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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Sep 05. 2023

체호프 단편선 VS 스토너

어떻게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체호프는 세계 최고의 단편 작가다 _톨스토이

체호프는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를 가장 잘 분석한 작가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시야가 넓어지고 마침내 자유의 놀라운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_버지니아 울프

누구도 체호프처럼 장소와 정경, 인물 간의 대화를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재능을 갖지 못했다_서머싯 몸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삶의 본질과 아이러니를 유머러스하게 녹여낸 안톤 체호프 단편 VS 스토너라는 한 인물을 통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진중하게 써내려간 존 윌리엄스의 장편


타인에게 존경받는 삶이었으나 죽음의 순간 진정 새처럼 자유를 느끼는 주교의 삶 VS 스스로가 원하는대로 묵묵히 살아왔음에 만족하는 인물, 스토너.  어느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한 삶일까 


�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 삶의 목적이 담담한 일상과 만나 묵직한 여운이 되는 지점은 어디인가. 내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동기와 그 위력에 관한 이야기 




독서See너지

▶ 도서 : 체호프 단편선_안톤 체호프 VS 스토너_존 윌리엄스

▶ 영화 <우리들>, <본투비 블루>, 드라마 <나의 아저씨>

▶ 음악 : Rainy Days_V, 불빛을 꺼뜨리지 마 (Time To Shine)_H1--KEY(하이키), 쌤쌤 (SAM SAM)_선우정아, 어른_손디아 (나의 아저씨 OST), Love U Like That_Lauv





그럼 언제 놀아?나 그냥 놀고 싶은데...
영화 '우리들'


삶에 대한 고민, 관계, 감정 따위를 모두 허물어뜨리는 천진난만한 한마디, "그럼 언제 놀아?"


그렇다. 그저 즐겁고 재밌게, 소풍처럼 누리다 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다만 즐겁게 논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무언가를 성취하는 일이고, 누군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며, 누군가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것 등 신념과 가치관이 서로 다를 뿐,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재밌게 살면 된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만 봐도,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균열들이 사람 참 복잡하게 만든다. 아이들의 미묘한 감정과 미세한 관계 속 고민들이 가리키는 저마다의 방향들. 결국은 똑같이 즐겁게 놀고 싶은 것 뿐이었는데 말이다.



'삶의 본질과 아이러니를 유머러스하게' 녹여낸 안톤 체호프. 레전더리한 작가들로부터도 극찬받는 단편작가이자 극작가, 대문호로 손꼽히며, 레이먼드 카버나 헤밍웨이 등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영화 본투비 블루에서 제인도 체호프는 좋았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하도 읽혀서 철학서라면 신물 나지만 체호프는 좋았어요._<본투비 블루> 제인의 대사 중



그의 단편 중 가장 품위있게 느껴지는 단편 <주교>는 삶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는 것과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 같은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소박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간 자신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즐겁게 들판을 뛰어가고 있고 머리 위로는 햇빛 가득한 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는 광경을 눈에 그리고 있었다. 그는 이제 새처럼 자유로우며 어디든 마음 내키는 대로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체호프 단편선> 주교 중에서 발췌



존경받는 주교로서의 삶이란 무척이나 의미있긴 하지만, 그 역시 인간으로서 고뇌하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한낱 인간이었다. 그가 죽고 나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모든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돌아가고 있을 뿐. 다소 허무한 듯 하지만, 그런 허무가 실존, 현존의 의미를 가장 잘 일깨워 주는 듯 하다.



평화롭고 소중했던,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 이제는 영영 흘러가 버려서 돌이킬 수 없는 그 시절은 어째서 실제보다 더 밝고 태평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걸까?

그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에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었다. 그것은 스스로 의도한 것도 아닐 뿐더러 조용하고 겸손한 자신의 성품과도 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모두 흥겹고 태평했다는 얘기다. 바로 지난해에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틀림없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체호프 단편선> 주교 중에서 발췌



Rainy Days_V


안톤 체호프 단편 속 표트르 주교 예하와 대비되는 인물로는 <스토너>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예하는 그가 죽고 나자 바로 대체되었고, 결국 잊혀지고 만다. 자기 자신으로는 결코 살아 보질 못한 채.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인간적인 스스로를 그리워하면서. 



반면 스토너는 대단하지 않은 평범한 삶이었지만, 죽음의 순간 스스로가 원하는대로 묵묵히 살아왔음에 만족하는 인물이다.  타인에게 존경받는 삶이었으나 죽음의 순간 진정 새처럼 자유를 느끼는 주교의 삶어느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한 삶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존경받으면서도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삶이 가능한가, 아니면 존경받거나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나답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인가. 내게 여전히 물음표이긴 하지만,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 삶에서 추구하는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 각자 판단할 일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담담한 일상에 대한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스토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지를 때로 잊고 사는 우리를 깨우치게 한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 이 점을 명심하게."

<스토너> 존 윌리엄스



과거의 기록이 역사라고 하지만, 개인의 삶 자체는 역사적 기록으로써 가치를 갖지는 않는다. 역사 속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큰 인류의 범주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며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역사라 부르고 재평가를 거듭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평범한 개인의 삶이 폄하되어서도 안된다. 'his story'가 바로 'history'아닌가. 결국 개인의 삶과 가치관들이 모여 그 시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기록된 삶도 있겠지만, 기록되지 못한 삶도 있기 마련인데, 우린 기록되지 않은 것을 '평범'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그 삶이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각자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결국 그들 개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불빛을 꺼뜨리지 마 (Time To Shine)_H1--KEY(하이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하지만 느닷없이 깨닫게 될 줄은 몰랐다. 몸은 강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 항상 계속 살아가려고 하지.

<스토너> 존 윌리엄스



스토너의 이야기는 표면적으로 보면 자기 계발적 측면에서는 매우 상충되고 별 볼일 없는 캐릭터로 설정된 듯 보인다. 이는 그의 삶이 세상의 기준에서는 실패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던져주는 작가의 미끼에 불과하다. 그는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았고, 내적 동기에 따라 살아온 인물이다. 결코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살아가는대로 살아지는 사람과는 다른 삶이었다. 이에 반해, 체호프가 표현한 주교 예하는 내적 동기와 달리 외적 동기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삶을 사는 사람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미세한 차이는 결국 같은 이야기인 셈이다. 내 안의 목소리를 따르라는 것!



고든 핀치와 윌리엄 스토너 사이의 우정은 그런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때 도달하는 단계, 즉 편안하고 깊으며, 남들은 끼어들 수 없을 만큼 친밀해서 거의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영화 <우리들>에서 복잡 미묘했던 아이들의 심리 저변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깔려있다. 온갖 감정들에 휩쓸리기 쉬운 아이들의 세계에서 '단지 서로 잘 놀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관계의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예상 못한 변수들 말이다. 왜 아픈지, 서로를 왜 상처내는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성장해 가는 아이들. 이는 어른이라고 별 수 있나. 이유를 알지 못해 답답해 하다가 한 발짝 물러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한 뒤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태반이다. 영악함과 선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리 해석되곤 하는데, 사실 정말 좋은 관계, 건강한 사이에는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  이미 신뢰라는 두터운 보호막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감정 자체가 생성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감정 자체는 생겨나고 표현되지만, 외부 요인이나 부정적인 감정 등에는 영향받지 않는, 든든한 관계를 의미한다.)



쌤쌤 (SAM SAM)_선우정아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라는 말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의 대사와 비슷하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나의 아저씨, 박동훈 (이선균 역)



어른_손디아 (나의 아저씨 OST)



결국 내 안의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게 속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만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게 체질인 사람이 있다. 사람의 성향 중에 '의존성'과 '독립성'이 있는데, 소외되기를 불안해 하는 '의존성'은 사회성의 형태로 나타나고, 인싸 대신 아싸를 자처하기도 하는 독립성은 개인의 매력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성향들이 결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면을 들여다 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둘 다 동시에 발현할 수 없지만, 두 가지 성향의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유연하면서 강한 사람이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나의 아저씨, 박동훈(이선균 역)



내력, 내면의 목소리, 내 안의 힘. 그것은 자연스럽게 터져나온다. 애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거스르려는 힘이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내 마음이 이끄는대로 가기도 하고, 때론 본능과 본능을 거스르려는 의지가 끊임없이 팽팽하게 맞서기도 한다. 본능이 능사가 아니고, 의지가 최선은 아니므로 스스로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긴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 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스토너> 존 윌리엄스



Love U Like That_Lauv



체호프의 단편은 철학적으로는 실존주의에 가깝다. 걷잡을 수 없는 무의미함이 비통함으로 번져가기도 하지만, 허무와 허구를 뒤섞어 행동 없는 거대 담론과 실천없는 지식인의 도덕성을 꼬집고, 현존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한다.  <관리의 죽음>은 한편의 허무시리즈 콩트와 같고, <공포>에서는 삶에 대한 철학적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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