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밤 11시 30분 경이었던가, 30일 새벽이었던가. 시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스타를 스크롤하던 중 <전지적 참견 시점> 방송 화면의 자막이 눈에 띄었다. ‘뉴스 속보’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 자막을 보긴 했지만 아마 난 그 순간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걸 보고도 인스타의 성격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그냥 지나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지금쯤이면 핼러윈 파티를 할 수 있는 시간대이고 이건 속보가 아닌가. 놓았던 폰을 다시 들고 그 영상을 찾으러 갔지만 다시 볼 수는 없었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고 tv를 틀었다. 뉴스 채널마다 핼러윈 사고를 보도하고 있었다. 우리는 새벽 2시 정도까지 뉴스를 보면서 그 자리에 있는 것마냥 몸이 으스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빽빽하게 골목길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는 젊은이들의 아비규환과 길바닥에 뉘인 채 심장을 압박당하고 있는데도 전혀 의식 없이 사지에 힘이 풀린 젊은이들의 모습이 가슴을 조여왔다. 그들의 심장이 다시 뛰기를 애절하게 원하고 기도했지만 화면 밖에서, 이 먼 곳에서 그들을 도울 방법은 없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차디찬 바닥에서 그렇게 목숨을 잃고 모포에 덮인 채 나란히 뉘인 그들은 삽시간에 고인이 되었다. 참혹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현실이었다.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우린 눈만 뜨면 뉴스를 틀었다. 고인이 한두 명씩 늘어갔고 이제는 전문가들의 원인 추정 발언과 경찰청장과 장관의 뒤늦은 사과 발언이 뉴스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고 현장에 있었던 젊은이들의 목격담과 비탈길 위에서 “내려가! 내려가! 밀어!”하고 소리치는 영상을 참고하며 원인을 되짚으려는 시도가 뒤를 잇고 있었다.
11월 2일 오늘 아침, 경찰의 늑장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이런 참사나 재난이 있으면 늘상 밟아오는 수순이다. 참사 4시간 전부터 압사 우려 신고를 11통이나 받았지만 경찰은 4차례만 현장에 출동했고 나머지는 미출동으로 종결 처리하며 사고 현장에는 이미 병력이 있다는 사실만을 전하는 것으로 그들의 임무는 완수되었다.
그러나, 참사 당일 현장에 있었던 어느 경찰관의 외침이 담긴 영상.
“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사람이 죽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그는 절규하듯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상황 속, 그 많은 인파 속에서도 있는 힘을 다해 외치고 있었다. 아아... 확성기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왜 다른 경찰관들은 보이지도 않고 그에게 확성기를 갖다 주는 경찰관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가.
오늘 밤, 유튜브에 올라온 그의 목소리 녹취록을 통해 조금 더 자세한 상황 설명을 들을 수는 있었다. 김백겸 경사. 다른 신고로 출동한 것이 아니었다면, 이태원 압사 현장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파출소에서 확성기라도 챙겼을 텐데 그러지 못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지 못해 유가족 분들에게 면목이 없고 죄송하다며 그는 사죄를 했다.
‘이번 사고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이기 때문에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행안부 장관과의 발언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유가족들을 위한 장례비와 지원금을 놓고도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 책임 소지를 따지겠다며 진상 규명을 앞세워 속속들이 드러낼 의혹들을 지켜봐야 하는 것도 그렇고, 아직 채 피워보지도 못한 채 봉오리 속에서 잠든 영혼들 앞에 부끄러움만 더 짙어질 뿐이다. 일주일 간 추모 기간을 지정하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참사의 슬픔을 곧 망각할 우리들의 의식도 더 단단히 붙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누구에게 이 슬픈 현실을 탓할 수 있겠냐마는
세월호 참사나 핼러윈 참사나 진정 막을 수 없었던 일인가에 대해서는 반문하고 싶다.
바닷속으로, 땅 속으로 차가운 넋이 되어 사라져 버린 젊고 앳된 이들의 슬픈 영혼을, 그들의 피워보지 못한 인생을, 그들을 목놓아 부르고 또 부를 부모와 형제들을
가슴으로 깊이 애도한다. 그리고 어느 경찰관의 절규도 마음에 새긴다. 이제 다시는 이런 허망한 일이 없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