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겨울방학부터 습관화된 늦잠 때문에 3월 개학 이후에도 아이들이 등교하면 바로 아침잠을 청했었다. 새벽까지 눈에 불을 켜고 브런치 삼매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 보니 7시 반에 기상하면 두 눈꺼풀은 발꼬락까지 내려와 있었기에 1~2시간 눈을 붙이지 않으면 안구 건조증에라도 걸릴 위기였다. 남편과의 사고방식 차이로 트러블이 있었던 그저께 새벽을 고단하게 보냈던 것도 어쩌면 이유가 됐다.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하는 게 브런치 입문하면서 가진 가장 큰 바람이었는데 3개월 만에 오늘 처음으로 상쾌해졌다. 봄이 이끌어주는 향긋한 봄바람 때문인가?
브런치에서 '봄'이야기가 살랑이며 나부낄 때도 거의 동요되지 않았는데 내가 워낙 늦돼서 그런 거 같다. 뭐든지 한 발씩 늦는 나니까~^^ 난 이제서야 봄기운을 맞는다. 구글 포토에서 보내 준 1년 전, 2년 전 사진을 보고서야 그토록 눈부시고 화려하게 피어나 우리 가슴을 설레게 했던 푸른 하늘 아래 아롱지는 벚꽃, 벚꽃 가지, 벚꽃잎들이 올해는 아직까지 봉오리조차 웅크리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미세 먼지와 비바람에 시꺼메진 창틀을 내 맘속 찌든 때 털어내듯 물티슈로 쓱쓱 닦아내고 봄날이 되어 더 싱그러워진 우리 집 화초 새싹들 목말라죽을세라 욕실로 영치기영차 끌고 가 샤워기로 듬뿍 물도 주니 이제 봄을 한껏 만끽하고 싶어졌다.
평소 카페를 좋아하진 않지만 동네 스벅에 가서 다른 작가님들처럼 글 한 편 써가지고 오리라 마음먹고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웬걸~ 날씨가 쩔었다. (매우 화창했다는 뜻) 곧 오픈 예정이었던 단지 내 스벅에도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단지 내 스벅이 생겨도 가지 않을 거라고 지인들한테도 호언장담했었는데 이 봄날의 화창함은 내 호언장담을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듯 여지없이 밟아 버렸다. 옛다!! 오픈 기념이다!! 하고 쉽사리 마음을 고쳐 먹고 무거운 문을 열어 제끼고 들어갔다.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회의를 하듯 둥글게 큰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있었다. 반대 방향을 휘~ 둘러보니 텅텅 비어 있어서 마음이 신났다. 그런 나를 서빙하던 사장님께서 불러 세웠다. “어~ 저희가 수요일에 오픈이라서요~~ 죄송하지만 수요일에 꼭 와주세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허탕이었다. 사람이 북적이지 않아 좋아 보였는데 수요일은 북새통이겠지. 오픈일인데..
발길을 돌려 산책을 하다 옆 동네 스벅으로 왔다. 노트북을 열고 뭔가를 하던 모습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나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나도 그들을 따라 아이패드와 미니 키보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새로운 기분이었다. 요즘 트렌드의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느낌이랄까?
뭐든 새롭게 해 보는 경험은 온몸을 찌릿하게 한다. 집에서도 블루투스로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건데 여태 못해 봤다. 그저 아이들이 자고 난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에 작은 스탠드를 켠 후에야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 조용히 그루밍을 하듯 나도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오롯한 시간이 더없이 좋았는데 이렇게 카페 유리 통창 옆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것도 너무 좋다. 나에게 허락한 여유로움과 사치 한 조각. 혼자 이렇게 나와 바닐라 라떼 아이스와 마스카포네 티라미수 케이크를 시켜 먹었다는 것도 내 역사에 기록될 일. 글 쓰는 분위기로도 좋았다. 집중되고 방해받지 않고. 이제 수업 준비를 위해 책을 읽어야 할 시간이라 너무나 아쉬운 힐링 타임이지만 이번 한 주를 위한 충전의 시간이 되었으리라.
이제 곧 앞다투어 피어날 꽃봉오리들이 톡톡 터져 만개하면 거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올까. 실내 마스크 방역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제한 조치들이 폐지될 전망이니까. 비로소 위드 코로나 시대가 시작된다. 가고 싶은 곳에도 가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쓰고 싶은 것도 쓰고 코로나에 대한 불안과 염려로 정지되었던 모든 일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원상 복귀될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