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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Feb 11. 2023

가끔은 무거운 감정의 추가 이긴다.

잠재우고 싶은 기억의 편린들


               

뜨끈한 전기매트 위에 누워서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사실 이미 몸은 잠을 자고 싶어 했으므로 일부러 잔잔한 all 관람 등급의 영화를 골랐다. 16세 소녀가 풍랑을 견디어 내며 세계 일주를 한다는 내용의 호주 영화였다. 원래 나는 잔잔한 영화를 보면 잠을 잔다. (아이들은 나를 깨우기 바쁘고 중간중간 내가 자나 안 자나 확인한다. 나만 빼고 엄청 좋아하는 <너의 이름은> 같은 영화는 가족들이 보고 또 볼 때 나는 자고 또 잤다. 그러다가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고야 말았다. 인상 깊은 영화였다.)            




첫 번째 꿈

꿈을 꿨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 계단에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중간 정도 올라갔을 때 두꺼운 철문이 있었다. 내가 철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어린 남자아이가 겁에 질려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나를 밀쳐 냈다. 그 아이는 계단으로 도망치듯 쿵쾅거리며 내려가고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밖으로 나갔다. 내가 나간 곳은 어딘지 모르겠지만 아파트 단지 안이었다.


50m 정도의 거리에 있던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어떤 여자가 큰 쇼핑백을 무겁게 들고는 나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이것 좀 들어서 옮겨 주시겠어요?” 간절했지만 이상하게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뭐야~ 나보다 훨씬 힘도 세게 생겼는데 작고 연약한 나한테 들어달라고 하는 거야?뭔가 수상했다. 게다가 그 여자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아파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누군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무서웠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 제가 지금 바빠서요~~.”라고 성급히 말하고는 후다닥 계단으로 다시 내려갔다.  내려갔다가 기억이 끊겼다.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무서운 마음으로 살금살금 올라갔다. 그 여자가 어딘가로 가고 이제는 없겠지 싶은 마음으로 밖으로 나가보니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그 여자가 오두카니 서서 꼭 일본 만화나 영화에 나올 법한 기괴한 모습으로 나를 또 쳐다보았다. 소름이 돋았다. 아까 나를 분명히 봤을 텐데 꼭 처음 보는 것처럼 아까와 같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 좀 들어서 옮겨 주시겠어요?” 이번에는 대답조차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기억이 끊어졌다.       

   



두 번째 꿈

어느 건물 내부였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혼자 있었다. 걷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딘가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소음이 막 일더니 한 쌍의 남녀가 내쪽으로 막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말을 타고 오는 것았다. 두 발로 뛰어온 건 아니었다. 가까워질수록 형체가 보였는데 그 두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 좀비였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괴상망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공격하지는 않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말을 달려 곤두박질쳤다.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나를 제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버렸다. 끔찍한 순간이었다.



놀랐지만 좀비를 따라갈 생각은 없었기에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있던 계단으로 도망치듯 걸어내려 갔다. 그런데 계단의 반쯤 내려갔을 때 이번에는 아래에서 어떤 해괴망측한 괴물이 나타나 나를 붙잡으려고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잡히지 않기 위해 발로 괴물을 걷어차려고 했지만 가격하지는 못했다. 그러고는 잠에서 빠져나왔다.          



꿈이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그것도 악몽이었던 것 같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무서워하고 쫓기고 도망가고 싶었던 그런 꿈은 정말 오랜만에 꾸었다. 요즘 나는 너무 행복한 꿈만 많이 꿔서 잠자리에 드는 걸 무척 설레했었는데 낮잠(사실은 저녁잠, 6시 반 쯤부터 2시간 잔 듯)을 이렇게 꾸니 두려움이 생긴다.           




꿈이 자신의 심리를 반영한다는 건 너무나 공공연한 사실이다. 현재 자신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 이루고 싶은 소망을 실현함으로써 대리 만족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어떤 박사님이 꿈을 구체적으로 많이 꾸는 것은 보통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예술가나 작가들의 경우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봤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역시... 아무도 모르지만 나한테 작가적인 기질이 있었어~.’하고 좋아했었는데 오늘처럼 구체적인 악몽을 꾸니 사뭇 마음이 달라진다. 작가적인 기질이고 뭐고 차라리 꿈을 안 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럼에도 난 꿈을 좋아한다. 어떤 꿈이든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는 안내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꿈을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고 기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좋아한다. 악몽이라 할지라도 그게 내 마음이니 싫다고 밀어내려 하기보다는 의미를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꿈의 해석>          

세 가지 꿈 중 두 개의 꿈에 공통적으로 계단이 나왔다. 계단은 일반적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나타내는데, 올라가는 것은 긍정적으로, 내려가는 것은 다소 부정적인 뜻으로 해석된다. 계단을 올라가는 도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의 마음 상태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었다면 앞으로 좋은 일들, 성취할 일들이 있다는 것이고 조급하거나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면 조금 비관적인 일이 일어날 것을, 혹은 현재 마음이 비관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처음 꿈에서는 계속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고 두 번째 꿈에서도 무서움을 안고 내려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내 마음은 먹구름 상태인 것이다. 이미 마음이 흐려져서 앞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다가 안 건데, 두 번째 꿈에서 내가 내려갈 때 도망치듯 내려가는 모습은 첫 번째 꿈에 나왔던 어린 소년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내 마음은 현재 어린 소년 같아 보인다.     

 


그리고 두 꿈에서 모두 해괴망측한 인물들이 나왔다. 그것은 나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는 존재들이었다.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이것은 내 마음에는 현재 불안과 공포가 엄습했고 나는 그것과 싸워 이기기보다는 회피하는 방향으로 향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맞닥뜨린 현실의 문제이고 회피하고 싶은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원래 나는 회피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최근에 어떤 대상으로부터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었던 것이 불안을 가져왔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불안의 대상은 결코 나에게 해코지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50m 정도 멀리 있거나 스쳐 지나가거나 앞에 서성거리는 정도.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거나 꽉 붙지는 않았다. 때문에 내 몸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불안은 내가 감당할 만큼의 크기라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요즘은 불안에 대한 책들도 참 많은 것 같다. 책 내용을 보면 원래 불안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인데 현대인들은 불안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쓰여있다. 공감되는 말이. 너무 쫓아내고 해소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처럼 내 품에 안고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책  소개를 보면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불안 가운데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불안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고 한다. 사랑 결핍과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등 다섯 가지의 원인 모두관심이 간다.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는데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한다. 너무 공감되는 말이다.           

밀리의 서재 / 오늘밤에 한 번 읽어봐야겠다.




마음에 짐이 되는 것들은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사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도 마음의 짐이므로 이것조차 내려놓고 싶다. 요즘은 책을 많이 읽는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지혜도 얻게 된다. 생각 쪼개진다. 단단했던 생각이 쪼개져서 조금씩 가벼워짐을 느낀다. 가끔씩 쪼개진 생각이 마구 튕겨나가서 벽에 부딪히고 도로 튕겨 나오곤 한다. 내 생각이었는데 깨뜨려지는 그 순간 분열이 오는 모양이다. 그래도 헐거워지니 좋다.



튕겨나간 생각 자체는 아프지 않아 다행스럽지만 나의 정신은 조금 아프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을 깨뜨리는 과정에서는 조금 참아야 할 아픔인 것 같다. 생각이 너무 많이 쪼개지고 부서져서 잡을 수 없는 모래알처럼 되길 원하지는 않지만 일단 올해에는 생각을 많이 쪼개볼 요량이다. 그러다 보면 무거운 감정의 추도 조금씩 가벼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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