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 가정에 느닷없이 끼어든 한 여자의 등장으로 마치 내 영혼이 처참히 살해당한 것 같은, 엄청난 충격과 분노 속에 나를 잃고 너덜너덜하게 지내온 나날들이 있다.
모든 걸 파괴하고 싶을 만큼 증오에 휩싸였다가, 무기력하게 눈물만 흘리며 누워만 있다가, 슬픔이 일정 한계를 넘어설 땐 정신 나간 여자처럼 웃음이 터져 나와 멈추지 않곤 했다.
복수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받은 고통만큼 나도 그 사람을 헤집어야, 그래서 그 사람이 불행해지는 꼴을 봐야 속이 뻥 뚫리듯 통쾌할 거라고...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기분은 순간이라고....
통쾌함. 그 5분의 기분을 위해 나도 더럽힐 것이냐고 했다. 복수한 후의 결과의 책임은 오로지 내 몫이니 그런 마음이 들면 기도하라고 했다. 이 마음을 거둬가 달라고..
사실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라는 말은 최근에 시작한 명상에서도 많이 듣는 말이다.
감정은 그저 구름처럼 지나가는 것이니 거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단 말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도 확인이 된 것이기에 공감이 된다.
생각 역시 지나가게 두면 될 것을,
정작 내 생각은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데 기억을 움켜쥔 채 괴로워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누군가 "뿌린 대로 거둔다, 지금이 아닐 뿐 천벌 받게 돼있다."라고 하면 "그게 대체 언제냐, 아무 일 없단 듯 돌아가 저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않느냐."라고 따졌고, "알고 보면 그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 같아 적대감이 느껴졌고, "복수심은 자기 자신만 병들게 할 뿐이다."같은 말은 억울함만 극대화할 뿐이었다. 가장 그럴듯했던 "네가 행복한 게 가장 큰 복수다."라는 말에는 "그건 그냥 내 감정이지 내가 갈기갈기 찢겨 아팠던 만큼 상대에게도 타격을 준 게 아니잖아?" 하며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복수는 내가 받은 만큼 대갚음해 주는 것이 아니다. 통쾌함 역시 찰나에 지나가 버리고 사라질 성질이라면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상 기억은 과거를 소환하여 복수심은 또다시 올라오게 되어있다. 복수랍시고 해놓고도 시간이 지나면 또 "복수해야지" 하고 반복해서 이를 갈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억울함도 초월하는 자비로운 예수, 부처도 아니고 무조건 가해자를 보듬고 사랑하고 용서할 수는 없다.
하여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복수는 그 사건으로 인해 상대가 준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뿐 아니라 새롭게 얻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찰나에 지나가 버리고 사라질 감정에 휘둘리며 불필요한 책임과 대가를 만들지 말고, 그 일로 인해 배우고 성장하게 되면 오히려 그 시련이 "Thank You"가 될 수도 있다. 상대 때문에 지금껏 꾸려온 내 바구니를 잃은 것이 아니라 그 시련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낡았던 바구니를 더 튼튼한 새것으로 바꿀 수 있었으니 "고맙소이다."가 된다.
상대는 나에게 해를 입히고자 했는데 오히려 나에게 득이 됐다면 이것이야말로 통쾌한 복수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