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근에 몰아 읽었던 <불편한 편의점>이나 <튜브>, 그리고 <빅 픽처>의 주인공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한 권을 읽고 다른 한 권을 읽고 또 다른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아릿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작가가 쓴 소설이지만 하나같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나도 한 살 한 살 먹다 보니 어느새 중년이 되었지만 회사나 사업장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느라 나이를 앞으로 먹는지 거꾸로 먹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남성들 또한 얼마나 많을까. 그들의 삶은 지금, 현재 어떠할까.
세 작품의 연결고리 1.
중년의 남자
중년(中年)
1.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2. 사람의 일생에서 중기, 곧 장년 · 중년의 시절을 이르는 말
<빅 픽처>의 주인공 남자는 30대 후반, <튜브> 주인공 남자는 40대 후반, 그리고 <불편한 편의점> 주인공 남자는 50대 초중반 정도 된다. 그들은 모두 중년으로 통한다.
세 작품의 연결고리 2.
중년은 괴롭다
제각각 주인공 남자들은 괴롭다.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괴롭고 싶어서 괴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열심히 살아왔고 번듯한 직업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무엇이 그들을 괴롭게 만들었단 말인가.
<빅 픽처> 30대 후반이 된 벤은 잘 나가는 변호사이지만 본인이 정작 하고 싶었던 사진작가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어린 두 아들 애덤과 조시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지만 경단녀가 된 와이프 베스의 사랑은 식은 지 오래다. 한 가정의 울타리를 지탱하고는 있지만 대화가 단절되고 가족이라는 이름은 허울뿐인 그에게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괴롭다. (이하 줄거리 생략 – 과다 스포 방지)
<튜브> 40대 후반의 김성곤 안드레아. 안드레아는 천주교에서 받은 세례명. 김성곤 안드레아 역시 와이프에게서 버림받는 존재가 된다. 타의였든 자의였든 말이다. 그는 실패한 사업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고 자살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자살도 어디 쉬운 일이가? 자살에도 실패하고 자존감의 바닥을 친 김성곤 안드레아는 궁극의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이게 그의 괴로움이다.
<불편한 편의점> 불혹(不惑)이라 일컫는 40대가 지나고 지천명(知天命)이라는 50이 되면 누구나 하늘의 뜻을 깨닫게 되는가? 과연 그럴까. 물론 그러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 그러나 청파동의 편의점으로 정말 운 좋게 고용되어 들어온 사내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누더기 같은 옷에서는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고 말도 어버버 하는, 그를 마주치는 누구라도 뒷걸음칠 법한 서울역의 노숙자 독고다. 지독하게 외로워서 독고인지, 단순히 성이 독고인지 그 자신도 이름조차 모르는 중년의 남자. 그에게도 삶은 괴로웠다.
과거에는 열심히 살아봤지만 뒤돌아보니 헛헛함만 남는다. 따뜻한 눈도장 한 번 찍어 주는 사람 하나 없고 마음 터놓고 의지할 대상도 하나 없다. 이게 과연 남 일이기만 할까.
나의 감상
물론 이 뒷 내용은 작가님들의 의도에 따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지만, 나는 사건의 발단에 해당하는 이 지점!! 중년 남자들의 외로운 삶에 대해 주목하고 싶었다.
중년 남자들이여~~!! 행복한가? 나는 그대들에게 묻고 싶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어떤 심정으로 살고 있는지. 혹시 대출금리는 언제 떨어질까, 언제 돈 걱정 없는 세상에 살 수 있을까 불안하지는 않은지. 하루종일 소처럼 일하고 토끼 같은 자식들과 여우 같은 (혹은 곰 같은) 와이프 먹여 살린다고 고군분투하지만 존귀한 대접을 받기는커녕 집안에서 어슬렁거리는 소가 되는 기분을 느껴본 것은 아닐는지. 부모에게 효도하겠다는 굴뚝같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와이프 눈치 보느라 부모님 용돈도 제대로 챙겨 드려 본 적 없는 것은 아닌지. 승승장구하는 친구 동료들 어깨에 빡 들어간 근육에 대비되는 초라한 자신의 어깨와 눈치 없이 불뚝 불거져 나와 있는 오겹살 배가 미워 보이지는 않은지. 가족들이 안 끼워 줘서 외톨이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예전에 꿈꿔왔던 자신의 모습으로 지금 살고 있는지. 지금 진짜 행복한지. 그냥 괜히 중년 남자들의 삶이 걱정이 된다. 내 남편만 걱정해도 되는데, 이상스레 남의 남편들도 걱정이 된다.
근데 그렇다? 얼마나 중년 남자들의 삶이 뒤죽박죽 엉켰길래 자기 뜻대로 살아지지 않아서 죽이거나 죽거나를 시도하고 땟국물 쩌는 노숙자가 되는 이런 이야기들을 이렇게 훌륭한 작가님들이 지어냈겠는가? 지금 중년 남성들은 앓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보통인 척 하지만 속으로는 가슴이 울고 있다는 뜻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불행해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눈물이라도 찔끔거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자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자들에 비해 겉으로 따따부따하는 편이니 속상한 것도 여러 사람들한테 재잘거리고 다 큰 자식에게 하소연하기도 할 거란 말이다. 물론 다 큰 자식이라도 하소연을 많이 하거나 지나치게 솔직한 것은 금물이지만. 그러나 남자들은 어디 그런가? 물론 와이프보다 말 많은 남편들도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대다수는 속으로 삭이지 않는가? 은근히 쫄아 있고 눈치만 많이 보지 않는가.
어디까지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성대는 그런 모습에 쯧쯧 혀를 차고 답답해하는 와이프 때문에 더 옹색해지는 그런 기분. 그런 걸 느끼고 괴로워할까 봐 측은하다. 그래서 자신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몸도 위축되고 마음도 작아질까 봐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