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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Oct 14. 2023

열한 계단

자신만의 계단에서 물어야할 근원적인 질문들



세상을 보고 즐기고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리고 그러한 길고 긴 여행 중에서 
우리는 운명처럼 성장할 것이다. 
<열한 계단> 채사장 



문학, 종교, 철학, 과학 등의 학문적 지식의 계단을 그려넣고, 이상과 현실, 삶과 죽음 그리고 나의 '의식'과 경계를 넘어서는 '초월'이라는 주제로 신념과 가치관, 세계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기존의 세계를 극복하고 성장할 것이다. 계단 앞에 서자. 새로운 세계를 모험할 시간이다.

사람에게는 각자 존재 이유가 있다. 그것의 근원이 바로 마음이고 의식이며 자신만의 계단을 올라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여행하는 것.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이다.






� 독서See너지

▶ 그림 : <상대성> 에셔 

▶ 음악 : Stairway To Heaven_Led Zeppelin, 계단(Stairs)_이진아, 보고 싶다_김범수 (천국의 계단 OST)




의문문과 질문은 다르다. 마침표를 찍어도 될 것을 단순히 물음표가 들어간 문장을 구사한다고 해서 그것이 질문이 되지는 않는다. 질문이란 문장형식이 아니라 궁극적인 어떤 것을 알고자 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질문의 자세로 써내려간 듯 <열한 계단은> 작가 자신의 경험이라는 밑그림 위에 문학, 종교, 철학, 과학 등의 학문적 지식의 계단을 그려넣고, 이상과 현실, 삶과 죽음 그리고 나의 '의식'과 경계를 넘어서는 '초월'이라는 주제로 신념과 가치관, 세계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Stairway To Heaven_LED ZEPPELIN



어느덧 열한 계단을 다 딛고 올라서고 보니 문득 떠오른 그림은 에셔의 '상대성'.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는 뫼비우스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던 건가?



에셔의 상대성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 보면 채사장의 지식 가게에 도달하겠지 했더니, 어느 순간 계단은 나를 향해 있었고, 도리어 내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열한 번째 계단은 끝이 아니라, 겨우 시작에 불과했음을'이라고...



계단(Stairs)_이진아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현 시대가 구획지어 놓은 과학과 학문이라는 영역 안에 머물며 거기서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신기한 것들을 만나고 놀라워하며 삶의 의미를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열한 계단> 채사장 p333



사람에게는 각자 존재 이유가 있다. 그것의 근원이 바로 마음이고 의식이며 자신만의 계단을 올라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여행하는 것.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이라는 듯이.






우리가 텍스트를 해독한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이야기를 듣지만, 사실은 다른 영화, 다른 책, 다른 이야기를 봅니다. 그것은 각자가 가진 삶에서의 체험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체험한 만큼의 시야 안에서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갑니다. 

<열한 계단> 채사장



책을 읽고 좋았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내 생각과 너무도 딱 맞아 떨어지거나, 너무도 상충되거나, 정말 재미있거나... 등등



<지대넓얕>으로 워낙 유명한 작가분이어서 처음에는 지식 가게의 지식들을 자랑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어디쯤에선가 멘토스럽기도 했다. 대화 형식의 부분들이 다른 멘토스러운 책들과 닮아 있어 그런 생각이 든다. 다만, 옳다거나 누군가가 그르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 않다. 지식을 기반으로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안다. 인간의 삶의 형태는 보편적 진리라는 이름으로 단순화하기에 너무도 구체적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삶의 다양성과 해석의 주관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열한 계단> 채사장 p135



보고 싶다_김범수 (천국의 계단 OST)




어떤 독서는 한 인간의 지평을 넓히지만, 어떤 독서는 오히려 그를 우물에 가둔다

채사장은 그래서 ‘불편한’ 책을 권한다. 책이란, 많이 읽는 게 다가 아니라서 어떤 독서는 한 인간의 지평을 넓히지만 어떤 독서는 오히려 그를 우물에 가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지식만이 굳어 있는 내면에 균열을 일으켜 나를 한 계단 성장시킬 수 있다. 채사장 작가는 3년 동안 1000권의 책을 읽은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다. 그의 독서가 어디서 시작해 어디를 지나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독서의 방향이 그를 말해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자신을 깨고 나아가는 방향이다.

인문학의 최전선에서 독자와 가장 가깝게 만나온 채사장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책이, 그리고 인문학이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지 몸소 보여준다. 한 인간의 생생한 경험과 질문이 어떻게 엮여서 삶을 바꾸는지 말한다. 누구라도 자기만의 계단을 하나씩 밟아나가면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가고 결국 새로운 자신을, 색다른 인생을 만날 수 있다고 말이다.

질문하라, 불편함은 삶을 밀어 올리는 정반합의 과정이다
문학-기독교-불교-철학-과학-역사-경제-예술-종교-초월》

채사장 작가가 올라온 불편한 계단은 문학, 종교, 철학, 과학, 역사, 경제학뿐 아니라 예술의 영역까지 아우른다. 낯선 지식과 대면할 때 느끼는 불편함이란 자신의 내면에 기존하던 ‘정(正)’이 그와 모순된 ‘반(反)’과 대면할 때 느끼는 ‘위기’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그 위기를 딛고 올라 ‘정’도 아니고 ‘반’도 아닌 새로운 정신으로 성숙하는 것이 바로 ‘합’이며, 그 합은 다음 계단을 위한 ‘정’이 된다. 그리고 그는 지금껏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유형의 新지식인으로 여물어, 다음 계단 앞에 서 있다. 그를 따라 계단을 오르는 동안, 독자는 자기 안의 질문들과 만나며 자신만의 계단 앞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중에서


발췌 

2017. 5. 21 기록


52

이 책의 제목이 '열한 계단'이다. 충분한 시간과 경험이 주어지지 않은 가운데, 자신의 궁극적인 모습으로 한 번에 도약하는 사람은 없다. 


66

하지만 반대로 모든 판단의 기준을 근거와 출처에 두는 사람의 태도도 역시 그다지 지혜로워 보이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세계의 복잡성을 받아들일 만큼 유연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확실한 근거에 집착하는 특성을 보인다. 그들은 특정 주장이 오랜 시간동안 판단 보류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우선은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로 주장의 참과 거짓이 빠르게 판단되길 기대한다. 그러한 태도는 학문 안에서 이론을 정립하는 데 매우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학문의 한계를 넘어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개인에게는 충분한 태도가 아니다.


95

물론 그렇다고 이러한 이상주의자들이 문제적인 존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시기를 거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한 우월감을 갖고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져야 하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세상과 대결해야 할 때 그 힘을 비축하게 하고, 세상에 무릎 꿇게 되었을 때에는 다시 일어서게 하는 자존감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102

왜냐하면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완전함과 충만함이란 아이러니하게도 미숙함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말이다.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할수록 세상은 단순하고 명쾌하게 보인다. 문제는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게 파악할 때에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른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은 세계의 복잡성을 초연하게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세계의 복잡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완전함과 충만함의 허구성을 이해했음을 의미한다. 완전함과 충만함을 내려놓은 사람에게 행복은 없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계단에 머무른지, 아니면 한 걸음 더 오를지. 니체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충고한다.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다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려면, 질문하라."


135

우리가 아무리 토론을 해도 진리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안다. 인간의 삶의 형태는 보편적 진리라는 이름으로 단순화하기에 너무도 구체적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삶의 다양성과 해석의 주관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136

세상은 형이상학적인 무엇인가로 채워져있는 공간이아니라, 처음부터 구체적인 삶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 자명하고 단순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66

당신은 어떤 영혼을 소유했는가? 당신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깊은 지식의 심연인가, 아니면 광활한 지혜의 대지인가? 정답은 없다. 그 무엇을 선택해도 괜찮다. 어떤 길도 당신의 영혼을 성장하게 할 테니까.


우리는 전문가가 되려고 한다. 평생을 거쳐 하나의 분야를 파내려가고자 한다. 당신의 부모도,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당신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왜 누구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지, 왜 평생을 소진하여 하나의 전문 분야를 가져야만 하는지를 말이다.


167

효율성 때문이다. 노동의 주체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한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는 생산량의 극대화 때문이다. 각 분야의 노동자가 자신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반복할 때, 사회의 전체 이익은 증대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명의 개인에게 전문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영혼을 고려해서가 아니다. 효율성과 전체 생산량 증대, 이것 때문이다.


168

전문성의 요구에 저항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노동자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국가와 사회가 규정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규정해나가는 주체적인 존재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185

특히 중력에 대한 설명은 놀라워. 일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뉴턴이 이야기한 것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야. 시공간의 휘어짐이지. 


말 그대로야. 중력은 특정한 힘이 아니라, 시공간의 휘어짐이야.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텅 빈 우주에 홀로 떠 있는 볼링공이라해도 중력을 가져. 중력은 하나의 장(field, 場)으로서 작용해. 그래서 상호작용 해야 하는 또 다른 물체를 필요로 하지 않지. 


시공간의 곡률이 커지면 시간도 크게 휘어져. 즉 시간도 천천히 흘러가게 돼. '공간'의 곡률이 아니라, '시공간'의 곡률이잖아. 


199

한 명의 인간을 안과 밖으로 나눈다면, 혹은 내면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로 나눈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우주와 대면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자신의 안에서, 자신의 내면세계 속에서 우주와 만난다. 


239

이상적인 인간은 대중의 평가, 혹은 사회의 인정과는 무관해. 그런 사람은 각자 자기 세계의 범위 안에서 영웅이 되는 거야.


250

우리는 한 가지에만 집중한 사람들의 한계를 쉽게 본다. 책만 본 사람들과, 현실에 적응하기만 한 사람들의 한계. 우선 책만 본 사람들의 한계는 타인에게 엄격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이 쉽다. 왜냐하면 책의 울타리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실제 세상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까닭에 현실의 폭력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다른 사람들이 나약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 발을 디디면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당황한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부정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된다. 모든 일에서 불평불만거리를 찾아내는 사람, 타인의 잘못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선과 도덕과 정의를 습관적으로 강조하는 사람.


310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이끌려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 노래가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던 이유는 단지 음색과 가사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도저히 삶의 감사함을 말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그녀의 깊은 영혼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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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지금처럼 현실을 묵묵히 걸어가세요. 동시에 언젠가 필요할 때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이상도 함께 품고 가세요. 아무도 당신에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322

이상과 현실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한 사람의 삶 속에서 통합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만들어내는 고통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주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330

도서관이 더 많고 좋아졌으면 한다. 책은 더 많이지고, 자리는 더 쾌적해지고, 밥은 더 저렴해졌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를 앞에 두고 침묵 속에서 내면으로 침잠해가는 그들의 용기를 사회가 보호해주었으면 좋겠다. 도서관이 있다는 건 위안이 된다. 세상과 내가 빠르게 변해가는 동안에도 도서관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익숙한 고요와 책 냄새.


333

자신의 주관적 판단과 사회 공동체의 객관적 판단을 구분해서 다루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주관적 판단을 사회 공동체의 객관적 판단에 종속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 사회가 규정한 정답과 다를까 봐 전전긍긍한다. 내가 궁금한 것은 학문이 지금까지 밝혀낸 정답을 당신이 맞출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섬세하게 숙고함으로써 판단하게 된 스스로의 전망을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현 시대가 구획지어놓은 과학과 학문이라는 영역 안에 머물며 거기서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신기한 것들을 만나고 놀라워하며 삶의 의미를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345

그런데 궁금하다. 도대체 이 빛은 무엇인가? 존재의 근원에서 나오는 빛이라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 빛의 본질은 '나의 마음'이다. (...) 나의 마음이 곧 존재의 근원이다. 본래 텅 비어 있고, 모습도 없고, 색깔도 없는 빛. 이러한 빛이 곧 나의 마음, 나의 '의식'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의식'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나'와 '세계'의 관계를 통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믿는다. 


377

하나의 진리를 두고, 여러 현명한 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을 하도다.


386

우리가 텍스트를 해독한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이야기를 듣지만, 사실은 다른 영화, 다른 책, 다른 이야기를 봅니다. 그것은 각자가 가진 삶에서의 체험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체험한 만큼의 시야 안에서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갑니다. 


388

세상의 모든 텍스트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텍스트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그 지식에 대해 앞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언어화 해줄 뿐입니다. 나의 체험을 벗어난 것들은 나에게 체험되지 않습니다.


<열한 계단> 채사장 




발췌 

2017. 5. 17 기록


충분한 시간과 경험이 주어지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궁극적인 모습으로 한 번에 도약하는 사람은 없다. 인생이란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자신만의 곗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세계의 다양한 영역을 모험하는 가장 괜찮은 방법은 불편한 책을 읽는 것이다. 


이제 정리해 보자, 불펴한 지식을 접하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기존의 세계를 해체하고 한 계단을 더 올라가는 과정은 변증법적 원리의 현실적 적용이다. 


결국 기존의 세계를 극복하고 성장할 것이다. 계단 앞에 서자. 새로운 세계를 모험할 시간이다. 


<열한 계단> 채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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