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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시작은

분노 멈춰!!

by 김혜정
2021년은 내가 초등학교 생활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한 해였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고생이 가장 많았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친구들이랑 더 친해지고 결과적으로 더 행복해진 건 사실이지만 반대로 친구 문제로 힘들었던 일도 많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지치고 힘든데 기댈 곳이 없어서 혼자 운 적도 많았다. 그래서 2022년은 이런 문제들이 조금은 해결되어 건강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올 해의 내 계획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선 다른 사람에게 속상한 점이 있으면 바로 얘기해보려 한다. 원래부터 그런 성격은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서 속상하거나 잘못됐다고 생각이 들 때 바로 말하는 게 조금 힘들었는데 이러다 보니 내 속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힘든 것 같았다. 그래서 당장은 힘들더라도 크게 상처받지 않을 내용이라면 좋게 얘기해줄 것이다.
두 번째는 나를 조금 더 사랑해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지금보다 자존감을 높여 보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를 아끼지 않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내가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날 아껴주겠구나 싶어서 이제라도 자존감을 높여 보려고 한다. 자세하게는 내 장점 찾기를 해 보려고 하는데 거창하지 않고 엄청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잘하는 일이나 내 좋은 점을 찾아보고 나를 조금 더 아껴보려고 한다.
(이하 생략)


내 자식은 어떤 사람일까

누군가 나에게 자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자기주장을 하는 아이를 자식으로 삼고 싶다. 만날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힘들었거나 속상했거나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속에서 참지 말고 꼭 차분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하면서 오해를 풀어가려고 노력한다면 좋을 것 같다. 차분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말을 하다 보면 당연히 감정이 생기기 때문에 점점 흥분을 하게 된다. 하지만 흥분을 하면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도 힘들고 오히려 대화를 하기 더 힘들어진다. 친구들과도 부모-자식 관계에서도 차분하게 대화하는 모습은 말하지 못했던 서로의 솔직한 마음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진실된 관계로 잘 지내고 싶다면 차분하게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내 자식도 그런 성격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자기주장을 하는 아이를 원하는 이유는 나와 달랐으면 좋겠어서이다. 내가 겉으로 보기엔 그냥 밝은 아이 같아 보이지만 사실 상처도 많이 받고 마음속에서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겉으로는 잘 표현하지 않고 숨긴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말을 했을 때 상처를 받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고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움도 있다. 나는 이런 내 성격이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서 싫기도 하다. 내 자식은 아무래도 나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날 것이다. 그럼 나의 성격도 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식을 선택한다면 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아예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 자식은 나와는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하는 아이가 되어 나보다는 마음고생을 덜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실제로 나는 엄마와 성격이 비슷하다. 엄마도 학창 시절에 나처럼 힘든 일이 있어도 친구들에게 말을 잘 못 했다고 한다. 타고난 성격이어서 고치긴 힘들겠지만 앞으로는 나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이기적인 마음이라 하더라도 사람은 자기 자신을 먼저 챙길 줄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남보다는 나를 위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마음이 편안해져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마음도 살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고려해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내 자신과 함께 다른 사람들도 사랑해야겠다.


위의 두 글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의 학생들이 쓴 글로 선생님의 글에 일부 인용해도 좋다는 동의를 구하고 여기에 올린다. 첫 번째 글은 2022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빛낼 나의 계획’을 주제로 쓴 글이고 두 번째 글은 <페인트>라는 책에서 버려진 아이들이 프리 포스터를 만나 자신의 부모를 선택하는 것과 달리 내가 부모가 되어 '내 자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자식을 원하는가에 대해서 쓴 글이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속살까지 비칠 수 있도록 글을 덩어리째 내놓았다. 나와 만난 지 각각 4개월, 10개월밖에 안 됐지만 이미 오랜 만남인 듯 느껴지는 것은 내 지난 삶이 그들의 현재 삶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일까.


나도 그들처럼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었지만 그게 제일 힘들었다. 남 배려한답시고 속마음을 꾹꾹 참는 것이 버릇이 되어 오히려 비수는 나에게 꽂혔고 부정적인 감정을 배설해야 내가 건강한 줄 모르고 그득그득 안으로 쌓아놓다가 누가 날 비판하기라도 하면 날카로운 가시를 세워 방어막을 쳤다. 그게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이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인 줄 알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그런 줄 알고 살았다.


부드럽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도 싶었지만 그걸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기에 내 말은 창이 되고 화살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내가 원했던 건 쌍방향 소통이었는데 그냥 일방통행일 뿐이었다. 우리 아빠가 그랬다. 말을 하다가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잡아먹을 듯 큰소리를 치고 감정이 제어가 안 돼 분노로 바뀌고 종국엔 꼭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원만한 대화가 안 되니 누군가와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은 폭발을 감당할 용기 없이는 시작하기 힘든 게 되었다. 오빠와 나도 아빠를 닮아갔다. 나의 대학 시절 집전화 통화 시간을 줄이라면서 오빠가 내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란. 그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물을 한 컵 먹고 가슴을 진정시켰지만 그래도 진정이 안 돼서 심호흡을 세 번이나 하고 화장실까지 다녀온 후에 노크한 거라고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어 얘기했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차분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을 경직된 표정에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까지 흥분할 필요가 있었을까. "뭐 그런 걸 가지고 왜 그렇게 흥분하는데!!!" 나도 짜증이 나 맞수를 두었고 결국 오빠와 나의 대화도 폭발로써 끝났다. 그렇게 우린 성인이 된 상태였음에도 아빠와 똑같이 폭발형 인간이 되어 편안한 대화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간혹 더없이 자상하고 편안한 분을 부모님으로 둔 사람을 만나면 부럽다. 사랑 표현은 안 해도 좋다. 그냥 대화라도 마음 편히 하고 싶다. 종국에 분노가 생길 걸 안다면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겠는가. 사실 지금도 친정에 가는 것은 큰 부담을 안고 가는 모험이다. 부드러운 대화가 어려운 자리에 오랜 시간 있는 것은 고역이다. 차라리 안 가고 싶다. 그래서 오빠 식구들도 내가 가는 날에 맞춰서 가고 나도 가능하면 우리 아들들을 대동해서 가려고 한다. 이도 저도 여의치 않을 땐 혼자라도 가지만 최대한 짧게 3시간 정도 머물고 맛있는 요리를 사 갖고 가서 한 끼 대접해 드리는 걸로 최선을 다했다고 위로 삼는다. 마냥 부족한 걸 알지만 그래도 내 딴엔 최선이다.


대인관계의 편안함은 대화의 편안함으로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내 속을 그대로 꺼내 보이더라도 분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 앞에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즐거워진다. 그리고 내 시시한 생각들에 공감하고 맞장구까지 쳐주는 사람이라면 일시적인 고마움을 넘어 일평생 친구 할 사람으로 자리 잡힌다. 대화가 편한 사람. 쉬워 보이지만 어렸을 적 진솔하고 편안한 대화를 가족들과 나눠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우리 학생들도 우리 아들들도 나의 전처를 밟지 않도록, 그래서 무슨 이야기든 끝까지 편안하게 들어주려고 오늘도 나는 귀를 활짝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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