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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Mar 06. 2023

F = ma

글쓰기의 힘은 엉덩이의 힘 곱하기 가속도다.

F = ma     

(글쓰기의 힘 = 엉덩이 힘 X 가속도)




걸어서 12분 거리에 있는 시립도서관은 현재 공사 중이다. 지난 12월부터 공사 착공에 들어가서 언제 끝날지는 끝나봐야 안다고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스포츠 중계석에서 익히 들어본 이 말이 생각난다. 좀 빨리 끝났으면 좋겠으면서도 삐까뻔쩍 다른 도서관 못지않게 신식으로, 럭셔리하게, 모던하게, 편안하게, 이 모든 버전을 다 갖춘 인테리어로 천천히 만나고도 싶다. 내가 좋아하는 동그라미 디자인과 컬러풀한 파랑, 연두, 보라로 채색된 구조물들로 가득 찬 곳으로 누가 보면 사서인 것 마냥 매일 출근하고 싶다. 기대 만빵이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옆동네 먼 동네까지 원정을 다니고 있다. 가까운 옆동네는 주차장이 비좁아도 너어무 비좁아 주차할 자리가 열몇 개밖에 안 된다. 도서관 앞 구불거리는 도로에는 주정차 금지를 알리는 팻말이 버젓이 세워져 있는데도 일요일은 관공서가 쉬니까 주차된 자동차가 즐비하다. 예상대로 내 차는 어디 낑겨 놓을 자리가 없었다.     



이미 예상했던 바였기에 차선책도 마련되어 있었다. 얼마 전 글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찾아갔던 카페 파스쿠찌. 예전 살던 동네의 파스쿠찌에 비해 공간이 대략 20배 정도 넓은 이곳, 집 앞에 있는 파스쿠찌도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이쪽이 더 넓은 건 확실하다. 내가 짱박혀 있을 곳은 2층. 지난번에 갔을 때는 저녁 시간대여서 2층엔 한 무리의 손님들과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 한 쌍만이 그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은 대낮이라 자리가 있을까 싶지만 일단은 글쓰기 할 공간을 찾아가기로 했다. 이곳은 앞으로 나의 일상 가운데 집과 분리된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 될 것이다.      



나의 독립된 공간이 될 파스쿠찌를 향해 달렸다. 앗, 여기도 주차할 자리가 없다. 사람들은 주말이면 이렇게 모여 커피를 드링킹 하는구나. 근처만 뱅뱅 돌다가 아예 다른 곳으로 갈까 하다 어설픈 자리에 주차를 했다. 햇볕이 따뜻했고 주위가 고요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의 발소리는 들렸지만 백색소음이다. 어째 시끌시끌할 게 뻔한 파스쿠찌보다 여기, 내 차 안에서 책이 읽고 싶어졌다. 원래는 글을 쓰려고 카페를 찾아온 거였지만 백색소음이 흐르는 내 차에서 책 읽는 게 더 좋았다. 결국 파스쿠찌는 포기했지만 어설픈 그 자리에 흡족했다.      





내가 맨 처음에 생각했던 목표는 큰아들을 위한 책 한 권을 만드는 거였다. 출간이라는 말은 책이나 그림 따위를 인쇄해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니만큼 출간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생각지도 않았다. 내가 나중에 늙어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을 때, 아니 그 정도는 아니어도 아들이 장성해서 함께 살아갈 동반자를 만날 만큼 독립된 성인이 되어 있을 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어엿한 아비로서 살아가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세상을 견디고 버티며, 어떻게 협력하고 타협하며, 어떻게 설득하고 내려놓으며 살아가야 할지 몰라 암담할 때, 엄마가 어떻게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는지, 너란 자식을 어떻게 키우며 어른으로 독립시켰는지 구구절절이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지침서 한 권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가 얼마나 너를 통해 큰 사랑을 배웠는지도 쓰고 싶었다. 큰 테마는 사랑이지만 세부적인 건 지침과 훈계, 격려 따위가 될 터였다.      



까놓고 보면 아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나를 위한 책이었다. 내 마음의 족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힘들게 너를 키웠지만 얼마나 네가 잘 컸느냐, 그러니까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살아라 하는 말과 함께 엄마의 정성과 사랑도 알아달라는 구걸의 마음도 들어갈 것이었다.     



작가가 글을 쓸 때는 독자의 흥미와 요구를 고려해서 써야 맞는 건데 이 책은 아들보다는 내 취향과 내 만족을 타겟으로 했으니 실패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내 기본 의도는 좋지만 아들이 좋아할 리만무한 거였다. 평소에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인생의 쓴맛에 대하여나, 습관이나 노력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는데, 책도 안 좋아하는 아들이 엄마가 자기만을 위해 책 한 권을 만들었다면 과연 좋아할 것인가? 아마 부담스러워 펄쩍 뛸지도 모를 일이다. 그냥 추억과 기억만 담은 글이면 몰라도 지침, 훈계 따위엔 눈길도 안 줄 것이다. 둘째 아들이라면 모를까. 아마 감격해 마지않고 내 깊은 속뜻까지도 간파할 텐데.       



큰아들을 위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내 생각은 돌이켜 보면 아집이었다. 큰아들만 생각하면 걱정이 눈앞을 가렸고 노심초사했고 그 아이가 두려워할 것 같은 일이면 내가 먼저 두려워졌다. 앞으로 성인이 된다 해도 내 걱정은 끝나 있지 않고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가서 훈계하느니 엄마의 진심과 당부를 미리 쓰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얕은 수작을 부렸다. 하지만 걱정도 심하면 집착과 아집이 될 수 있다. 그땐 아집이었던 것 같다. 내가 계속 신경 써 주어야만 한다는 지나친 아집.     



다행히 그런 목표를 잠시 세웠던 시점은 벌써 3년이 지나 있다. 그 3년이라는 시간 안에 아들은 많이 컸다. 키는 좀 덜 컸지만 마음은 예상치 못할 정도로 성숙해졌다. 아직도 공부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자기 앞길은 조금씩 헤쳐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느새 내 걱정과 두려움, 집착과 아집도 지난 2~3년 간 스르르 놓아졌다.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 이후, 큰아들을 위한 책 쓰기 목표는 접었다. 신 글을 쓰면서 책도 써보는 건 새롭게 다져보는 목표다. 물론 제대로 된 글을 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실패를 하더라도 경험은 남을 테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동안 막연했던 생각을 이제는 실행에 옮겨볼 필요가 있겠다.




이번에 읽은 책을 소개한다.

<1인 미디어 집필수업>집필 프로세스 & 메커니즘



초고쓰기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다 적긴 어려워 각각 세 가지만 뽑았.


집필 실전 팁

1) 차별화된 콘셉트 - 자신의 경력과 경험을 베이스로.

2) 새로운 관점 - 자기만의 해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3) 원고 발효 기간 - 7일에서 15일은 숙성시켜야 한다.


집필 과정

1) 비교 분석 - 비슷한 콘셉트의 책을 30권 이상 읽어야 한다.

2) 목차 구성 - 목차를 잘 짜면 집필의 절반이 해결된다.

3) 일정기간 집중 - 1년 이상 걸리지 않도록 한다.


집필 공간

1) 이상적 공간 - 익숙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 세계가 나온다.

2) 프라임 타임 - 꾸준히 정해진 분량을 쓰는 것이 최상이지만 본업이 있다면 주말에 주로 집필한다. 집중되는 시간을 찾는다.

3)동기 부여 - 다른 작가에게서 받는 동기부여는 필수다. 진정성 있는 작가를 만나면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다.




난 아직 방향도 잡지 못한 글쓰기 초보다. 글을 쓰다 보면 얼추 방향이 정해지겠지 하고 막연한 기대를 품고 간간이 글을 쓰고는 있지만 아직 뚜렷한 방향은 른다. 그냥 도전해 볼 뿐이다. 다만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메모한 거에 따르면 난 심리 치유와 자아 계발에 관심이 가장 많다. 50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50대를 위한 마중물'(내 매거진 제목)에 대해서 더 많이 쓰고 싶은 생각도 있다.



집필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말처럼 1년에 한 권의 책이 뚝딱하고 만들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건 너도나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집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내 생애에 1권의 책이라도 남기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고 나누는 삶을 실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에 힘이 주어지도록 노력할 것이고 죽기 전에는 반드시 성취할 것이다.





<1인 미디어 집필 수업>에서 내가 오늘 고른 것을 인용해 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루 루틴은 이미 다른 책에서도 읽었지만 이 책에도 나와 있어 반가운 마음에 싣는다.

매일 2시간씩 쓰기의 일주일 총합은 10시간이다.
토요일, 일요일 5시간씩 쓰기의 일주일 총합은 10시간이다.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집필 시간 배분이다. 하루 일정량으로 미래를 여는 작업이기도 하다. 미래 시간을 산다는 것은 이렇게 현재 시간에 미래적인 요소가 깃든다는 의미다. 현재 시간만을 살아서는 곤란하다. 일찍이 꿈이 정해졌을 경우 인생은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 이중의 시간을 살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 쉬지 않고 집필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든다. 거의 수행에 가까운 일상이다. 그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런 습관을 매일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고 반복한다. 반복 자체가 중요한 것이 되었다. 반복은 일종의 최면으로, 반복 과정에서 나는 최면에 걸린 듯 더 심원한 정신상태에 이른다.”
한 권의 소설을 완성하는 기간 동안 반복되는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한 정신수양을 필요로 한다. 체력도 예술적 감성만큼 필요하다. 엉덩이 힘이 곧 필력이다. 고도로 절제된 생활에서의 응축된 에너지는 가장 중요 순위인 집필에 투자할 수 있게 만든다. 그는 늘 독자를 자신 앞에 놓는다. 삶에서 결코 등한시할 수 없는 것은 독자와의 관계라고 확신한다. (p.123)          

밥 하퍼는 ‘정말 중요한 것은 운동 능력이 아니다. 차별성을 만드는 내면의 인내력과 믿음이 중요하다. 변화하려는 어마어마한 헌신 말이다.’라고 했다. 변화를 하려면 일정 정도 헌신이 필요하다. 가장 쉽게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야말로 책 쓰기다. 엄청난 자기희생이 아니라 즐거운 작업으로 만드는 것도 개인의 지혜에 달렸다.  
그리고 집필할 때는 완성된 책을 상상해 보라. 날것이 편집디자인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놀라울 만큼 멋진 책으로 탈바꿈한다. 텍스트가 디자인과 어우러져 책은 하나의 개념으로 탄생한다. 이러한 형상화의 쾌감은 마력에 가깝다. 그래서 한 권을 쓰게 되면 두 번째 책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 (p.125)          




책 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반복되는 글쓰기 습관과 내면의 인내력, 자기에 대한 믿음이. 가끔 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책 쓰기를 하려면 그어야 할 선과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재의 편안하고 루즈한 생활 패턴 대신 글쓰기 루틴을 만들어야 하고 나와의 경쟁과 갈등에서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 책 쓰기는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내 현재의 브레인과 행동력으로는 제자리걸음만 열심히 줄기차게 할 수밖에 없다.



브런치의 많은 작가님들의 글을 매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겐 행운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브런치와 작가님들 덕분이니까. 방향을 잡을 때까지 고민고민해 볼 것이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와 글쓰기도 즐겁게 이어갈 것이다.  유명한 공식대로는 안 되겠지만

에프는 엠에이다.



한걸음에 산을 넘을 수는 없지만, 한걸음을 떼면 다음 걸음은 걸을 수 있다. 그리고 점점 빠른 속도로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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