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슬픔과 저린 기쁨의 문법과 이론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희랍어 시간> 한강
� 장편VS 단편. 한국인 최초 맨부커 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단편 부문 플래너리 오코너상 수상작 앤드루 포터의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실타래를 만들어 문장이라는 스웨터를 짠다. 침묵과 빛과 기억이 남긴 이물질이 그 아름다운 스웨터를 입고 있다.
� 시리고 아름다운 슬픔과 아프고 저린 기쁨이 교차하는 이야기. 비이성적인 영역을 살아 있지 않은 희랍어의 문법으로 설명하는 데도 빛과 물질의 이론으로 정립된다. '아름다운 슬픔과 저린 기쁨의 문법과 이론'
� 독서See너지
▶ 도서 : 희랍어시간 VS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음악
Word_나얼
빛이 나는 너에게_던 (Dawn)
셀 수 없는 (Countless)_샤이니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을 나누면 어떻게 될까. 아름다움에는 기쁨도 슬픔도 동시에 들어 있으니, 배가 되었다가 반이 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 마는 것인가. 소멸해 버릴까, 그것도 아니면 영원으로 초월할 것일까.
이 세계는 덧없고 아름답지요, 라고 그가 말한다.
하지만 이 덧없고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영원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원했던 거지요, 플라톤은.
<희랍어 시간> 한강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실타래를 만들어 문장이라는 스웨터를 짠다. 2017년에 읽은 <희랍어 시간>과 2년 후 2019년에 읽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다시 4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2023년 아름다움에 대한 사색을 동시에 하게 한다.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언어가 영원히 살아 남는 방법이다. 설명할 수 없지만, 침묵과 빛과 기억이 남긴 이물질이 아름다운 스웨터를 입고 있다.
칼레파 타 칼라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고결한 것이다.
세 번역이 모두 그르지 않은 것은, 고대 희랍인들에게 아름다움과 어려움과 고결함이 아직 분절되지 않은 관념이었기 때문이다.
모국어에서 '빛'이 처음부터 밝음과 색채라는 두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희랍어 시간> 한강
"칼레파 타 칼라 Kalepa ta kala"는 "좋은 일은 실현되기 어렵다", '좋은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의 그리스 속담이다.
나 자신에게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를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p108
말을 잃어가는 침묵과 눈을 잃어가는 빛. 언어와 시간과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된다. 그것을 이해할 도리가 없다. 섬세하고 내밀하게 쓰여진 텍스트 사이로 어떤 작용이 있음을 감지해볼 따름이다.
모든 물리학자에게, 자기를 넘어서는 수준의 사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와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p94
어떤 소설은 그 스토리가 주는 강렬함에 넋을 잃는 반면, 어떤 소설은 미세한 감정의 결을 따라 올라온 솜털에도 촉각이 곤두선다. 두 작품이 그렇다. 시리고 아름다운 슬픔과 아프고 저린 기쁨이 교차하는 이야기들은 마치 쓰지 않던 근육의 몸살처럼 고결한 아름다움에 앓고야 만다. 비이성적인 영역을 살아 있지 않은 희랍어로 설명하는 데도 이성적인 영역의 '빛과 물질의 이론'으로 정립된다.
아름다운 사물들은 믿으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은 꿈을 꾸는 상태라고 플라톤은 생각했고, 그걸 누구에게든 논증을 통해 설득해 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세계에선 그렇게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오히려 모든 꿈에서 깨어난 상태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현실 속의 아름다운 사물들을 믿는 대신 아름다움 자체만 - 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아름다움만을 - 믿는 자신이.
<희랍어 시간> 한강
그 여자의 침묵과 그 남자의 빛!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열일곱 살 겨울, 여자는 어떤 원인이나 전조 없이 말을 잃는다. 말을 잃고 살던 그녀의 입을 다시 움직이게 한 건 낯선 외국어였던 한 개의 불어 단어였다. 시간이 흘러, 이혼을 하고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다시 말을 잃어버린 여자는 죽은 언어가 된 희랍어를 선택한다. 그곳에서 만난 희랍어 강사와 여자는 침묵을 사이에 놓고 더듬더듬 대화한다. 한편, 가족을 모두 독일에 두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는 아카데미의 수강생 중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 여자를 주의 깊게 지켜보지만 그녀의 단단한 침묵에 두려움을 느끼는데….
<희랍어 시간> 책 소개 교보문고 제공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어떤 시간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삶을 영원히 변화시켜버린 순간들에 대한 시린 기록
이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과거의 어떤 한 지점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드시 스펙터클한 사건이 아니어도, 어떤 일들은 한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삶에서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 앤드루 포터의 소설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각기 다른 상처들을 어루만져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성장통은 있다. 앤드루 포터는 인물들의 감정을 가까운 곳에서 들여다보며 그들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서늘하지만 마음을 담은 터치로 그려낸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출판사 서평, 출처 네이버
칼레파 타 칼라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고결한 것이다.
세 번역이 모두 그르지 않은 것은, 고대 희랍인들에게 아름다움과 어려움과 고결함이 아직 분절되지 않은 관념이었기 때문이다. 모국어에서 '빛'이 처음부터 밝음과 색채라는 두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이 세계는 덧없고 아름답지요, 라고 그가 말한다. 하지만 이 덧없고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영원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원했던 거지요, 플라톤은.
가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 몸에 눈꺼풀과 입술이 있다는 건.
그것들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잠길 수 있다는 건.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단어들이 보도블록에,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 검은 웅덩이에 떨어진다. 튀어오른다.
검은 빗방울에 싸인 모국어 문자들.
둥글거나 반듯한 획들, 짧게 머무는 점들.
몸을 구부린 쉼표와 물음표.
닫힌 창틀 사이로 빗소리가 파고든다. 거리의 모든 도로를, 건물들을 움푹 파이게 하고 금가게 하려는 듯 세찬 소리다. 누군가 신발을 끌며 층계를 내려가고 있다. 다시 어디선가 뮤이 거칠게 닫힌다.
심장과 심장을 맞댄 채, 여전히 그는 그녀를 모른다. 오래전 아이였을 때,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해도 되는지 알 수 없어 어스름이 내리는 마당을 내다보았던 것을 모른다. 바늘처럼 맨몸을 찌르던 말들의 갑옷을 모른다. 그녀의 눈에 그의 눈이 비쳐 있고, 그 비친 눈에 그녀의 눈이, 그 눈에 다시 그의 눈이... 그렇게 끝없이 비치고 있는 것을 모른다. 그것이 두려워, 이미 핏발이 맺힌 그녀의 입술이 굳게 악물려 있는 것을 모른다.
아름다운 사물들은 믿으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은 꿈을 꾸는 상태라고 플라톤은 생각했고, 그걸 누구에게든 논증을 통해 설득해 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세계에선 그렇게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오히려 모든 꿈에서 깨어난 상태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현실 속의 아름다운 사물들을 믿는 대신 아름다움 자체만 - 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아름다움만을 - 믿는 자신이.
<희랍어 시간> 한강
기사 말미의 문장으로, 이 문장에서 그 비평가는 아버지의 영화를 "젊은 천재의 간과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묘사했다. 이후 세월이 흐른 뒤 깨닫게 된 것인데,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단어들과 그것들에 실린 무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엌 식탁에 홰를 친 새처럼 앉아, 만트라를 암송하다가, 나는 머릿속에서 그 단어들을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내가 그 단어들을 충분히 여러 번 말하면, 그 뉘앙스를 모사하면, 분명 모든 것이 그 단어들처럼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모양이다._코요테 p20
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발견의 기회를 없애버리게 되니까요._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p92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희랍어 시간_한강 VS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_앤드루 포터 리뷰
2017. 1. 8 기록 / 2019. 6. 13 기록 /2019. 7. 5 기록 / 2023. 10.29 기록 / 2023. 10. 30 기록
살바도르 달리와 한강 작가의 <흰>의 공통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