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정지음 작가님의 책을 읽다가

by 김혜정


천성적으로 겁이 많은 나는 사람 사이 기후 차이에 예민한 편이었다. 내가 그러기를 원하여 사람들은 나의 민감도를 잘 몰랐다. 나는 신경질적이라는 걸 감추려고 해맑은 바보인 척을 했다. 어차피 내가 가진 신경질적 성향이란 화를 미친 듯이 내는 형태가 아니었다. 신경질 부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과해 히스테리가 솟으므로 모든 과부하가 내부로 파고들었다. (중략)
그 때문에 내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말이나 행동들에는 늘 우산 같은 장치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웃음이거나 웃음을 유발하는 개그, 농담이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전혀 웃지 않게 될까 봐 많은 이들을 먼저 웃긴 후에야 안심하는 사람이었다. 웃음을 뿌린다는 이유로 나의 뉘앙스는 건강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가능케 하는 것은 조바심과 초조함이었고, 나는 이따금 자신을 연료로 태우는 사람 특유의 피로감을 느꼈다. 그러니까 인파에 몸을 던지다가도 또 거기서 도망쳐 빗속을 택하게 되는 것이었다.
빗속에서 깨달은 바는 다시 희망이었다. 비로 말하자면, 창문으로 흘깃거릴 땐 몇 시간 내내 세찬 것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비든 몇십 분의 집중 상태와 몇 분의 소강상태가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해가 떴다. 그렇다면 비가 내포하는 미래 자체가 햇살이라 봐도 좋을 것이었다. 그런 점이 인간관계와도 닮아 있었다. 어떤 사이 얼마만큼의 갈등이든 잠깐씩 햇살이 비치거나 물살이 희미해지는 순간이 존재했다. 그 사실을 수용하거나 외면하다 보면, 버티거나 보내주다 보면, 시간이 흐른 후 마지막은 어쨌든 맑음이었다.
물론 살다 보면 비가 그치듯 홀가분하게 완료되지 않는 관계들도 있었다. 사람이 만든 장마에 갇힐 때면 내가 두 다리로 달려 그 속을 벗어나면 되었다. 도망이란 넓은 의미에서 러닝이기도 하니까, 잽싸게 속력을 올려도 괜찮았다. 안전한 곳에서 옷을 말린 후에는 비를 맞은 적 없는 것처럼 산뜻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정지음, p84~86 발췌




이보다 더 내 마음을 관통하는 표현은 이제까지 없었다. 모든 말이 흡수되고 어느 한 구석 거리끼는 부분이 없다. 인간관계와 인간의 심리에 관심이 많다지만 내밀한 구석구석까지를 말로 쪼개고 다듬고 버무려서 이렇게 정갈하게, 그리고 이렇게 적절한 비유로 표현하는 것에서 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오늘 오전 11시 무렵에 비가 거세게 쏟아졌었다. 아마 큰 창문을 바라보았던 분들이라면 갑자기 폭우처럼 내리던 빗줄기에 잠시나마 일손을 놓고 무념무상에 빠졌을지 모른다. 이렇게 갑자기 비가 내릴 줄은 몰랐다. 이불 빨래를 돌리고 화장을 하고 나왔는데 후두두둑 후두둑 성난 듯한 빗줄기가 창문에 내리 꽂히고 있었다. 밖이 희뿌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맑았던 하늘이 검은 구름에 휩싸여 있었다. 방마다 창문이 열려 있지나 않은지 종종걸음을 내달려 확인한 뒤 안심을 하고 거실 창문에 기대어 한 20분 정도 서 있었다.


그냥 먹먹한 마음이 들어 멍했다. 멍한 상태로 멍을 때리는 일, 오전 나절에 내가 잘하는 짓이다. 나의 본격적인 하루는 오후에 시작되므로 혼자 있는 오전 시간은 나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다. 큰아들이 이번 주부터 - 조퇴를 하기는 하지만 - 학교에 나가고 있으므로 오로지 나 혼자 있는 거룩하고도 고요한 시간이었다.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고 멍을 때리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내 뇌의 신경세포는 어디론가 달음질을 친다. 가지 말라고, 뇌 회로 타고 뇌신경 건드리지 말라고 아무리 뒤쫓아 가도 어느 순간 측두엽은 과거의 장기 기억에 들어가 있는 나쁜 기억을 훑어내고 그것을 불러오기까지 한다. 그러면 그게 무슨 멍을 때리는 건가? 계속 생각을 하는 거지? 그래, 맞다. 나의 멍 때리기는 사실상 1~2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 3분쯤이면 무슨 생각이라도 끄집어내서 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진짜 멍을 때리고 싶다면 잠을 자야 한다. 잠을 자면 무의식은 또 나의 생각을 뒤집고 볶고 삶아서 새로운 창작품을 만들어 준다. 그냥 눈을 뜨고 잡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꿈이 만들어주는 신선한 창작품을 받는 것이 훨씬 재밌는 일이다.




아무튼 우리 브런치 출신 작가님의 책을 읽다 글을 쓰는 이 순간은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가 가도 될 것 같다. 이해를 구하지는 않았지만 이해받는 기분이랄까? 누구를 위한 글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글이기에 괜찮다. 아무 자책감이 없어진다.


정지음 작가가 ‘하필 세상에서 가장 이상하고 못나고 재능 없고 마이너해서,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멋쩍은 사람을 좋아하기로 정해버렸는데, 그건 바로 나였다.’고 했는데 그렇다. 나도 좀 비슷하다. 난 일부러 나를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좋아한다. 사실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까탈스럽기도 하고 이기적이기도 하고 고집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면을 상쇄할 만큼의 친절함과 배려심과 정직함이 내 안에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 해도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일부 용감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정지음 작가처럼 태생부터 겁이 많다. 겁이 많아서 예민하다. 예민한 만큼 민감해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을 촉으로 모두 감지한다. 그러다 무슨 문제라도 생길라치면 더욱 민감해지고 신경계가 과민해진다. 신경의 과민을 차단하기 위해 더 많이 신경을 쓰고 행동도 조심스러워진다. 인간관계가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예민했던 기질 탓. 예민한 것이 싫어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너무 거북하고 내가 바보 같아지는 것 같아서 예민해 보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난 신경질적이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발악을 했다. 소심하지 않다고, 나는 진짜 대범하다고. 난 A형이지만 다들 O형인 줄 안다고 박장대소를 하면서 털털해했다.

어쩌면 난 우리 부모님이 너무 소심하고 소극적인 데다가 이기심도 큰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대범하고 호탕하며 털털한 사람이 되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조용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나와 분위기를 주도했던 대학교 시절의 나는 생판 다른 사람 같았으니까. 나는 성격을 성공적으로 개조했고 그렇게 변화된 나 자신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때면 여지없이 그동안의 노력으로 개조된 성격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곤 했다. 바늘처럼 뾰족해진 내 감정은 온 마음을 콕콕 쑤셔댔고 나를 몰라주는 타인에게도 방패를 휘둘렀다.


시간은 많이 흘렀고 날 스쳐 지나간 인연들도 많았다.

수많은 폭풍우가 지나가고 말갛게 쏟아지는 햇빛을 보기를 반복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몰아칠 때는 무섭고 두렵고 젖는 것이 싫어 짜증이 났지만 어느새 비가 그치면 산뜻해졌다. 대자연의 신비처럼 인간관계도 그러했다.

만약 정 뜻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끊어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내 마음과 감정을 쇠하게 하는 사람을 마음에서 비우고 혼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면 산뜻한 마음이 더 커져서 강한 햇볕을 쬐고 싶은 마음이 동동거렸다.




한동안 성경 마태복음에 나와 있는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라.’라는 말씀에 따라 누군가 나한테 못된 짓을 해도 덤덤히 참아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자기희생적 행동에 큰 가치가 있는 것이고 난 크리스천이니 말씀을 행동과 일치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급속도로 커지는 신앙심에 스스로 격앙되기도 하고 선한 사람이라는 일말의 자의식도 팽배했다. 하지만 인간성에 대하여 고민하고 관계를 재정립해 가면서 어느 정도의 선긋기는 나를 지키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모든 행동을 타인에게만 맞출 수는 없었다. 내가 안전하고 건강해야 내 가족을 지킬 수 있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다음부터 나는 누군가 내 오른뺨을 치려고 하면 눈치 빠르게 도망가기로 했다.


인간관계에 아무 불편함 없이, 모든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과 내가 맞을 수도, 내가 타인의 요구를 다 충족할 수도 없다. 예민한 기질의 나 같은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이젠 나 자신이 예민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런 나 자신을 이해하고 보호해 주기로 했다. 멍 때리고 싶은 순간까지도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으로 얼룩지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아무는 시간은 조금 걸릴 것이다. 상처가 낫고 새 살이 돋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거니까. 폭풍우가 지나고 따스한 햇빛이 비칠 때까지도 기다림의 자세는 필요한 거니까.


벌써 깊은 새벽이다. 무의식의 세계로 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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