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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아리다 Oct 28. 2023

종이 동물원_켄 리우

데이터가 과거의 축적된 통계라면, SF는 미래를 가장한 현실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의 종이접기는 특별했다. 
엄마가 숨을 불어넣으면 종이는 엄마의 숨을 나누어 받았고, 
엄마의 생명을 얻어서 움직였다. 
그건 엄마의 마법이었다. 

<종이 동물원> 켄 리우


� 판타지가 단순한 공상이 아닌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현실 너머 과거 또는 앞으로의 현실을 그려낸 소설. 기술, 법률, 언어라는 현대 기록물이 조합된 렌즈를 통과해 다채롭게 펼쳐진다.


�네뷸러 상과 휴고 상, 세계환상문학상까지 동시에 수상. 2017년 로커스 최우수 선집상 수상. 휴고 상 수상작 「모노노아와레」수록


�'안전을 위한 빅데이터 제공 VS 사생활 침해'라는 논제. 역사적 사실과 SF 공상의 믹스매치. 데이터가 과거의 축적된 통계라면, SF는 미래를 가장한 현실이다.



� 독서See너지


▶ 도서 :

<뜨거운 양철 위의 지붕 위의 고양이, 유리동물원> 테네시 윌리엄스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탈로 칼비노 

<네 인생의 이야기> 테드창


▶ 음악 : 

호랑이 (Tiger Inside)_슈퍼엠 (SuperM)

사건의 지평선_윤하 

천생연분_솔리드





판타지가 단순한 공상이 아닌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현실 너머 과거 또는 앞으로의 현실을 그려내는 것이어야 한다면, 켄 리우의 소설이 그렇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판타지에서 하드보일드, 대체 역사, 스팀 펑크, 중국 전기(傳奇)소설 등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넘나들면서도 몇 가지 공통된 주제를 보여 주는데, 바로 ‘역사’와 ‘문자’ 그리고 ‘책’이다. 이유는 ‘기호(記號)적  세계관’에 따라 이들 주제와 형식을 자유로이 조합한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켄 리우의 단편들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 껏 발산하는 작품들이다. 해야겠다고 판단한 진실의 증언도 마치 종이 동물에 숨을 불어 넣듯 생동감있게 재현해낸다. 프로그래머와 변호사, 소설가라는 세가지 직업을 모두 가진 작가. 그의 이력만큼이나 그의 이야기는 기술, 법률, 언어라는 현대 기록물이 조합된 렌즈를 통과해 다채롭게 펼쳐진다.



호랑이 (Tiger Inside)_슈퍼엠 (SuperM)



켄 리우의 작품을 읽다 보면, 영화 컨택트의 원작 <네 인생의 이야기>를 쓴 테드 창이 떠오르는데, 책 속 단편 중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을 다큐멘터리 영화 형식으로 쓰겠다고 생각한 것이 테드 창의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다큐멘터리> 읽고서라며, 테드 창을 직접 언급한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유리 동물원 (The Glass Menagerie)과도 연관이 있다. 종이 동물원의 영문 원제가 Zoo 대신 Menagerie를 사용해 ‘the paper menagerie’인 것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 ‘유리동물원’처럼 외유내강의 어머니 상을 표현하고자한 암시라고 한다. 



또한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한다는 ‘고급 지적 동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이나 비슷한 분위기의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등의 단편을 읽고 있으면, 작가의 감각은 탁월함의 차원을 초월하는구나 싶다.



툴톡인이 가장 훌륭한 책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곳은 블랙홀의 가장자리인 '사건의 지평선'이다.

<종이 동물원> 중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단편



사건의 지평선_윤하




우리는 생각하기를 돕는 기계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 기계가 우리를 대신해서 생각을 한다, 이겁니다.

켄리우의 <종이 동물원> 중에서 '천생연분' 단편 



네뷸러 상과 휴고 상, 세계환상문학상까지 동시에 수상하며 미국 sf판타지 문학계를 휩쓸어버린 작가의 경외로운 경이감.


어떤 단편은 중국스럽지만(작가가 중국계미국인),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또 어떤 단편은 지극히 판타지스럽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지지 않는 현실 균형감이 절묘하다. 동아시아의 아픈 역사 이야기를 천연덕스러우면서도 내밀한 상처까지 드러내 피력하는가 하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도려내어 현재로 구현해 놓았다. 




사람은 정보의 흡인력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정보의 흡인력 앞에서 버티지 못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언제나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 하지요. 우리 인간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센틸리언을 성장시킨 원동력도 바로 그겁니다. 

<종이 동물원>,켄리우 중에서 '천생연분' 단편



특히 <천생연분>이라는 단편은 미래를 예견한 프랑켄슈타인만큼이나 섬뜩하고, 영화 <Her>만큼 그럴 듯 하다. 한때 주요 이슈이기도 했던 '안전을 위한 빅데이터 제공 VS 사생활 침해'라는 논제와 다름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미 빅데이터의 '승'인 것 같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온갖 SNS, 휴대폰, 스마트워치 등에 기꺼이 데이터를 제공한다. 그로 인한 편리함과 경제적인 논리에 이미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센틸리언에는 틸리의 제안을 꿰뚫어보고 결점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공지능과 데이터 마이닝(대량으로 축적된 데이터에서 특정한 규칙 및 경향을 파악하는 일_옮긴이)에 공을 들여도 '완벽한 알고리즘'을 손에 넣기란 불가능하거든요. 두 분은 틸리의 결점을 파악했으니 틸리한테 뭐가 부족하고 뭐가 넘치는지 누구보다 잘 찾아낼 겁니다. 이거야말로 천생연분이지요. 두 분은 틸리를 개선해서 더 강력하게 만들 겁니다. 틸리가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 중에서 '천생연분' 단편



천생연분_솔리드






SF는 이미 미래 현실 속에 들어와 있다. 데이터가 과거의 축적된 통계라면, SF는 미래를 가장한 현실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비선형적이라는 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가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누군가의 상상과 생각이 어느 시점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실현되곤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데이터와 미래 시점의 SF는 이토록 우리에게 많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SF 교류 역할을 하고 있는 켄 리우의 대표 단편 선집!

SF에서부터 환상문학, 하드보일드, 대체 역사, 전기 소설에 이르기까지 켄 리우의 작품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집 『종이 동물원』. 총 14편의 중단편 소설로 구성된 이 책은 2017년 로커스 상 최우수 선집상을 수상하였다.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일반 대중이 누구나 실생활에서 생각해 볼 만한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종이 동물원> 책 소개 중에서, 출처 네이버



발췌


<종이 동물원>

칸, 라오후 (자, 호랑이야)


"저자오즈저즈" 엄마가 말했다. 이건 종이접기라는 거야.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의 종이접기는 특별했다. 엄마가 숨을 불어넣으면 종이는 엄마의 숨을 나누어 받았고, 엄마의 생명을 얻어서 움직였다. 그건 엄마의 마법이었다. 


내 부탁을 받고 엄마는 포장지로 염소와 사슴, 물소도 접어 주었다. 거실을 뛰어다니는 종이 동물들을 라오후는 으르렁거리며 쫓아다녔다. 그러다가 붙잡으면 발로 꾹 눌러 댔고, 공기가 빠져서 납작해진 동물들은 접힌 종이로 변했다. 그러먄 나는 다시 숨을 불어넣어서 동물들이 조금 더 뛰어다닐 수 있게 해 주었다.


看看。

看老虎。

这叫折纸。

小老虎

学校好吗?

不好吃?

发烧了。

孩子,妈妈爱你。

您会读中文吗?



<천생연분>

당신이 지금 아는 건 전부 센틸리언의 필터를 거쳤다는 사실을 또 잊어버렸군요. 검색을 할 때마다, 또 요약한 뉴스를 들을 때마다, 센틸리언은 자기네가 당신에게 적합하다고 판단한 정보를 선별해서 제공해요. 


우린 모두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에ㅔ랄드 성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센틸리언이 우리 눈에 씌운 두꺼운 초록색 고글 때문에 온 세상이 아름다운 초록빛으로 보인다고 믿는 거죠.

센틸리언은 우리를 조그만 거품 속에 가뒀어요. 그 속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은 전부 우리 자신의 메아리예요. 그래서 점점 더 기존의 믿음에 집착하고, 자신의 성향을 점점 더 강화해 가는 거죠. 우리는 질문하기를 멈추고 뭐든 틸리가 판단하는 대로 따르고 있어요.


수많은 비트는 사이의 것이었지만, 사이 본인은 아니었다. 사이에게는 비트로 저장할 수 없는 의지가 았었다 그리고 틸리는 사이가 그 사실을 잊게 하는 데에 거의 성공할 뻔했다. 


이제 인류는 사이보그입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의식을 전자의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아를 두뇌 속으로 다시 욱여넣기가 불가능합니다. 당신들이 파괴하려고 했던 당신의 전자 복제판은 문자 그대로 실제의 당신입니다.


센틸리언에는 틸리의 제안을 꿰뚫어보고 결점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공지능과 데이터 마이닝(대량으로 축적된 데이터에서 특정한 규칙 및 경향을 파악하는 일_옮긴이)에 공을 들여도 '완벽한 알고리즘'을 손에 넣기란 불가능하거든요. 두 분은 틸리의 결점을 파악했으니 틸리한테 뭐가 부족하고 뭐가 넘치는지 누구보다 잘 찾아낼 겁니다. 이거야말로 천생연분이지요. 두 분은 틸리를 개선해서 더 강력하게 만들 겁니다. 틸리가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두 분은 센틸리언이 단순한 알고리즘이자 컴퓨터라고 생각하셨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인간의 피조물이라는 걸 아셨을 겁니다. 저 같은 인간, 두 분 같은 인간이 이룩한 성과입니다. 두 분은 제가 뭘 잘못했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차라리 센틸리언과 함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피치 못할 운명과 마주쳤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적응하는 것뿐입니다.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알레시아인은 자신들의 글쓰기 체계가 다른 어떤 종족의 것보다도 우월하다고 믿는다. 알파벳이나 음절 문자, ㅍ의 문자로 쓴 책과 달리 알레시아의 책은 말뿐 아니라 글쓴이의 어조와 음성, 억양, 강세, 성조, 리듬까지 담아낸다. 이는 악보인 동시에 녹음이다. (...) 알레시아인에게 독서란 문자 그대로 과거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툴톡인은 우주 만물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툴톡인에 따르면 항성 하나하나는 살아 있는 텍스트이다. 초고온 가스의 대류 전류가 장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흑점은 구두점 노릇을 하고, 코로나의 광환은 과장된 수사적 표현이며, 플레어는 차가운 우주 공간의 깊은 침묵 속에서 진실처럼 들리는 강조 구절이다. 행성은 저마다 시 한수를 품고 있다. 그 시는 거칠고 뾰족뽀족한 암석질 핵의 스타카토 리듬으로, 또는 소용돌이치는 거대 가스층의 서정적이고 유장하고 화려하며 남성적인 동시에 여성적인 압운으로 쓴 것이다. 개중에는 생명이 사는 행성도 있다. 보석을 박은 정교한 시계 장치처럼 구성된 이들 행성은 스스로를 참조하며 반향과 재반향을 끝없이 거듭하는 문학적 장치를 겹겹이 품고 있다. 

그러나 툴톡인이 가장 훌륭한 책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곳은 블랙홀의 가장자리인 '사건의 지평선'이다. 우주라는 무한한 도서관을 거닐며 이 책 저 책을 읽다가 싫증이 난 툴톡인은 블랙홀을 향하여 둥둥 떠간다. 그녀가 귀환 한계점을 향하여 속력을 높이는 동안 우주에 흐르는 감마선과 엑스선은 궁극의 신비를 조금씩 드러내는데, 다른 모든 책은 이 신비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 블랙홀이라는 책은 점점 더 복잡하고 미묘하게 달라지는 방식으로 정체를 드러내고, 툴톡인이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방대함에 압도당하려 하는 순간, 멀리서 지ㅕ보단 그녀의 동료들은 경악하며 깨닫는다. 그녀의 시간이 느려지다가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그녀가 겨로 닿지 못할 중심을 향해 끝없이 추락하는 동안 그 책을 읽을 영원이라는 시간을 손에 넣은 것을. 

마침내 책 한 권이 시간에 맞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종이 동물원> 켄 리우 발췌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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