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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May 08. 2023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ジョゼと虎と魚たち

STORY & MUSIC

 영화 위로 음악은 흐르고... Original Sound Track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OST '츠네오와 조제_Quruli'







연민과 연인. 외형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단어가 있다. 이 두 단어가 그렇다. '연민'은 상대의 불행에서 자신의 우월감을 찾는 감정인 반면, '연인'은 끌림에서 시작해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참다운 관계다. 표면적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연민' 역시 친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연민과 연인 사이에서 사회적 시선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담았다. 매섭게 추운 겨울에도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눈꽃이 피고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계절이라서다. 곧 형체는 녹아 없어지더라도 마음 속에 추억은 남는다.




                     Story & Music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닮은 사랑 이야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ジョゼと虎と魚たち



愛にできることはまだあるかい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


何も持たずに 生まれ堕ちた僕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나 버린 나


永遠の隙間で のたうち回ってる

영원의 틈새에서 몸부림치고 있어


諦めた者と 賢い者だけが

포기한 자와 영리한 자만이


勝者の時代に どこで息を吸う

승자인 시대에 어디서 숨을 쉴까


_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 

(Is There Still Anything That Love Can Do?)_RADWIMPS 날씨의 아이OST





연민은 타인에게 사랑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감정이라고 한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바탕으로 쓴 '감정수업'의 저자이자 철학자인 강신주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을 연민으로 보았다. 



연민(commiseratio)이란 자신과 비슷하다고 우리가 상상하는 타인에게 일어난 해악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_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사랑은 함께 있을 때는 기쁨을, 반대로 떨어져 있을 때는 슬픔을 가져다 주는 감정이다. 이에 반해 연민은 남의 불행을 먹고사는 서글픈 감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불행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에게 연민의 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결과론적 이야기이지만, 결국 연민을 계속 품고 있으려는 사람은 상대방이 계속 불행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 연민은 결코 사랑으로 바뀔 수 없다. 왜 그럴까? 타자의 불행을 감지했을 때 출현하는 감정이기에, 연민의 밑바닥에는 다행히 자기는 그런 불행을 겪지 않았다는 것, 나아가 불행한 타자를 도울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감정수업>, 강신주 p130-131




대등하지 않은 관계로는 역시 자선을 베풀 때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찬사를 받을만한 '자선'이라는 의로운 행동을 하고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이유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자칫 자신의 행동이 우월감에서 일어나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음도 알기 때문이다. 진정 현명하고 의로운 이들이다.




조제(쿠미코)와 츠네오와의 관계가 그렇다. 츠네오의 감정이 연민, 즉 측은지심과 더불어 '내가 너보다 낫다'는 장애인에 대한 우월한 시선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연민인지 사랑인지 모호해진다. 이 영화가 슈테판 츠파이크의 <초조한 마음>과 다른 점이다. 이 소설이 사랑을 가장한 '연민'의 불손한 의도를 꼬집은 작품이라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회적 시선을 벗어나 연민이 아닌 짧지만 사랑의 기쁨을 한껏 뿜어낸 연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그녀에게 그들의 사랑에 대해 말하자, 그녀는 그에게 사랑의 짧음에 대해 말했었다. "일년 후 혹은 두 달 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오직 그녀, 조제만이 시간의 온전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P136




'조제'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 몸이 불편한 쿠미코는 스스로를 '조제'라고 불렀다. 조제가 사랑하는 방식,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에 쿠미코는 공감했고, 자신의 세계에 사랑하는 타인이 들어왔을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조제를 통해 배워온 터였다. 조제는 호랑이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실천한다. 조제는 츠네오를 좋아했다.




조제 :꿈에 나올까봐 무서워

츠네오 : 무서워? 보고 싶다고 했잖아

조제 :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만약 남자가 안 생기면 평생 호랑이는 못 보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근데 이렇게 보게 됐네. 고마워해라 

츠네오 : 에? 내가?




'고마워 해라'의 의미는 사랑을 주는 자의 여유다. 그리고 어쩌면 조제는 츠네오가 사랑이 아닌, 연민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누가봐도 불쌍한 자신을 돕는 츠네오 역시, 남을 돕는 츠네오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조제의 할머니도 애시당초 그와 조제의 관계가 발전하는 것을 염려했다.




할머니 : 총각, 제발 부탁인데, 이 집에 찾아오지마. 저 아이는 말이지 몸이 불편해서 그쪽같은 사람은 감당할 수 없어. 잘 알아 들었지? 잘 가게. 몸 건강하고




사회 복지사를 꿈꾸는 카나에를 통해 츠네오의 행동을 더욱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카나에 : 그쪽을 혼자둘 수 없다면서 옆에 있어 줄 사람은 자기 뿐이라면서 쓰네오가 말하는데 웃기더라. 당연하지.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거든. 솔직히 그쪽이 가진 무기가 부러워.

조제 :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카나에 : 그래

조제 : 그럼 댁도 다리를 자르든가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카나에는 츠네오를 좋아한다. 츠네오도 카나에를 좋아한다. 그러나 조제와 츠네오와의 관계가 발전할수록 카나에는 자신의 순수한 마음에 스스로 상처를 내고만 것이다. 자신이 사회복지사를 꿈꾼 것은 어쩌면 남을 돕고 싶은 가장 순수한 마음의 발현일 것이다. 그러나 카나에는 이내 깨닫게 된다. 이 역시 위선이었음을. 자신도 별 수 없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을 갖고 있는 사람일 뿐임을. 




카나에 : 내가… 그 여자를 때렸어. 참을 수가 없었어. 장애인 주제에 내 애인을 빼앗다니. 그래도 되는 거야? 죽이고 싶을만큼 화가 나서 두 대나 후려쳤는데 그러고 나니까 다 귀찮아졌어. 




츠네오와 마주친 카나에는 내적 갈등과 자괴감으로 사회복지사 공부를 더이상 하지 않고 있었다. 카나에는 솔직했고, 양심의 목소리를 들었고,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다. 




일본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캐릭터들이 너무 착하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인 특유의 남다른 기질 때문일 수도 있다. 친절하고 너그러운 것. 단순히 개개인의 기질이 아니라 일본 문화의 속성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부탁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 그런 츠네오이기에 조제를 돕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만, 그게 사랑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연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연민과 연인 사이에서 이 영화는 줄곧 줄다리기를 한다. 조제는 알고 있었다. 둘 중 어느 감정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줄다리기 게임은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조제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었다. 다만, 안다는 것과 그 상황을 견뎌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조제도 츠네오에게 빠져들수록, 그만큼 이별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쉽지 않았다.  




조제 : 가. 가란다고 진짜 가는 놈이면 빨리 가버리라고! 가 버려.

(조제와 츠네오 OST 흘러나온다) 

거짓말이야. 있어줘. 가지 말고. 여기 있어줘. 언제까지나 (응) 계속 있어줘야해 (응) (있을게)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OST  츠네오와 조제 테마





조제 : 눈 감아봐 (응) 뭐가 보여? 

츠네오 : 그냥 깜깜하기만 해

조제 : 그곳에 내가 옛날에 살던 데야

츠네오 : 어딘데?

조제 :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츠네오 : 그랬구나. 조제는 바다밑에서 살았구나 

조제 :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츠네오 : 외로웠겠다

조제 :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지는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계속 굴러다니게 되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것도 나쁘진 않아




둘은 그 후로도 몇 달은 계속 함께 살았지만, 결국 이별의 순간이 온다.




조제 : 가져. 이별 선물이야 (SM킹이라는 잡지를 준다) 다른 거로 줄까?

스네오 : 아니, 이게 좋아. 고마워




あれは空がまだ青い夏のこと

그것은 하늘이 아직 파랗던 여름의 일

懐かしいと笑えたあの日の恋

그립다며 웃을 수 있던 그날의 사랑

「もう離れないで」と

「이젠 멀어지지 말아줘」라며

泣きそうな目で見つめる君を

울 것 같은 눈으로 바라보던 너를

雲のような優しさでそっとぎゅっと

구름 같은 상냥함으로 살짝, 꽉

抱きしめて離さない

안고서 놓지 않을게

_Marigold sung by Aimyong





스네오 내레이션

생각보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야 여러가지 있었겠지만, 사실 단 하나 뿐이었다. 내가 도망친 거다. 



츠네오의 입장에서 도망은 최선이었느니 모른다. 현실의 벽 앞에서 절망했고, 세상의 시선과 자신의 위선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정선과 대면하면서 이별하지 않는 방법으로 도망을 택했다. 그에 반해 결말을 이미 알고 있던 조제는 담담했고, 당당했다. 충분히 사랑했고,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분명 조제는 츠네오를 통해 다른 세상을 보았다. 생동감있는 세상. 기쁨 가득한 세상.




츠네오 : 알았어 달려. 조제, 다친데 없어? 어디 부딪혔어? 다친데는 없고?

조제 : 저 구름도 집에 가져가고 싶어.




사랑(amor)이란 외부의 원인에 대한 생각을 수반하는 기쁨이다._스피노자, <에티카>



기쁨이란 감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사랑에는 외부 원인이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이라는 감정은 특정한 외부 대상을 전제로 하는 기쁨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볼까. 누군가를 만나 과거보다 더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는 기쁨을 느낄 때, 우리는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감정수업> 강신주 p79




츠네오 : (운다) 미안. 헤어진 뒤 친구가 되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날 일은 다신 없을 것이다.




그랬다.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친구로 남겨두는 것은 사랑이 아니었음에 대한 방증이다. 결국 츠네오도 사랑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OST  전곡 오디오 듣기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소개


"이름이 뭐야?"
"조제."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츠네오는 손님들로부터 할머니가 끌고 다니는 수상한 유모차에 대해 듣게 된다. 어느 날, 소문으로만 듣던 그 유모차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조제라는 이름의 한 여자를 알게 된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보고 싶었어."
강렬했던 첫 만남 이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호랑이, 물고기 그리고 바다를 보고 싶었다던 조제. 그런 그녀의 순수함에 끌린 츠네오의 마음에는 특별한 감정이 피어난다.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뜨거운 감정을 나누는 날들도 잠시, 츠네오와 조제는 이 사랑의 끝을 예감하게 되는데...

출처 다음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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