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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Apr 01. 2023

마음사전

김소연




� 마음의 언어들은 개인의 고유성을 쌓아가는 과정

� 마음과 관련한 많은 갈래의 단어들이 시인의 감성과 직관으로 그어 놓은 선을 따라 일목요연하게 줄을 선다. 그 가로 세로, 줄과 줄 사이는 감수성과 함축적 언어가 바람처럼 드나든다.



�독서See너지

▶ 밀란쿤데라 <소설의 기술>

▶ 플로베르의 '일물일어'

▶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_잔나비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마지노선을 더 낮게 정해놓고 물이 아래로 흐르듯 한없이 아래를 돌보며 헌신하며 살아가고, 진취적인 사람은 자신의 마지노선을 더 높게 설정해놓고 그것을 훌쩍 뛰어넘어 높은 곳의 열매를 딴다. 마지노선을 한없이 낮추거나 한없이 높이는 사람을 관전하는 일은, 내가 어느 쪽으로도 나의 마지노선을 옮기지 못하는 쩨쩨함과 근근함에 환기를 준다. 그 환기가 크면 클수록 감동적이며 눈물겹다. 한데 우리는 일상의 자잘한 감동을 알아채고 손에 꼭 쥘 줄 안다. 그럴 때의 따뜻함도 눈물겹다. 그때만큼 우리도 대상에 몰입했고 생 앞에 겸허했다. 

마음사전, 김소연 p84-85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만의 사전을 갖고 있다. 같은 단어를 말하더라도 저마다의 관점이나 상황에서 말하고 해석하기에 사전적 의미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때론 서로 다른 말을 하는데도 결국은 같은 내용일 때도 있다. 



마치 주사위 같은 정육면체 '가로와 세로', '밑변과 높이'가 길이는 같아도 보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 달리 불리듯, 마음의 언어들은 그렇게 정확히 헤아리는 것이라기보다 개인의 고유성을 쌓아 나가는 과정이 아닐런지. 그래서 플로베르는 '일물일어'를 주장하며 사물이나 현상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는 단 하나의 용어, 모두의 언어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교집합을 그리도 찾아 나섰던 것일까.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_잔나비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머물다 가셔요 음 내게 긴 여운을 남겨줘요 사랑을 사랑을 해줘요 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새하얀 빛으로 그댈 비춰 줄게요'  


'읽기 쉬운 마음'이라는 표현이 예쁘다. 잔나비의 곡들은 가사가 시의 한 구절 같은 느낌이 있다. 한없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다. 편안하고 따스한. 음색 역시 유니크하다.




밀란 쿤데라는 자기 소설에 대한 사전을 갖고 있다. 자신의 소설이 번역 과정에서 윤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많은 단어들을 뒤쫓다가 자기 소설만의 사전을 쓰게 된 사연이 그의 저서 <소설의 기술>에 나온다. 



마음도 각자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것 역시 저마다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이라 한다면, 끊임없이 잘 오역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하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마음사전, 김소연 p182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라는 의미로 '애정남'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 책 <마음 사전>도 애정남 아니 애정녀와 같다. 마음과 관련한 많은 갈래의 단어들이 시인의 감성과 직관으로 그어 놓은 선을 따라 일목요연하게 줄을 선다. 그 가로 세로, 줄과 줄 사이는 감수성과 함축적 언어가 바람처럼 드나든다. 


<시옷의 세계>로 처음 접한 김소연 시인의 글은 <한 글자 사전>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만남이다. 낱말 속 의미를 시인의 언어로 치환하다 보니 내 마음도 산책하듯 둘러보는 시간이 된 것 같다. 





2018.8.6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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