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때리는 문장들
내가 작가라고 스스로 이름 부를 수 없음에 허탈해하는 것,
매일 아니면 자주 글을 쓰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아직까지는 쓰레기 같은 문장들만 토해내는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
게으르고 불안정하여 내면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글 쓸 공간이 마땅치 않다며 애먼 공간 탓만 하고 있는 것,
밖에서 들리는 것만 같은 비평의 목소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
장편을 써보고 싶은데 경험이 없다고 스스로 난처해하는 것 등등
당신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오 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세월 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싸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 이상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무엇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이런 인식이 생긴 뒤에는 아름다움과 다정한 배려, 명료한 진실을 선택할 수 있는 튼튼한 갑옷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두려움을 등에 진 채 무작정 아름다움을 좇아 거칠게 달려가지 않게 된다.
글을 쓰는 데에 자신의 재능이나 잠재력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재능과 실력은 훈련을 거쳐 가면서 커지는 법이다. 카타기리 선사가 말했다.
“우리의 잠재력은 지구 표면 밑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지하수면과 같습니다.”
누구라도 이 지하수면에 가 닿을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글쓰기 훈련을 계속하라. 그런 다음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아가라.
만약 장편을 쓰고 싶다면 장편을 써라. 쓰고 싶은 글이 에세이이거나 단편이라면, 그렇게 쓰면 된다. 장르에 상관없이 원하는 글을 써 보는 과정에서 그 장르가 갖는 특성을 배우게 된다. 당신은 점점 자신만의 기술과 기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인생이란 너무도 다양해서 만약 당신이 사물의 과거와 현재의 진정한 모습을 세세하게 써 내려갈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당신이 설령 전혀 다른 시간대와 공간에 살고 있어도, 십 년 전 혹은 이십 년 전 뉴욕의 한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얼마든지 묘사할 수 있다. 뒤틀려 있는 창문,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회전 입간판, 탁자 위에는 포테이토칩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고 등받이 없는 높고 붉은 의자....... 이런 묘사는 당신이 쓰는 이야기에 개연성과 사실성을 부여한다.
당신은 상상력의 힘을 빌려 이것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변경된 상황에다 당신이 실제로 알고 있거나 보았던 것을 세밀하게 묘사해서 이식한다면, 그 글에 뛰어난 생동감이 생기며 개연성과 진실성이 배어나게 된다.
작가인 우리는 늘 의지할 것을 찾아다닌다. 동료들에게, 비평가에게 인정받아야만 안심하려 든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이나 작품에 대해 보내는 타인의 칭찬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 그 작가는 다른 이들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보다는 우리의 근원적인 원조자에 대해 아는 편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미 매 순간 무엇엔가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서 있는 대지, 폐를 채우고 비우는 공기...... 이 모두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질 때 그 대상을 멀리서 찾지 말라. 바로 지금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아침의 침묵, 이런 것들에서부터 시작하라. 그런 다음 마주 보고 있는 친구가 “난 네 작품이 너무 사랑스러워!”라고 말하면 그 좋은 기분을 그저 간직하면 된다. 대지와 의자가 당신의 몸을 쓰러지지 않게 받쳐 준다는 사실을 믿는 것처럼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어라.
우리는 스스로를 영원불멸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이런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그 시간조차 알지 못한다.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자연사하기를 바라지만 당장 몇 분 후에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우리의 숙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숙명에 대한 깊은 고찰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생동하게 만들고, 현실에 충실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글쓰기에서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삐를 세게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당신은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