당선인의 출연 결심 이유를 물을 이유가 뭐가 있었겠으며 제작진의 긴장된 분위기나 냉랭한 반응에 대해 언급할 필요도 뭐가 있었겠는가. .

 

난 그저 택시 기사님의 <길 위에쓰는 편지>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인데 양파 껍질처럼 벗겨진 제작진의 <나의 제작일기> 속 사연에 마음이 아파 온다. 폭풍이 어서 잠잠해지고 유퀴즈의 선한 목적과 영향력에 큰 피해가 없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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