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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Feb 08. 2023

나는 마흔 일곱부터 영어를 정복하기로 했다. 2

도스 버거? 맥도날드?

     

많은 유튜버들과 블로거들이 괌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입 아프게 얘기했던 곳 중 하나가 햄버거 가게였다. 유명한 버거집은 많이 있지만 PIC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도스 버거’가 있다고. 걸어가면 10분 정도밖에 안 걸리고 아주 맛집이라고 포스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각선 맞은편에는 K-Mart가 있는데 초콜릿도 저렴하다고 했다. 소개글을 캡처해 두고 첫날 저녁엔 꼭 가자고 마음먹었다.



짐을 풀고 리조트를 요기조기 구경한 후 6시쯤 저녁을 먹고 서커스 시작 시간인 7시 반까지의 여유 시간을 노렸다. 어차피 걸어서 왕복 20분을 제외하면 40분이 남으니까 도스 버거는 무난히 갔다 올 수 있고 헤매지만 않으면 K-Mart도 문은 열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괌이 딴 건 꼬집을 데가 없는데 날씨 하나만큼은 변덕스럽다는 것이었다. 짐을 챙길 때 난 우산이나 우비를 가져가길 희망했다. 그런데 어차피 수영장 밖을 나갈 생각이 없던 남편은 굳이 그것들이 필요하겠냐며 비가 오면 맞자고 고집을 부렸다. 괌이어서라기보다는 워터파크를 낀 리조트로 떠나는 여행인 것을 좋아했던 – 거의 10년 만에 휴가를 받은 것이어서 그에게는 여행지보다는 휴식에만 큰 의미가 있었으므로 - 남편은 짐 싸는 데전혀 무관심했다. 나도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 가족 여행인지라 물놀이 용품과 장비들, 바닷속 열대어를 감상시켜 줄 스노클링 세트 4개 · 수영장을 누비게 해 줄 고급 판타스틱한 수경 4개 · 찰과상을 피하게 해 줄 아쿠아슈즈 4개 등을 온라인으로 구입하고, 추위에 덜덜 떨지 않게 해 줄 비치타월과 (기내용) 담요 등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캐리어 용량이 다 찼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간과한 괌 날씨는 쨍하고 해 뜬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빗방울을 만드는 재주를 선보였다. 처음엔 그냥 지나가는 비처럼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에 우리 이 정도쯤이야 맞자, 이것도 여행의 묘미 아니냐! 하면서 꿋꿋하게 걸어갔다. 그런데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는 사이에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고 어느새 달려온 먹구름에 주위가 험악해졌다. 헉, 이대로 가다가는 쫄딱 젖겠다고 판단하고 우리도둑한테 쫓기듯 호텔로 도망쳐 왔다. 그 사이 진짜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괌 날씨는 우릴 놀리듯 또 맑게 개어 있었다. 이런 줸장.     

맑게 갠 하늘

이것이 내가 마지막 날 오전에 혼자 버거를 사기 위해 나가게 된 사연이다. 훗.



물론 나에게도 오기가 있고 고집이 있다. 버거 못 먹고 영어도 맘껏 못 쓰고 간다면 내 여행비는 헛돈이 된다.      

남자 셋이 수영장에 간 후,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기내에 실을 小자 캐리어와 수하물로 보낼 中자, 大자 캐리어를 구분하고 꺼냈던 물건들을 다시 집어넣는 데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잠깐 쉰다고 큰아들이 숙소에 들어왔다. 큰아들의 담임쌤이 추천해 주신 웬디스 버거는 못 사올지언정 도스 버거는 사 갖고 오겠다고 다독이면서 아들과 포옹하고 룸을 나섰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호텔 로비 바깥쪽으로는 상시 대기 중인 택시 기사분들이 계신 걸 돌고래 크루즈를 나갈 때 눈여겨봐 두었기에 그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서 내가 말했다.


익스큐즈미~. 아이 원투 고 도스버거!!”


두세 분의 외국인 택시기사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캔 아이 go 투 the 도스버거?”


내가 다시 묻자 두 사람이 서로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쿡식 발음이 아니어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미쿡식이었으면 더 못 알아들었겠지만^^.) 기사분들은 얼굴이 까무잡잡했다. 동남아에서 오신 분들 같았다. 카누를 탈 때 보니까 잡초 뽑는 일을 하는 분들과 시설을 수리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 높은 물가페이센 괌으로 온 동남아인들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마 내 추측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잡생각을 떠올리느라 그들의 대화를 더 못 알아들었다.



앉아 계시는 덩치 큰 분이 슐라슐라 했고 서 있던 조금 젊은 분이 나에게 “일레븐, 일레븐”이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일레븐?” 나는 속으로 뭐라는 거야~ 좀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든지~~ 하면서

“왓 디쥬 세이?” “아이 돈 언더스탠!!”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까무잡잡한 그 젊은 택시 운전기사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끄덕거리고는 “유 원투 고 도스버거?”하고 재차 확인한다. 그래서 “yes!! yes!!” 라고 답하는데 갑자기 그가 짧은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가면“팔로 미, 팔로 미!!”한다. 엉거주춤 나도 “팔로 유?”하면서 속으로 이건 비문인 것 같은데 “슈다이 저스트 팔로우 유?”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총총 뛰 걸어갔다. 그는 자기 택시에 재빨리 올라탔고 나도 시간이 촉박한지라 일단 타고 보았다. 10분이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다는 거리를 행여 길을 헤맬까 우려하여 택시를 탄 건데 오히려 5분은 까먹은 것 같았다. 차라리 걸어서 갈 것을.      



택시 기사가 말했다.

“잇츠 끌로즈드!! 잇츠 끌로즈드!!”

클로즈드? 클로즈라는 말인가? 가깝다고? 어, 맞아, 가까운 건 알고 있어. 나도 대꾸했다.

“yes!! 잇츠 베리 클로즈?”

그때 택시 기사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헐, 도스 버거였다. 젊은 택시 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건 아주 작은 도스 버거집 앞에 걸려 있던 표지판이었다.

open 11:00 am. 

도스 버거


가깝다는 말이 아니라 문을 닫았다는 뜻이었다. 오픈까지 기다리는 건 오바라고 생각하는 사이, 갑자기 머릿속에 스치고 가는 게 있었다. 헐. 아까 두 사람이 나누었던 대화는 11시에 문을 여는데 지금 가도 소용이 없지 않느냐는 얘기였던 것이다. 앉아있던 사람은 그걸 알면서도 나를 태우고 가라고 젊은 남자에게 말한 거고 젊은 남자는 11시에 문을 연다는 사실을 나에게 얘기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못 알아듣고 눈치도 못 채고 이렇게 따라왔으니 누굴 탓할 수가 없었다. 속인 건 둘 다 똑같았지만 젊은 남자는 그나마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거짓말이지만 내가 이미 속은 마당에 ‘니가 어떻게 나를 속일 수 있냐고, 난 거짓말이 제일 싫다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중요한 건 그런 말 영어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 파파고를 찾을 수도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젊은 남자는 자기도 몰랐던 듯 능청스럽게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연기하며 나에게 꼭 버거를 사야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난 이미 버거를 사러 나온 마당에 또다시 “yes!!”를 외쳤다. 유턴을 두 번 해서 맥도날드에 갈 수 있는데 가겠냐고 했다. “맥도날드? 이즈 데어 맥도날드 오버 데어?” 난 불현듯 그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K-Mart 안에 맥도날드가 있나 보다 하고, 그럼 내가 걸어서 가겠다고 했다. 그는 그건 결단코 안 된다고 했다. 엄머!! 아니, 왜 안 된다는 거야? 요기서 요긴데? 그는 “잇츠 베리 far.”라면서 뭔가 좀 더 설명했다. 난 “이즈 잇 far?” 하고 다시 되새김질을 하면서 이 놈이 혹시 날 골탕 먹이려는 건 아니겠지? 설마 납치하려는 거 아냐?  나는 순간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살짝 두 손을 움켜쥐고는 맥도날드에 날 내려주면 거기서 호텔까지는 걸어서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까 했던 설명을 또 한다. 멀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허허, 상하네~수상해.



그 좁은 도로에 유턴 신호는 왜 그렇게 긴지, 택시 문을 박차고 뛰어내릴 수도 없고 대략 난감했다. 그는 두 번째 유턴을 하더니 K-Mart를 지나서 2차선 직진 코스로 시원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맥도날드에 간다고 했다. 난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웅크러쥐었던 두 손이 스르르 펴졌다.



5분 이상을 달리자 맥도날드가 눈에 띄었다. 돌아갈 땐 걸어가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그 택시 기사가 돌아가고 나면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판이었다. (진짜 큰일 날 뻔.)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내가 주문하고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조오기 끝자리에 주차하고 있을 테니까 그쪽으로 오라고 여러 번 설명했다.  

    


두둥!! 나는 혼자서 괌 현지의 맥도날드에 입성하였다!! 남편도 아들들도 없이 말이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해외여행을 혼자 해보고 싶었는데 와!! 나 지금 혼자다? 그 짧은 시간이었지만 혼자 해외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낯선 곳에 낯선 사람, 외국 맥도날드에 나 혼자? 대박이었다. 겉으로도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막 흥분이 되었다. 들어가자마자 키오스크가 보였고 안쪽 프런트에는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두런두런 얘기하며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키오스크를 보면서 아들들에게 전화를 걸어 먹고 싶은 메뉴를 물어보았다. 이것저것 사가고 싶어서 그랬지만 키오스크 주문에 실패했다. 그래서 그냥 빅맥으로 통일하기로 하고 프런트로 가서 남자 직원에게 ‘영어로!!’ 주문을 했다. 직원은 내 말을 확인하며 주문을 접수해 주었고 음료를 가져가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콜라를 알아서 가져가는 건 줄 몰랐던 나는 “아이 원 콕!!”이라고 몇 번 더 말했다.

맥도날드 in GUAM


버거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더니 기분이 상쾌했다. 날 기다려 준 택시 기사에게도 고마웠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바깥 풍경도 (별로 볼 건 없었지만) 사진까지 찍으며 감상에 젖었다. 호텔 앞에 도착하자 젊은 택시 기사(30대로 추정)가 문을 열어 주었다. 미터기를 바라보니 30불이나 찍혀 있었다. 환율이 1,260원 정도였으니 그 멀지도 않은 길에다 택시비로 38,400원이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택시비는 나에게 체험료이자 수업료였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디서도 겪어보지 못할 신선한 경험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찍은 바깥 풍경


괌 여행을 마치면서 나는 새로운 비전을 얻었다. 영어 공부는 단순히 내 열등감을 극복하거나 새로운 언어에 대한 흥미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여태 몰랐지만 난 반드시 영어 회화를 해야만 했다. 꼭 필요한 것이었다. 세상은 넓고 내 두 발이 가고 싶어 하는 곳도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에는 큰 포부가 없었지만 이제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 가이드를 따라다니지 않고 내 손으로, 내 언어로 모든 것을 선택하고 구하고 해결하고 싶다. 그러려면 언어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 아들들에게도 대학을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국 사람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혼자라도 배낭 메고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언제라도 준비된 상태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괌에서 맛본 빅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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