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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e Jan 11. 2022

금쪽같은 아버지

얼마 만에 일기를 쓰는지 날짜를 따져보기도 귀찮을 만큼 무기력다. 나는 지금 전세금 반환 소송 중에 있고, 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에서 가전, 가구를 몽땅 처분하고 8개의 이민 가방 달랑 들고 집을 나왔는데 비자 승인이 늦어지는 바람에 남편,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얹혀는 상황이다.

친정 더부살이에 가장 큰 스트레스는 아버지와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것. 독재적이고 이기적이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아버지가 엄마를 찍어 누르는 걸 매일 보고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으로 탈출한 공간에 다시 들어와 보니 부모님은 조금의 발전도 없이 지겨운 패턴을 반복하며 부패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불평하고 짜증내고 빈둥거리다 식사하라는 말에 뜬금없이 밥을 안 먹겠단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는 밥을 안 줘서 직접 차려 먹어야 하는 신세라는 둥(안 주긴 누가 안 줘?), 이제 그만 살고 죽을 거라는 둥(이 말도 지겹다고), 혼자 나가서 살겠다는 둥(그러라고요). 늘 실행하지는 않을, 그러나 엄마가 들으면 식겁할만한 레퍼토리로 협박하며 달달 볶는다. 그렇게 괴롭혀놓고 막상 엄마가 다시 밥을 차려놓고 부르면 "안 먹는다고!" 하며 유치 찬란한 짜증을 냈다. 도대체 왜 저러나, 아니 또 시작이다 싶었다. 버지의 자발적 단식 횡포는 보통 한 달에 한번, 한번 시작하면 1~2주 정도 지속된다. 속도 없이 '배고픈데 왜 안 먹느냐'며 아버지를 달래 엄마 다른 방으로 잡아끌었다. 본인 먹는 걸로 집안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어 엄마를 굴복시키고 그 위에 군림려는 의도에 아직도 휘둘리는 엄마가 답답게 느껴졌다.

"안 먹겠다면 놔둬. 본인만 손해지. 말 같지도 않은 투정받아주지도 마."

엄마가 사정사정하면 먹어준다는 식의 아버지는 엄마의 사정이 빠지니 인의 고집만 남아 허기긴 채 주무다. 묘한 승리감이 느껴졌는데 한편으로는 안됐다는 생각이 올라와 내 속을 불편하게 다.


아버지는 생전 엄마에게 천 원 한 장 생활비를 가져다주신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엄마가 수중에 돈이 있으면 아버지를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집 밖으로 나가면 바람이 날까 봐 어디 나가지도 못하게 하시는데 마트만 다녀와도 어떤 남자를 만나고 왔냐며 사람을 잠도 재우지 않고 볶아댄다. 난 아버지의 이런 열등적인 집착이 잔인하고 징그럽게 느껴진다. 내가 듣다 듣다 이러다 엄마가 미쳐버리지 싶어 "그만 좀 해요. 엄마가 그럴 사람이야?"라고 소리치면 그럴 사람이 아닌 거 아는데 혹시 그런 일이 생길까 봐 이러는 것이라 한다. 아버지의 비이성적인 불안은 아버지가 자라온 어린 시절의 불우한 가정환경과 무능력함 기인한 것이라는 걸 알지만 언제까지 인간이 성숙이란 것이 없이  탓만 하며 지질하고 한심하게 살아가느냔 말이다.

그렇게 본인을 떠날까 겁이 나는 사람을 집 안에 가두고 잘해주느냐? 비난하고 욕설하고 무능하게 만들었다가 자책하게 만들었다가 불평불만의 쓰레기 받이가 되게 만드니 제발 이혼하고 따로 사셨으면 싶지만. 놔줄 사람도 아니다. 엄마가 선물 받은 장식품 하나, 먹는 것 하나 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없고 이런 아버지 독재에 쉬이 꺾이는 무력한 엄마를 보는 것 역시 나에게 상처가 돼서 아프다. 신경정신과나 상담소를 권유해도 본인은 문제없다 하시니 방법이 없다.


나의 금쪽같은(사실은 아주 끔찍한) 아버지의 열등과 불안은 엄마를 전염시키고 그러면 불안에 잠식된 두 분은 감사하게도 나에게까지 불안을 찍어 바른다. 마가 바람 날까 걱정되는 마음을 이미 불륜한 사람으로 만들어 추궁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종종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 이미 일어난 것처럼 화를 내곤 하시는데 잘못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순간에 그 잘못을 한 사람으로 만들어 자책하게  하거나 억울하게 만드는 이 행위를 나는 상당한 폭력이라고 느낀다.


어쨌든 숨이 턱턱 막히는 이곳에 다시 들어왔고 한 달 이상 지내야 하는 상황인데,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본다. 우선은 부모님과 나의 분리이다. 이 불행의 굴레는 나의 책임이 아닌 부모님의 책임이라고 계속 되뇌어본다. 엄마를 구해내겠다는 오만과 연민,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과 원망 내려놓는다. 특히 엄마를 내려놓는 지점에서 죄책감이 일지만 수년간  틈에 끼어 기를 쓰며 노력해보고 깨닫지 않았는가. 내 힘으로 타인을 화시킨다는  불가능하다는 걸 아는 이상 다시 한번 내려놓는다. 그리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걸 찾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  일기를 게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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