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쏟아지는 빗소리에 얼른 다락방으로 올라가 창문을 열었다.
차르르 물을 튀기며 달리는 자동차 소리도 좋고, 지붕 위로 빗방울이 토도독 토도독 떨어지는 소리도 좋고, 흠뻑 젖어 한결 짙어진 농도의 풍경도 좋다.
늘 시끄럽던 나무가 텅 비어있다. 비가 오면 그 많던 참새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창문에 맺힌 물방울 하나에 시선이 머물다 공상에 빠진다.
나치 수용소의 빅터 프랭클처럼 희망적인 미래로 떠나본다. 그러나 미래는 나를 과거로 굴려 보내고 아들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기다렸다는 듯 잠식한다.
'남편과 죽네사네 했던 시기의 가정환경 때문일까, 아기 때 침대에서 떨어진 것 때문일까, 어쩌자고 아기를 혼자 침대에 뒀을까, 혹시 임신 중에 뭘 잘못 먹었나, 입덧 방지 주사를 맞아서일까, 좀 참을걸, 출산과정에서 내가 너무 힘을 못줘서 난산이라 이렇게 됐을까..'
그래도. 이제는 내게 조금 힘이 생겼는지 긍정의 생각도 조금 까분다.
'아니야, 그때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어.'
마침 저 멀리 딸아이가 하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산을 꼭 챙겨 보내지만 일부러 비를 맞고 달려오는 아이.
물이 고인 땅을 첨벙거리며 소리 높여 노래를 한다. “비야 비야 내려라 쑥쑥 자라라~”라고…
'저러면 감기 걸린다고 하지 말래도!' 하는 생각이 먼저 치고 올라오지만 이내 나도 모르게 만들어 놓은 안전이라는 틀(아이를 위한답시고- 하지만 내가 불안하지 않기 위한-결국엔 나를 위한 이기적인 틀)을 가볍게 깨버리는 딸의 모습이 다행스럽다.
그러나 한 시간 뒤에 돌아올 아들 녀석은 분명 이런 모습일 것이다.
옷과 신발이 젖으면 큰일 날 새라 조심조심 작은 걸음으로 우산이라는 경계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채.
아들이 나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나 역시 아들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