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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Jul 14. 2023

체스 이야기 (ft. 사라사테)

체스 이야기_슈테판 츠바이크 VS 승부_파트리크 쥐스킨트




체스이야기_슈테판 츠바이크 VS 승부_파트리크 쥐스킨트 

정신분석학과 심리적 게임의 반전과 묘미



�독서See너지

▶ <음악이야기> 파블로 데 사라사테  

지고이네르바이젠 (사라 장, 유진 박 연주)

바스크 카프리치오 Op.24 (양인모 연주)

▶ 영화 <올드보이)






자기 자신을 상대로 게임을 하려는 것이 체스에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뛰어넘으려는 것과 같은 역설을 의미합니다.

<체스 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



체스를 두는 소설 두 편.



<깊이에의 강요>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세 편과 작가의 에세이를 담고 있는데, 그 중 두 번째 단편 '승부'에서 체스를 둔다. 침착하지만 정석대로만 체스를 두는 (체스 구경꾼들이 보기에) 소심한 체스 고수. 그에 반해 왜 그렇게 두는 지 알 수 없지만 태연하고 도도하게, 한 수 한 수가 기적 같아 보이는 젊은 도전자. 진부함과 패기의 대결. 승리인 듯 승리 아닌 승리 같은 이야기.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중편에 가까운) 단편 소설 두 편이다. 그 중 '체스 이야기'에서는 체스 기계로 일컬어지는 체스 달인과 외부와 차단된 완벽한 무無를 경험한 B박사와 체스 대결이 벌어진다. 시합의 반전과 묘미를 넘어, 내적 자아의 분열과 고립, 당시 역사적 상황과 본질적인 매칭(이 다소 복잡하게 전개되는 듯 하지만, 액자구성). 내용 전개와 상황으로 볼 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 보이>가 일부 생각나기도 한다.



두 단편의 차이라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은 독자가 입으로만 수를 두는 체스 구경꾼이 된 것 같고(그래서 재밌다!), 슈테판 츠바이크 소설은 내가 체스 심리전에 끼어 들어서 한 수 한 수 두고 있는 기분이다.(아이고 머리야...).



승부의 결과는 같으면서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또 다르면서도 같게 해석할 수도 있다. 탁월한 두 이야기꾼(두 사람이 각각 독일인과 유대인이라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이 전하는 체스 게임 이야기는 요즘 많이 오르내리는 게임 용어인 '테크트리'와는 다른 접근이다. 정신분석학과 심리적 게임으로 치환되어 있어 스토리텔링으로서 흥미진진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음악 이야기



세계 최고의 대가, 체스의 사라사테

승부, 파트리크 쥐스킨트 p29




<향수>, <콘트라베이스>, <깊이에의 강요>, <좀머씨 이야기>등으로 유명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소설 중 체스 대결을 펼치는 <승부>라는 작품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여기서 언급된 ‘사라사테’가 바로 파가니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인데요.



파블로 데 사라사테 Pablo de Sarasate (1844-1908)는 스페인 출신의 19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입니다. 바이올린 연주의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꾼 극소수의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한 명이라 일컬어지기도 해요.



10세 때 이미 ‘신동’으로 불리며 널리 알려졌던 사라사테는 당시 이사벨 여왕 앞에서 연주하게 되는데 그의 연주를 듣고 크게 감동하여 여왕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지난 37년 간 하루도 빼먹지 않고 14시간씩 연습한 나에게 ‘천재’라니…

파블로 데 사라사테



사라사테의 이 말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에디슨의 말과 오버랩됩니다.(물론 에디슨이 강조한 것이 1%의 영감이었다는 말도 있지만요.)



사라사테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지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 op.20’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연주하기 어려운 곡으로 손꼽히기도 하고, 관능적인 선율로 많은 사랑을 받는 곡입니다. 



사라사테가 남긴 아름다운 바이올린 명곡들의 선율과 함께 합니다. 몇 년 사이 급부상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뿐만 아니라 신동으로 불렸던 사라 장, 유진박의 연주도 함께 들어 봅니다.



전 체스보드와 말들을 내적으로 투사시켰고, 순전히 공식들 덕분에 그때그때의 위치를 조망할 수 있었지요. 마치 훈련받은 음악가가 악보를 그저 보기만 해도 모든 음과 그것들의 화음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체스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




지고이네르바이젠_사라 장 연주


바스크 카프리치오 Op.24_양인모 연주



지고이네르바이젠_유진 박 연주

 







체스 이야기_슈테판 츠바이크 발췌


우리는 모두 숨죽이고 있었다. 미지의 이 남자가 거의 절반은 진 거나 다름없는 세계 챔피언과의 시합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 것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피상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은, 체스란 우연과는 동떨어진 순전한 두뇌싸움인지라 자기 자신과 맞서서 게임을 한다는 건 부조리하다는 거죠. 체스의 매력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상이한 두뇌에서 전략이 나온다는 데 있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두뇌 싸움에서는 검은 말이 그때그때 흰 말의 술수를 알 수 없고 항상 추측할 뿐이며 그걸 막으려고 하지요. (...) 그런데 검은 말과 흰 말이 동일한 사람이라면 모순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하나의 두뇌가 뭔가를 알아야 하는 동시에 또 몰라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 챔피언 시합을 모아둔 체스 교습서였던 겁니다.(...) 체스는 파트너 없이는 둘 수 없고, 게다가 말과 보드가 없으면 아예 불가능하지요. 저는 마지못해 책장을 죽 넘겨보았습니다. (...) 이로써 순전히 도표로만 보이던 것이 아무튼 하나의 언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 체스보드와 말들을 내적으로 투사시켰고, 순전히 공식들 덕분에 그때그때의 위치를 조망할 수 있었지요. 마치 훈련받은 음악가가 악보를 그저 보기만 해도 모든 음과 그것들의 화음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뇌에 노련함과 긴장감을 더해주지요. 처음에는 단순히 거장들의 경기를 기계적으로 따라하기만 했는데, 차차 예술적으로 이해하면서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섬세한 기술들, 공격과 방어시의 전략들을 이해했지요. 미리 생각하기, 연결시키기, 받아치기의 기술도 간파했고, 챔피언들의 개별적 특성도 금세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같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어쩌면 은연 중에, 대체 어떤 신비한 원천에서 저 혼자 끄떡없는 저항의 힘을 길어내고 있는가 자문했을지도 모릅니다.

피상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은, 체스란 우연과는 동떨어진 순전한 두뇌싸움인지라 자기 자신과 맞서서 게임을 한다는 건 부조리하다는 거죠. 체스의 매력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상이한 두뇌에서 전략이 나온다는 데 있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두뇌싸움에서는 검은 말이 그때그때 흰 말의 술수를 알 수 없고 항상 추측할 뿐이며 그걸 막으려고 하지요. 반면에 흰 말은 검은 말의 숨은 의도를 앞질러 내다보며 방해하려고 애쓴다는 데 그 매력이 있거든요. 그런데 검은 말과 흰 말이 동일한 사람이라면 모순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하나의 두뇌가 뭔가를 알아야 하는 동시에 또 몰라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게임을 하려는 것이 체스에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뛰어넘으려는 것과 같은 역설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전 이중, 삼중으로 상상을 해야 했던 겁니다. 아니, 저 자신이 검은 말과 흰 말 역할을 하면서 항상 네댓 수 앞질러 생각하려면 여섯 배, 여덟 배, 열두 배쯤 상상을 해야만 했지요. 

저 자신, 저의 이성, 저의 영혼은 오직 관객으로서, 체스를 좀 아는 사람으로서 모든 시합의 반전과 묘미를 즐겼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상대로 체스를 두고자 했던 그 순간부터 저에 대한 도전이 시작됐던 겁니다. 

제가 두었던 그 수백, 수천 번의 시합들이 실제로 규칙에 맞는 것이었는지, 꿈속에서 항상 그랬듯 중간 단계를 뛰어넘는 꿈속의 체스였는지, 열병에 걸린 상태에서 둔 체스는 아니었는지, 지금은 점점 더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체스 챔피언, 그것도 세계 제일이라는 챔피언과 대적할 수 있다는 식의 지나친 기대는 정말 하지 마십시오.

첸토비치는 다시금 무한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리한 휴지기를 가졌다. 강력한 번개가 내리치고 나면 천둥이 언제 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릴 때와 같았다. 첸토비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천천히 숙고했다. 내가 점점 더 확신하게 된 건, 그가 일부러 천천히 한다는 것이었다. 

체스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





승부_파크리크 쥐스킨트 발췌


지금까지 그가 체스 두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창백하고 냉담한 표정으로 말없이 체스판에 앉아 말을 배열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에게서는 강한 힘이 발산되었다. 그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위대한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비범한 인물을 대하고 있다는 거역할 수 없는 확신에 압도되었다. 

진정한 대가는 과감하게 모범적으로 그리고 독창적으로 체스를 둔다.(…)사실 사람들은 퀸이 지금 있는 위치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결정적인 위협은 가하지 않고 자기 진영의 엄호를 받고 있는 말들만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 수의 목적과 심오한 의미가 곧 드러나겠지. 대가에게는 자신만의 계획이 있겠지. 그 점은 확실했다. 사람들은 미동 없는 그의 표정과 자신감 넘치는 침착한 손에서 그것을 인식했다. 

세계 최고의 대가, 체스의 사라사테!

자네들 그것 보았는가? 얼마나 노련한 녀석인가! 그렇다니까! 퀸은 퀸으로 내버려 두고 간단히 이 폰을 G6로 옮긴다니! 물론 그것은 비숍이 위해 G7을 배우기 위한 수라고. 그것만큼은 확실하지. 그 다음 수에서 그는 체크를 부르고, 그 다음에는…

그는 태연하고 도도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창백하고 냉담하고, 그리고 아름다웠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은 촉촉이 젖어들고 심장은 따스해졌다. 원하면서도 자신들은 결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그런 체스를 실제로 그가 두고 있지 않은가. 그가 왜 그렇게 두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장의 체스는 이성적이었다. 차근차근 정석대로 두어, 진을 뺄 정도로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 반대로 흑은 한수 한수 둘 때마다 기적을 일으켰다. 

승부, 파트리크 쥐스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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