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
환상적인 소설을 통해서 나는
현실의 표정, 에너지, 곧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에
활기를 주고 싶었다.
이탈로 칼비노
� 불완전하지만 조금은 착하고 조금은 사악한 온전한 인간
� '마르크스 식'의 소외된 인간과 '프로이트 식'의 억압받는 인간으로서의 반쪼가리 자작
� 우리들의 선조 3부작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
� 독서See너지
▶ 도서 :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전래동화 <반쪽이>
▶ 음악 : Toxic_닝닝 of aespa (원곡 브리트니 스피어스), Toxic_BoyWithUke, Good & Great_KEY
재치있고 기발하다. ‘나무 위의 남작’이 그랬고, ‘반쪼가리 자작’이 그렇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는 품위있는 상상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던 작가. 무궁무진한 이탈로 칼비노 작품 세계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Toxic_닝닝 of aespa (원곡 브리트니 스피어스)
악한 반쪽보다 착한 반쪽이 더 나빠.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p109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반쪽이> 가 있다면 이탈로 칼비노에겐 <반쪼가리 자작>이 있다. 외모는 반쪽이지만 힘도 세고 지혜롭기까지 한 우리나라 반쪽이와는 달리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은 그야말로 선과 악으로 분리된 극단적 두 자아가 형상화된 반쪼가리. 그리고 그 메시지는 정확히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의 통찰과 맞아 떨어진다.
나는 이웃들이 선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이 실은 악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터키와의 전쟁에 나가 포탄을 맞고 반쪽으로 두 동강 나버린 메다르도 자작. 마치 후라이드와 양념으로 나뉜 반반치킨처럼 신기하게도 사악한 반쪽이 먼저 살아 돌아오고, 나머지 선한 반쪽이 돌아온다. 두 반쪽의 극단적인 행동과 마을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마지막 결투까지. 반쪼가리 자작의 어린 외조카 ‘나’의 시선으로 담았다. 마치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였던 닉 캐러웨이처럼.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p119
이탈로 칼비노는 반쪼가리 자작을 현대인에 빗대어 마르크스식으로 말하면 '소외된 인간'이고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억압받는 인간'이라고 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자작이 전쟁이라는 원치 않는 상황 속에서 두동강 나버리자 온갖 악행을 일삼는 악한 반쪽과 지나친 선행을 베풀어 오히려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선한 반쪽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선한 것은 좋은 것이지만, 이 또한 과유불급인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심리적으로 착한 콤플렉스는 자신도 주위 사람도 위태롭게 만들기도 한다. 뭐든 적당한 균형과 판단이 필요하다. 그게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지나치게 악하거나 지나치게 선한 것이 아닌, 고통과 외로움 속에 처한 인간의 반쪽들이 적당히 뒤섞여 온전한 모습이 될 때 자신과 나아가 마을, 그리고 공동체까지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음을 이탈로 칼비노는 말하고 있다. 아들러 심리학과 일부 맥락을 같이 한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에는 벤이 등장한다. 이는 행복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태어난 '다섯번째 조각'으로 '벤' 역시 소외된 인간이자 억압받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벤이 스스로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들 행복의 규격에 맞지 않은 퍼즐이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의 미스테리함과 더불어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본연의 질문을 던진다.
120쪽 분량의 매우 짧은 소설이지만, 등장 인물 하나 하나 비유가 기막히며 현대인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매우 강력한 소설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냉혹한 현대 사회의 자화상을 현대 환상 문학의 형식으로 표현했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더불어 세계 3대 거장으로 불린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
발췌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난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싶을 거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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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조금은 착하고 조금은 사악하다는 거지요. 이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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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파멜라. 이건 반쪽짜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들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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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적절한 사람이라면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되고, 부당한 사람이라면 두려움을 가지고 기다리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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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 포탄이 그를 두 쪼가리로 만든 게 천만 다행이지 뭐야. 자작이 만약 세 조각이 났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겪었을지 알 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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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테랄바에서의 나날들이 흘러갔다. 그리고 우리들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져 버렸다.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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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2018. 3. 28 기록 / 2023. 9. 21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