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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라

양육 솔루션 part 4

by 김혜정


집 앞을 나서면, 엘리베이터만 타도 쉽게 마주친다.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 수많은 엄마을.

생각해 보면 집집마다 있다. 엄마들이. 그리고 엄마의 자녀들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그냥 나부터가 엄마다!!^^

물론 새댁은 제외다.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운 강아지와 멋진 훈남 남편과 단촐히 살고 있는 우리 옆집 여성과 같은 새댁은 제외. 또 홀로 살아가시는 독거 할아버지도 제외. 독립해서 살아가는 청년들도 제외. 아이구~ 생각보다 엄마가 없는 가정도 많구나.


그럼에도 내 눈에는 유독 엄마와 자녀들이 보이고 그들의 목소리가 내 고막을 파고든다. TV를 틀어도 엄마와 자녀의 관계를 상담해 주는 프로가 마음을 사로잡고 아래층에 사는 네 살쯤 된 어린아이가 뿌앙~ 하고 울어재끼는 목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안타깝다. 오죽했으면 개인 사정을 전 국민 앞에 고백하러 나왔을까 싶, 엄마가 나와서 자기 평소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며 눈물을 주루룩 흘리면 코끝부터 시큰해진다. 아래층 여아가 울면 그 어린아이는 분명 억울한 일이 있을 텐데 엄마가 그걸 몰라주는 건가 싶고, 소리를 벅벅 지르는 엄마는 아이가 똥고집을 부려서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세상엔 많고 많은 엄마가 있지만 나의 엄마는 유일한 단 한 사람. 바꿀 수 없는 존재다. 아이 역시 엄마에겐 평생을 책임져야 할 존재가 된다. 그렇게 엄마와 아이는 서로 유일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는 본의 아니게 엄마를 짜증나게 하고 엄마 역시 본심과 다르게 아이를 욕되게 하곤 한다.

서로 사랑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이 흘러가 버리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는 관계가 된다.


그러니 이제 우리 사랑만 하며 살자


ㅡ작은아들이 어젯밤에 '난 엄마가 너무 좋아'라고 말했다.


내가 읽을 책을 한 권 갖고 작은아들 방에 들어가면서 "우리 이제 책 읽자!!"라고 했는데 아들이 핸드폰을 바로 내려놓고 책 [80일간의 세계일주]를 펼치면서 온몸으로 발광한다. ('발광'은 저속한 표현이지만 온몸을 콩콩거리고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한껏 드러내며 반기는 기색이 주인 만난 강아지 같아서 꼭 '발광"이 제격인 단어처럼 느껴짐) 덩치는 점점 산 만해지는 초딩 5학년이지만 아직은 너무나도 귀여운 아들.


ㅡ큰아들은 엄마가 좋다고 언제까지 말했는지 기억이 잘..


아마도 사춘기 전이었던 듯. 그러고 보면 진정한 사춘기에 접어들면 사랑한다는 말을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자녀 교육 관련 유튜브를 하나 보면서 설거지를 끝낸 후 곧장 큰아들한테 달려가 두 손으로 머리 위로 큰 하트를 그리면서 입으로도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는데 중3 아들은 "응~"하고 시큰둥하게 반응했지만 속으로는 흐뭇(므흣)했을 거라 믿는다. 워낙 작은아들이 "사랑해~"라는 말을 달고 살아서 엄마도 "응~엄마도~"라고 답하는 걸 옆에서 자주 목격은 했을지언정 본인은 사춘기의 시작과 사춘기의 종료 시점 및 그 이후까지 몇 년 간 엄마랑은 "사랑해"란 흔한 말을 가슴속에만 묻어두었으니 말이다.


어젯밤에는 1차로 작은아들 방에서 책을 같이 읽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2차로 큰아들 방에 들어가 책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을 내가 읽다 만 230페이지부터 소리 내어 읽어주기 시작했다. 전에는 공부 얘기라면 사양한다고 듣기 싫어하더니 어젠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귀는 열어놓고 내가 읽는 작가의 생각에 토를 달면서 집중하면서 들어주었다. 아마 그전에는 그 책에 대한 사전 정보를 나불거렸기 때문에 듣기 싫었던 것 같고 어제는 아무 말 없이 바로 낭독에 돌입하였으므로 방패로 막을 생각조차 못한 것 같았다. 한참을 읽다가 너무 졸려서 엄마 이제 가서 잘 테니까 요기부터는 니가 나중에 읽으라고 책갈피를 끼워주니 눈으로 확인하고 "여기부터 읽으면 돼?" 한다. "응~~" 앗싸, 성공이다. 읽는 중간중간 애가 자리를 뜰까 조마조마하며 최대한 집중 잘 되게 언어감각을 살려 읽어 주었는데 나의 진심이 통했나 보다. 이번 기말고사에 전력은 아니어도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여서 조금이나마 성과가 있었으면, 그래서 내적인 동기가 생겨서 고등학교 가서 갑자기 진격의 거인이 되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내 소망과 진정성이 거부감 없이 표현되었으리라.


일단 자신과 다른 생각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은 공부하기 싫은데 누가 공부하라고 자꾸 등 떠밀면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이다. 태양과 바람의 시합처럼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승자는 바람이 아니라 태양이었으니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채찍질이 아니라 따뜻한 말과 행동에 있다는 걸 몸소 느낀다. 앞으로도 나는 시행착오를 겪을 준비가 되어 있다.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은 무수한 기회들의 텃밭이므로 자식 농사 성심성의껏 지어보자. 추수량이 적어도 괜찮다. 매번 고비가 와도 괜찮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 된다.


내가 주의해야 할 점은 아이가 스스로 제풀에 꺾여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밖에 없다. 충분히 물을 대 주고 한결같이 볕을 쬐어주고 거름도 팍팍 넣어 주면 더 단단한 땅이 되어 새싹을 돋우지 않겠는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July 14. 2022

작가의 서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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