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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하지 말아요

나는 소중하니까^^

by 김혜정


한 5년 전부터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방송에서도 많이 흘러나오고 책으로도 눈에 띄게 출간되고 있다. 자존감 수업, 자존감 대화법, 자기 효능감, 공부 자존감, 초등 자존감, 교사의 자존감 등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데 필요했던 ‘내 아이의 자존감’을 넘어서 이제는 성인에게도 세상을 살아가는 확실한 무기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되었다.


나도 두 아들을 키우면서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이 자존감에 대한 책이었던 것 같다. 특히 큰아이가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게 눈에 밟히고 속이 상해서 울기도 많이 하고 내가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생각에 내 탓도 많이 했다. 관련 tv 프로그램과 책을 통해 진정한 자존감이라는 게 무엇인지 더 깊이 알아가다 보니 부모가 어떤 방식으로 양육하느냐에 따라, 즉 양육의 환경에 따라 아이의 자존감이 형성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아이가 여럿일 경우 아이마다 자존감이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같은 부모인데 왜 아이의 자존감을 다를까? 그건 자녀에 따라 부모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도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 더러 있다. 그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덜 받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외모나 성적이 남들에 비해 뒤쳐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고 외적인 조건도 문제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년에 자존감과 관련된 책으로 수업을 하던 중 워크북에 나와 있는 자존감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어떤 아이의 자존감이 0%로 나온 적이 있었다. 보통은 아무리 적어도 60~70%가 나오는데 그 결과에 놀라 다시 한번 체크해 보자 하고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천천히 생각해 보게 했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어느 문항도 답변을 바꾸지 않았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학생이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조금 약하고 눈치를 많이 본다는 특성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자기를 그 정도로밖에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내가 적잖이 놀랐다. 사실 그 아이를 지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머니와는 몇 차례 통화를 하긴 했었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남과 비교를 많이 하는 점, 내적으로 감정 기복이 심한 점, 평가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점, 완벽주의 때문에 과정 과정을 쉽게 넘기지 못하는 점 등 세심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어머니는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지만 아이에게 어떻게 대해 줘야 하는지 방법적인 것을 어려워하셨다. 혹시 어머니의 기준이 너무 높으신 게 아닐까, 남이나 형제(남매)와 비교하는 말을 은연중에 사용하지 않으셨을까, 아이의 마음에 대해 대화를 잘 나누지 않으시는 편이 아닐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심리 전문가는 아니지만 교육 분야에 종사하고 있고 양육 경험도 쌓이다 보니 자존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한다. 그리고 나조차도 열등감을 30대 후반에서야 극복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수용한 후로 나를 묶고 있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을 보면 무조건 도와주고 싶다. 자기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부모님과의 관계, 상호 작용이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다. 하지만 남과 비교하면서 자식이 더 잘 되라고 해 주는 말은 백해무익하다. 동기는 좋지만 결과는 치명적이다. 아이가 자신에게 주는 점수가 0%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 비교다. 형제끼리도 비교는 금물이다. 비교를 당한 아이는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자신을 옥죄기 시작한다. 더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점점 더 약해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는 좋아질지언정 안으론 곪아간다. 어리면 어릴수록 마음의 상처가 깊다. 살아갈 날이 많고 상처는 더 깊어지니 당연한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양육하기 시작하는 부모의 마음에는 비교 의식이 없어야 하고 아이가 크면서 어떤 결과를 내든 실망하는 내색을 하지 말고 진정으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줘야 한다. 기대 수준을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내 큰아들은 언어 발달이 또래보다 늦고 상황판단도 그만큼 떨어졌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은 조급증을 낳았고 내 아이가 뭐든 잘 해내기를, 더 잘하기를 응원하고 바랐다. 채찍질도 많이 하고 나무라기도 많이 했다. 비교를 안 하고 싶었지만 비교되는 현실을 어쩌지 못했다. 아이는 그런 것쯤은 느낌으로 간파한 듯 스스로 위축되어 갔고 나중에는 ‘나는 못 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게 특히 공부였기 때문에 공부가 자존감의 지표가 되지 않을까 해서 학업 실력을 더 끌어 주려 노력했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면서 그 하지도 않는 공부 때문에 갈등은 더 깊어졌다. 지금은 사춘기도 훅 지나가고 곪았던 상처도 회복돼서 너무 행복하고 편안하지만 그때 타협점으로 찾은 결론은 ‘너를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 준다. 공부는 지표가 아니다.’라는 거였다.


큰아들의 경우는 운동을 잘한다. 그걸 강점으로 만들어 주고 즐길 수 있도록 해 주니 어느새 자존감이 부쩍 자라 있다. 학업에 관해선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은 다해 보라고 격려해 주고 있다. 앞서 말한 우리 학생의 경우엔 글쓰기를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을 버리라고 했다. 그리고 감사일기를 쓰면서 자기 스스로를 칭찬해 주라고 했다. 그리고 늘 “괜찮아~!!”라는 말로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라고 했다. 지금은 모든 장벽이 낮아졌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글도 술술 잘 쓴다. 남에게 맞춰주고 늘 양보만 했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사라지고 있다. 변화의 시작이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아이가 잘하는 것을 남에게 인정받고 스스로 인정하면 그게 자존감이 된다. 말해 주고 또 말해 주어야 한다. 스스로 자신 있다고 말할 때까지 끈기 있게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잘 못해도 괜찮다고 반드시 다독여줘야 한다. 우린 누구나 실수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걸 얘기해 주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주위의 시선에 갇힌 자아를 해방시켜 주면 진정한 자존감을 얻을 수 있다. 떨어졌던 자존감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다. 나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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