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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 콤플렉스

버리고 위풍당당하자

by 김혜정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겐 오빠가 한 명 있었고 오빠는 언제나 학교에서 수재, 영재 소리를 들었다. 기똥차게 아이큐가 높고 머리가 비상한 오빠를 맡은 담임 선생님들은 그의 오빠를 과대 포장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 아이의 엄마는 오빠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 열의가 차고 넘쳤다. 그 아이의 오빠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3까지 줄기차게 반장 자리를 꿰찼고 서울대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선생님들의 일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오빠가 잘 나가는 동안 그 한 아이는 늘 집에서 그림자처럼 있었다. 무엇을 열심히 해도 돌아오는 건 “네가 그렇지 뭐~. 그럴 줄 알았다. 그거 하나 오빠처럼 못 하냐~.”
온 집안을 가득 채우는 잔소리를 혼자 감당하며 기본 정리와 청소, 설거지는 그 아이의 몫인 듯 아무도 그 아이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무엇을 해도 칭찬다운 칭찬은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늘 제자리를 맴맴 도는 자신이 매미인가 싶었다. 어느 정도 컸을 무렵 고등학교 때인가 어느 날은 그 아이의 가슴에 사무치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 오빠는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고 그 아이는 여느 때처럼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그 시간에 설거지를 하고 있었을까, 그들이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에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수치스러워졌다. 순간 홧김에 수세미질을 세게 하다 와그장창창 그릇이 싱크대에 떨어지는 소리가 컸다. 멀지도 않은 곳에서 모여 있던 가족은 일순간 그 아이를 획 돌아보았다. 신경질적인 아이의 행동이 거슬린 아빠는 “그렇게 할 거면 하지도 마라!!” 그 아이는 가슴이 뜨끔하면서도 “아니야~”로 답하며 끝까지 설거지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 바로 저의 이야기입니다.


어려서부터 오빠는 무슨 세상을 뒤흔들 영웅인 것 마냥 부모님의 지대한 관심과 사랑 속에 살았습니다. 오빠 입장에서는 그런 지나친 기대도 얼마나 부담이었을까요. 한없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대학 이후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포기해야 했음을 알기에 지금은 오빠의 마음도 헤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아이를 둘이나 낳고 키우는데도 엄마의 차별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 친척분들도 다 아는데 엄마만 아니라고 합니다. 차별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많은 분들이 딸보다 아들을 선호했다는 걸 알지만 세월이 흘렀다고 자식에 대한 대우가 쉬이 달라지길 바라는 것도 무리수였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너무 고민이 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비교를 당해도 참고 숨죽여 우는 것, 내 마음을 양보하고 부모의 편에 서는 것이 부모한테 대드는 행위보다 높고 위대한 진리라고 여기며 살았기 때문에 아무리 차별이나 무시를 당해도 입 밖으로 불평불만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허나 성인이 되어서는 그리고 우리 어린 아들들 앞에서조차 차별 섞인 말을 들을 때는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정말 모르고 하는 언행인데 그 무의식의 세계까지 침범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듣고 쓰러지시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심한 갈등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고 또 딸의 사무치는 감정도 이제는 엄마가 아셔야 하기에, 그리고 근본적으로 내면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내가 더 떳떳하게 살아갈 방법이라고 믿기에 결국 엄마께 고하였습니다. 내가 차별을 당하며 살아온 과거에 대해 엄마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핵심이 이것이라는 얘깁니다.


엄마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둘 다 똑같이 사랑했고 최선을 다했다며 순간 억울해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게 맞다면 제가 30대 후반까지 가슴속 멍울을 지닌 채 고민 고민할 일은 없었겠지요. 엄마도 내 지난날의 하소연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 일이 원인인지 엄마에게 일시적으로 심한 건망 증세가 나타나긴 했지만 곧 회복되어 그 이후로는 오히려 저를 인정해 주시고 헤아려 주십니다. 더 마음이 통하는 모녀지간이 되었습니다.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엄마의 마음을 저도 이해합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옛말이 어디 거짓이겠습니까. 물론 조금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면 그 자식은 더 믿음직해서 그런 것이라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지요. 하지만 암묵적인 차별과 양보를 강요하는 양육 환경 때문에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선한 아이로 인정받기 위한 목적이 수반될 때 주변에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이에게 그런 콤플렉스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 연장됩니다. 그러니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것, 싫은 소리 하기 싫은 것, 착하게만 살려고 노력하는 것, 이러한 점들이 자신의 마음을 짓누른다면 그 원인을 찾고 콤플렉스를 해소하려고 시도해 보세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제가 중시하는 ‘자아감’도 세워집니다.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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