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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Feb 26. 2023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뼈 때리는 문장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이 책 제목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브런치에서인지 유튜브에선지 유퀴즈에선지 어딘지는 기억이 정확히 안 나지만, 다만 명징하게 남아있는 것은 이 제목을 본(혹은 들은) 순간 내 뼈가 쇠꼬챙이에 맞는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뼛속까지 후벼 팔 정도로 글을 쓰라니!!

이 작가 쏘 원더풀 한 거 아니야?

문장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늘어졌던 내 뼈가 쇠꼬챙이에 맞는 순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반동하여 튕겨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내 마음에 꽂혀 버린 이상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해!! 일단은 탐독을 하기 위해 도서관 소장 자료로 검색을 하고 다른 사람이 먼저 찜하기 전에 후다닥 도서관으로 갔다. 이 책 바로 옆에는 같은 작가의 다른 책 《구원으로서의 글쓰기》도 있었다. 이 책 제목도 좋았다. 이밖에 다른 책 2권도 빌려서 총 4권의 책 가운데 3권과 집에서 읽던 다른 책 1권, 도합 4권을 병행해서 읽었다. 그러나 매일 읽지는 않았고 띄엄띄엄 읽었을 뿐이다.


내가 이렇게 병행 독서를 하다 보니 새로운 습관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책을 가장 나중에 읽는다는 것!! 의도한 것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아끼게 된다. 야금야금 읽다가 기억이 다 사라져 버릴까 봐, 다른 책들에게 밀려나 그 흔적조차 없어지게 될까 봐 내심 조바심을 쳤던 것인가? 그런 것 같다. 내 믿지 못할 기억력 탓에 아끼고 아끼며 이 책을 후순위로 내몰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이 책은 빌린 책 중 꼴찌로 읽혔고, 가슴속에 회오리를 일으켰으며, 내 간헐적인 글쓰기에 불을 당겨 주었다. 잊지 못할 제목,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이 책은

내가 작가라고 스스로 이름 부를 수 없음에 허탈해하는 것,

매일 아니면 자주 글을 쓰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아직까지는 쓰레기 같은 문장들만 토해내는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

게으르고 불안정하여 내면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글 쓸 공간이 마땅치 않다며 애먼 공간 탓만 하고 있는 것,

밖에서 들리는 것만 같은 비평의 목소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

장편을 써보고 싶은데 경험이 없다고 스스로 난처해하는 것 등등


대한 나의 불편한 심기를 마땅히 위로해 주고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가라고 등 떠밀어 주었다. 고맙고도 섬세한 나탈리였다.


그래서 내가 감명을 받았던 위대하고 섬세한 문장들을 여기에 기록한다. 하나하나에 감상과 생각을 쓰고도 싶지만 독자들에게도 회오리 치는 기쁨을 안겨 주고 싶기에 지금은 인용만 한다.



p.44  예술적 안정성을 얻는 과정


당신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오 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세월 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싸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 이상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무엇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이런 인식이 생긴 뒤에는 아름다움과 다정한 배려, 명료한 진실을 선택할 수 있는 튼튼한 갑옷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두려움을 등에 진 채 무작정 아름다움을 좇아 거칠게 달려가지 않게 된다.



p.66~67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글을 쓰는 데에 자신의 재능이나 잠재력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재능과 실력은 훈련을 거쳐 가면서 커지는 법이다. 카타기리 선사가 말했다.

“우리의 잠재력은 지구 표면 밑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지하수면과 같습니다.”

누구라도 이 지하수면에 가 닿을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글쓰기 훈련을 계속하라. 그런 다음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아가라.

만약 장편을 쓰고 싶다면 장편을 써라. 쓰고 싶은 글이 에세이이거나 단편이라면, 그렇게 쓰면 된다. 장르에 상관없이 원하는 글을 써 보는 과정에서 그 장르가 갖는 특성을 배우게 된다. 당신은 점점 자신만의 기술과 기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p.86~87  세부 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인생이란 너무도 다양해서 만약 당신이 사물의 과거와 현재의 진정한 모습을 세세하게 써 내려갈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당신이 설령 전혀 다른 시간대와 공간에 살고 있어도, 십 년 전 혹은 이십 년 전 뉴욕의 한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얼마든지 묘사할 수 있다. 뒤틀려 있는 창문,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회전 입간판, 탁자 위에는 포테이토칩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고 등받이 없는 높고 붉은 의자....... 이런 묘사는 당신이 쓰는 이야기에 개연성과 사실성을 부여한다.

당신은 상상력의 힘을 빌려 이것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변경된 상황에다 당신이 실제로 알고 있거나 보았던 것을 세밀하게 묘사해서 이식한다면, 그 글에 뛰어난 생동감이 생기며 개연성과 진실성이 배어나게 된다.



p.111~112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작가인 우리는 늘 의지할 것을 찾아다닌다. 동료들에게, 비평가에게 인정받아야만 안심하려 든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이나 작품에 대해 보내는 타인의 칭찬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 그 작가는 다른 이들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보다는 우리의 근원적인 원조자에 대해 아는 편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미 매 순간 무엇엔가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서 있는 대지, 폐를 채우고 비우는 공기...... 이 모두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질 때 그 대상을 멀리서 찾지 말라. 바로 지금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아침의 침묵, 이런 것들에서부터 시작하라. 그런 다음 마주 보고 있는 친구가 “난 네 작품이 너무 사랑스러워!”라고 말하면 그 좋은 기분을 그저 간직하면 된다. 대지와 의자가 당신의 몸을 쓰러지지 않게 받쳐 준다는 사실을 믿는 것처럼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어라.



p.215~216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


우리는 스스로를 영원불멸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이런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그 시간조차 알지 못한다.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자연사하기를 바라지만 당장 몇 분 후에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우리의 숙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숙명에 대한 깊은 고찰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생동하게 만들고, 현실에 충실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글쓰기에서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삐를 세게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당신은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라고 나탈리 골드버그는 말했다.


쓰는 행위로 자기 자신과 소통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해 나가며 가끔씩은 자존감까지 획득하는 우리에게 글쓰기에 대한 부담은 언제나 존재한다. 더 잘 쓰고 싶고 완벽하게 쓰고 싶고 거침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세계는 고속도로에서 붐비는 자동차들만큼이나 고도로 산만하고 번잡하다. 복잡한 생각들이 마구 뒤섞이고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그렇다면 그 고속도로가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라면 어떨까? 물론 막히는 구간도 있고 뚫리는 구간도 있겠지만 외곽 순환 도로라면 끊임없이 돌고 돌면서 언제까지나 주행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쉬고 싶을 때는 졸음 쉼터에서 쉬기도 하고 가끔씩은 인터체인지로 빠져나가 어느 도시에서 잠시 쾌락을 즐기다가 도로 올라타 된다.

어떤가? 이제 좀 부담이 덜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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