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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Jun 26. 2023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과 양자역학

Shallow, 손오공, 한강에서

STORY & MUSIC

 그림 위로 음악은 흐르고...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Michael Craig Martin 'Here and Now'와 양자역학

Shallow_Lady Gaga & Bradley Cooper (영화 스타이즈 본 OST)

손오공_세븐틴

한강에서_폴킴 (feat. Big Naughty)






<그림과 음악>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Michael Craig Martin 'Here and Now'와 양자역학

Shallow_Lady Gaga & Bradley Cooper (영화 스타이즈 본 OST)
손오공_세븐틴
한강에서_폴킴 (feat. Big Naughty)

<도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_신형철




Here and Now
My work seeks to emphasize the pleasure, beauty, and importance of ordinary life 
as we experience it here and now.

제 작품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일상생활의 즐거움, 아름다움,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Michael Craig-Martin







'심오함'은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얕은 곳에 있으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신비가 아닐까. 



Shallow_Lady Gaga, Bradley Cooper (from A Star Is Born OST)



예술이 바로 그러해야 한다. 경제적 가치로서 희소성이라거나 손에 잘 닿지 않도록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일상이 예술이 될 수 있게 돕는 것이야 말로 진정 가치있는 예술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전시는 일상밀착형 전시이자 관람자가 예술의 경직된 메시지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즐겁게 이야기하며 놀 수 있도록 깔아놓은 자리였다. 알록달록한 색상 때문에 자칫 가벼운 전시로 생각할 수 있으나 작품 하나하나가 무수한 이야깃거리일 정도로 깊이 있고 무척 흥미로운 전시였다







나는 해석자다. 해석자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명칭 안에 전령사 헤르메스(Hermes)의 이름이 섞여 있는 것은 해석이라는 행위의 본질이 전달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러나 해석자는 이미 완성돼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잉태하고 있는 것을 끌어내면서 전달한다. 그러므로 해석은 일종의 창조다. (...) 정답과 오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더 좋은 해석과 덜 좋은 해석은 있다. 이를 가르는 기준은 다양할 텐데, 나에게 그것은 '생산된 인식의 깊이'다. 해석으로 생산된 인식이 심오할 때 그 해석은 거꾸로 대상 작품을 심오한 것이 되게 한다. 이런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해석이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석은 작품을 다시 쓰는 일이다. 작품을 '까는' 것이 아니라 '낳는' 일이다. 해석은 인식의 산파술이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문학 비평가로 활동하는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나오는 글이다. 그는 스스로를 해석자라 칭하며, 해석은 작품을 다시 쓰는 일이자 인식의 산파술이라고 했다. 나 역시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일 또한 추종과 수용의 입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해석자의 입장이라 생각해 왔다. 문학 작품이 독자의 인식과 경험이 만나 새로운 창조를 하는 과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바로 시너지가 일어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독서See너지'라는 부제를 사용한다. 깊이 들여다 본다는 의미를 추가하며.)



전시를 보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단순 관람자가 아닌 해석자로서 마음껏 향유할 수 있게 잘 짜여진 전시를 보고 오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허나 늘 그렇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품이 세월의 아우라를 갖고 있는 걸작들이라면, 해석을 떠나 경외감에 취하겠지만, 현대 미술 분야라면, 조금 리스크를 갖기 마련이다. '시간 낭비에 헛걸음'이거나 '기꺼이 시간을 내었음에도 발걸음까지 가볍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는 작가의 작품 철학과 기획자의 의도까지 잘 어우러졌을 때 관람객이 느낄 수 있는 직감과 통한다.




그림에 숨겨놓은 상징이나 이야기 따위는 없다.
내 작품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아쇠!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라!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 설명에 따르면 영국의 개념 미술의 선구자이자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통한다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붓칠의 기술보다 작품 속 작가의 의도와 철학을 강조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가라고 한다. #마르셀뒤샹 의 영향을 받은 그는 #데미안허스트, #줄리안오피, #트레이시에민 등 현대미술을 이끌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미술적 방향을 제시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고. 2001년 대영제국훈장 CBE를 받기도 했으며, #가고시안갤러리 전속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일상의 오브제를 전혀 연관성 없이 배치하고 익숙하지 않게 함으로써 상상력을 확장하고 예술적 유희를 즐기는 모습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느껴진다. 낯설게 쪼개고, 겹치고, 색과 크기를 다르게 하고, 다른 방향에서 관찰하는 시선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3차원의 조각 작품을 2차원으로 해석하고 설치한 작품이라든가, 사회적 약속인 언어를 의미가 아닌 이미지 그대로 받아 들이면서 의미 해체 작업을 해놓은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고, 사물의 본래 의미를 지우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는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식의 개념 미술은 참나무에서 시작되었다. 아니 물컵을 갖다 놓고 An Oak Tree (참나무)라고 우겨댄 것에서!



전시장 내 몇몇 촬영 금지 작품들이 있었는데, 참나무 작품 역시 촬영금지여서 구입해온 도록 사진으로 대체했다.  <An OaK Tree, 1973>는 갤러리 벽면에 선반을 부착하고 선반 위에 물잔을 올려놓은 후 참나무라고 부르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이것이 개념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마르셀 뒤샹이 남성 소변기를 두고 '샘 Fontaine'작품이라고 우겼던 것과 같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역시 이러한 뒤샹의 영향을 받았고 데미안 허스트, 줄리안 오피 등으로 이어진다. 



전시에서 이 개념을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로 설명하고 있다.  꽃이라는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 비로소 꽃이 되듯, 작가의 의도에 의해 물컵이 참나무가 된다는 것이다. 매우 철학적인 개념, 이러다가 양자역학(참고로 나는 양자역학을 깊이있게 알지 못한다. 물론 양자역학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진짜로 양자역학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진짜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이하 이야기는 뇌피셜 주의요함)으로까지 갈지도 모르겠지만, 불교로 치면 '공'의 개념으로 치달을 수 있다. 미시적인 세계, 즉 원자로 보면 그 어떤 것도 본질이나 자기 본성의 개념을 갖지 않는다. 상호 의존적일 뿐이다. 그러니 어떤 물질이 존재한다고 치면, 그것은 명명되는 것에 따라 다른 오브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딜레마를  김춘수의 꽃보다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명명(이름 붙이기? 네이밍?)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 있냐 없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는가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의 시선이 아닐까. 



아이들은 동그라미를 하나 그리고 아빠라거나 엄마라거나, 꽃이라거나 자신이 상상하는 그 무엇이든 우겨댄다. 그러나 그건 우기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눈에는 그게 보이는 것이다. 어른의 눈으로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보지 못하듯. 




손오공_세븐틴

 




또하나 흥미로운 섹션은 나의 관심사인 언어(적 유희)이다.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도구로서의 글자라... 이게 뭘까 궁금했는데, 작품의 의도가 재미있었다.






 Soul도 Love도 본연의 뜻과 상관없다. SOUL -> BOWL (모음 발음이 둘다 [ou]), GLOVE에서 G만 떼어내면 LOVE만 남는다. 이 작품들에서 글자들의 본래(본래, 본질이라는 말 자체가 통하지 않는 전시)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림과 글자의 발음, 운율, 유사성에 관해서만 연관성을 갖는 언어적 유희다. 이런 놀이를 나도 즐기는데, 예술계의 거장도 이러고 놀고(?) 계시다니! 딱히 공통점이 없으신 분인데 동질감을 느꼈다. 



한강에서_폴킴 (feat.Big Naughty)





이 작품들들도 재밌다. 알파벳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사실 각각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고, 독자적인 이미지만 존재한다. 거기에 착안한 작품이다. 일정 규칙에 따라 배열해 뜻을 갖는 단어의 알파벳을 따로따로 분리하고 섞고 재배치했다. 여기에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사물들을 겹침으로써 또다른 층위의 이미지와 운율을 형성해낸다. 물론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아....  이런 장난, 취향저격이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작품은 17세기 회화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시녀들>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오마주인데 이건 좀 과한 장난이다 싶었으나, 양자역학까지 끌어오며 이 개념을 인정하기로 했기에 할말이 없어졌다. 물컵이 참나무인거나 별반 다르지 않은 거니까. 







세월을 거슬러 레트로 감성까지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일상의 물건들을 박물관이 아니라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니! 제 멋대로 배치된 크고 작은 물건들이 우리 삶을 채워온 일상의 퍼즐같기도 하다. 하지만 의미 부여는 하지 않기로.  






미디어 아트 작품도 있고, 일부러 사물을 조각내어서 나머지를 관람자가 상상하도록 했다. 어떤 물건인지 모르지는 않지만, 꼭 그 물건으로 완성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다른 형태로 얼마든지 바꾸고,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자! 



최근 코로나 시대를 말해주는 작품들도 있어 신선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 태블릿과 노트북. 지난 팬데믹 2년여를 돌아보게 하는 물건들이다.  ZOOM 화상회의 프로그램 등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급격하게 바뀐 일상의 풍경이 그려진다. 엔데믹인 지금은 다시 오프라인에서 가까운 거리로 회복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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