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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e Sep 07. 2021

자유와 속박

갑자기 쏟아지는 빗소리에 얼른 다락방으로 올라가 창문을 열었다.  

차르르 물을 튀기며 달리는 자동차 소리도 좋고, 지붕 위로 빗방울이 토도독 토도독 떨어지는 소리도 좋고, 흠뻑 젖어 한결 짙어진 농도의 풍경도 좋다.

늘 시끄럽던 나무가 텅 비어있다. 비가 오면 그 많던 참새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창문에 맺힌 물방울 하나에 시선이 머물다 공상에 빠진다.

나치 수용소의 빅터 프랭클처럼 희망적인 미래로 떠나본다. 그러나 미래는 나를 과거로 굴려 보내고 아들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기다렸다는 듯 잠식한다. 

'남편과 죽네사네 했던 시기의 가정환경 때문일까, 아기 때 침대에서 떨어진 것 때문일까, 어쩌자고 아기를 혼자 침대에 뒀을까, 혹시 임신 중에 뭘 잘못 먹었나, 입덧 방지 주사를 맞아서일까, 좀 참을걸, 출산과정에서 내가 너무 힘을 못줘서 난산이라 이렇게 됐을까..'

그래도. 이제는 내게 조금 힘이 생겼는지 긍정의 생각도 조금 까분다.

'아니야, 그때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어.'

마침 저 멀리 딸아이가 하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산을 꼭 챙겨 보내지만 일부러 비를 맞고 달려오는 아이.

물이 고인 땅을 첨벙거리며 소리 높여 노래를 한다. “비야 비야 내려라 쑥쑥 자라라~”라고…

'저러면 감기 걸린다고 하지 말래도!' 하는 생각이 먼저 치고 올라오지만 이내 나도 모르게 만들어 놓은 안전이라는 틀(아이를 위한답시고- 하지만 내가 불안하지 않기 위한-결국엔 나를 위한 이기적인 틀)을 가볍게 깨버리는 딸의 모습이 다행스럽다.


그러나 한 시간 뒤에 돌아올 아들 녀석 분명 이런 모습일 것이다.

옷과 신발이 젖으면 큰일 날 새라 조심조심 작은 걸음으로 우산이라는 경계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채. 


아들이 나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역시 아들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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