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막 브런치에 입문한 초심자로서 너무 자주 글을 쓰는 건 오히려 나 스스로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음 주 월요일 내가 쉬는 날 즈음에 한 편 올려야지 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편 정도씩 즐기는 마음으로, 카페에 들러 바닐라 라테 한 잔 음미하는 그런 가벼움으로 브런치의 문을 두드리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어허 이런, 우리 큰아들이 나더러 기복이 심하다고 핀잔을 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뜨끔하다. 어제 하루 넘기기를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다가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 무엇인가. 설렜다가 불안했다가 기뻤다가 초조했다가 감정이 이렇게 소용돌이치는 느낌, 오랜만이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둘째 아들 종업식 한다고 학교에 등교하고 1교시만 한 후에 바로 하교라니, 한파주의보도 내렸는데 학교에 데려다주고 수업 준비를 하거나 아님 글이라도 쓰면서 기다리자 하고 아침부터 내 일터에 들렀다. 새롭게 구상한 2022년 계획 중 하나인 <아침 시간 활용하기> 콘셉트에 맞게 커피 한 잔 마시고 글을 써 볼까 졸린 눈 비비며 책상 위에 키보드를 올렸다. 그런데 웬걸, 글이 안 써진다. 내가 무슨.. 뭘 기대한 거지? 밤새도록 뜬 눈으로 지새우다가 아침 7시가 돼서야 술술 써진다는, 내가 애정 하는 김은희 작가도 아니고, 한두 번 구상하면 머릿속에 스펙트럼이 쫙 열리는 칼럼니스트나 에세이스트도 아닌데 나는 왜 글이 자동으로 써지리라고 기대한 것일까?
사실은 어젯밤에 글을 하나 써서 서랍에 넣어두고 싶었다. 그전에 써 놓은 맥락 없는 조각 글들을 애써 결합해서 하나의 글로 완성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밤중에 첫째 아들이 티머니 모바일 카드 앱을 깔고 충전 좀 해달라기에 그것 해 주고, 재워 달랬던 둘째 아들이 잠들어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 옆에서 글을 쓰려니 키보드 소리가 잠든 아들 깨울까 조심스러워 그냥 브런치에 들어가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다 앉은 채로 졸고 말았다. 깨 보니 새벽 3시, 그제야 세수를 하고 침대에 들어갔으니 아침에 정신이 맑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커피를 한 잔 딱 시키고 카페 테이블에 앉으면 갑자기 스위치가 켜져서 글이 술술 써지더라는 강원국 작가를 흉내 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커피만 홀짝 마시고 글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니 딩동~ 작은 아들 납셨다. 와, 참 신기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한 그 기분.
평소에 내가 글을 쓸 때와는 180도 달랐다. 그렇다고 많은 글을 쓴 건 아니지만, 주로 샤워를 하거나 화장하는 막간에, 아니면 유튜브를 보면서 설거지를 할 때 유독 생각이 떠오른다. 거창한 생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딴엔 참신하고 기발한, 생활에 적용할 만한 것들이거나 수업에 활용할 만한 것들, 또는 삶의 진리, 원래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깨닫게 된 것들. 그러면 그 생각을 놓칠세라 얼른 키보드를 두드렸던 게, 이런 식으로 글쓰기에 취미를 붙이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다가왔던 게 요즘 무렵의 일이었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작가로 호명해 주시고 우리 식구들과 몇몇 친구들에게 예수님 탄생에 버금가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동시에 축하 인사까지 받으니 왠지 내가 혼자 있을 때 글을 쓰면서 마음을 비우고 정화하는 그런 소소한 기쁨과는 다른 약간의 묵직한 부담이 느껴졌다. 2021년 마지막 날을 기념하며 평소 같았으면 주저리주저리 1년을 회고하고 내년의 계획을 상세하게 늘어놓는 자유분방한 글을 썼을 터인데 오늘 아침 글을 쓰려니 도저히 써지지가 않았다. 주변에선 날 칭찬해 주었을 뿐인데 나 혼자서 무언의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나답게, 습작용으로, 아무런 의무감 없이, 여기저기 산재해 놓은 글을 모아가는 느낌으로 활동하고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압박감에 당혹스러웠다. 이러다가는 작가로서의 자질을 스스로 폄하하며 브런치에서 탈출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브런치를 알게 된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에서 과감하게 한 도전이 하루 만에 합격의 감격을 안겨주니 그 순간엔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희망이 샘솟고 모든 불가능을 가능케 할 용기도 생겼다. 진짜 작가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랬다가 오늘 아침엔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할 뻔한 것이다. 이렇게 일희일비하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을 돌리기로 했다. 거창하게 쓰지 않기로. 고요하게 마음을 평정하기로. 애초에 활동계획서 목록에 없는 글이라 해도 그냥 마음 편히 쓰기로. 처음 집을 짓는데 좋은 건축 재료는 구할 수 있지만 그 재료를 가지고 당장 뚝딱하고 집을 완성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엄선된 글만 올리고자 한다면 나의 한계는 머지않아 드러나게 될 것이 분명하므로. 그래서 에세이를 쓰고는 싶지만 미셀러니도 많이 쓰다 보면 언젠가는 에세이스트라는 타이틀도 얻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마음의 부담은 내려놓고 그냥 쓰련다. 구독자도 라이킷도 통계도 신경 끄고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책을 쓰게 되면 그때 엄선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다독인다.
새해가 밝아오는 시점에 ‘시간’에 관한 관념을 쓰고 싶었고 ‘삶의 통찰’이나 ‘몰입’, 최근에 읽었던 <스티브 잡스> 얘기나 황농문 교수의 <몰입>에 관한 글도 쓰고 싶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내 그릇이 너무 작다.
그래도 파이팅은 외쳐 본다. 긍정의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기에, 긍정의 힘을 가진 내 그릇부터 키우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