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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e Sep 03. 2021

자동적 사고

아들이 친구들한테 이용당하고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A라는 친구는 아들에게 어떤 일을 시키고, 거절 못하는(게다가 판단력도 떨어지는) 아들은 시키는 대로 하고. A는 그런 적 없다고 얍삽하게 빠져나가고. 아들은 혼자 뒤집어썼다.

남편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를 준다는 게 이미 나에게 된통 혼난 아들 입장에서는 듣기 싫었던 모양이다.


"조용히 좀 해. 요."

"뭐라고? 이 자식이!! 너 다시 말해봐!"

"조용히 해요."

"뭐야???? 다시 말해봐!!"

"아빠 자꾸 왜 그러세요? 조용히 하라고요."


난 곧 태풍처럼 몰아칠 다음 상황이 연상됐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여보 잠깐만"

"비켜봐. 저 자식이 지금 날 무시하잖아."


필사적으로 둘 사이를 막아서며 씩씩거리는 남편은 안방으로 아들은 아들방으로 분리시켰다.

우선 아들 방으로 따라 들어가 문을 닫았다.


"00야, 누가 어른말씀하실 때 조용히 하라고 하니. 아까 엄마한테 많이 혼나서 듣기 싫었던 거지? 그럴 때는 그만 얘기해주실래요?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빠는 아빨 무시했다고 생각이 되나 봐. 잘못했다고 사과드려"

"난 무시한 적 없어요! 그런 건 생각도 안 해봤어요. 조용히 하라고 하면 왜 안돼요?"


아들의 눈에는 억울함이 가득 고여있었다.


"00야, 그리고 아빠가 다시 얘기해보라는 건 진짜 다시 얘기하라는 게 아니야."

"그럼 뭔데요?"


어디서부터 얘길 시작해야 할지, 이 아이가 알면서 모르는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더 깊이 슬퍼졌다.


안방으로 건너가 보니 남편은 아직도 상기된 얼굴로 고르지 못한 숨을 내뿜고 있었다. 열에 아홉 낙천적인 남편이 열에 한번 뒤집어지는 순간이 바로 "무시당했다"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갇힐 때다.


" 00는 당신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아니, 무시한 게 맞아. 저 자식 다 알면서 저래. 저 싹수없는 행동을 지금 잡지 못하면 앞으로는 더할 거라고!"

"쟤는 진짜 몰라.. 의사 우리 애 모자라다잖아. 학습만 어려운 게 아니라 사회적 신호도 힘든 아이라니까. 그래서 친구들한테도 항상 당하는 거잖아."


아무리 이야기해도 남편에게는 그저 괘씸한 놈일 뿐이었다.

아이의 같은 행동을 보고 남편은 자길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치밀고, 나는 얼마나 모자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지고, 아이는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무섭기만 하다.


'무시했다'와 '모자라다'...

남편이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쌓은 왜곡된 믿음이 작동하듯 나는 의사가 결정지은 아이의 기본값이 핵심 믿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자려고 누운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는데 아이가 묻는다.


"엄마, 아빠가 다시 얘기해 보라고 할 때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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