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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마음 공간 만들기

by 서린

햇살이 얼굴로 내리쬔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깬다.


개운하게 잘 잤다. 행복하다.


주말 동안의 피로가 여전히 몸에 남아있다.

이른 기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괜찮다.

이 정도면 충분히 휴식한 느낌이다.




거실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작은 아이가 눈을 비비며 다가온다.

내 품으로 쏙 들어올 수 있도록 앉아서 아이를 안아준다.


아이는 안겨있는 자세에서 다리가 불편하다며 눈을 감은 채 투정을 부린다.

오른팔을 더 안쪽으로 안아달라며 내 팔을 잡아당긴다.

작은 아이의 심기가 불편하다. 보챔이 이어진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뜻은 몸이 어딘가 불편하다는 뜻이다.



몸이 피로한 지 아이가 잠을 잘 못 잤나 싶다.



이내 큰 아이가 깬다.

내 품에 안겨있는 둘째를 보며 자기도 안아달라고 한다.

둘째가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은근한 쟁탈전이 시작된다.

첫째마저 투정을 부리려고 한다.



햇살이 쨍쨍하고 공기가 맑은 오늘.

두 아이 모두 인상을 찌푸린 채로 하루를 시작할 수는 없지!!


"엄마랑 샌드위치 놀이 할 사람!!"

내가 제안한다.



"엄마는 빵! 누가 상추할래!" 물으니 다행히 큰 아이만 손을 든다.

두 아이 모두 상추보다는 햄이 되고 싶어 한다. 더 맛있으니깐.


그런데 상추는 엄마 위에 누울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큰 아이는 둘째보다 두 살 더 먹은 만큼 더 영리하다. 햄이 되고 싶지만 내게 안기고 싶어 상추를 택한다.



두 아이를 모두 다 꼬옥 안아주고 기분을 풀어주며 안정감 있게 하루를 시작해 본다.





그러기도 잠시.

여전히 컨디션이 안 좋은 둘째가 또 울먹이기 시작한다.


'엄마는 맨날 오빠만 유치원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안 데려다주고....'

혼자 방구석으로 가서 웅크린다.


큰 아이 유치원은 셔틀이 없다. 내가 직접 바래다주어야 한다.

둘째는 셔틀을 타고 다닌다.

내가 큰 아이를 바래다주다 보니 둘째가 매일 서운하다.



아침부터 울고 보채는 둘째를 겨우겨우 잘 달래고 다독이느라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국 오늘 아침은 유치원 지각이다!!!!!!



부랴부랴 큰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데 2분 지각을 했다.

지각을 하면 엄마는 안에 데려다줄 수 없고 밖에서 선생님과 함께 들어가야 한다.


루틴이 깨지는 것을 너무나도 괴로워하는 첫째다. 말 그대로 '괴로워'한다.

큰 아이가 엄마의 다리를 꼭 붙들고 놓지 못한다.


오랜만이다. 나를 이렇게 붙들고 놓지 않는 모습.


작년이 떠오른다.

거의 일 년이 가깝도록 매일 아침 나의 다리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타이르기도 억지로 떼어놓기도 인형을 쥐어주기도 초콜릿을 쥐어주기도 했던 수많은 날들이 지나고 아이가 잘 적응해 준지 반년정도가 지났다.



오랜만에 붙들린 다리를 보여 또 아이가 짠하기도 하고, 나 역시 힘들고 괴로웠던 과거가 스쳐간다.



잠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지만 막무가내다.

눈 한 번만 보고 싶은데 그 한 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작년보다 힘도 세져 꼭 붙든 팔을 풀기가 어렵다.

오분 정도 실랑이를 하다 결국 억지로 팔을 떼고 도망치듯 나온다.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하늘은 이렇게나 화창하고

햇살은 이렇게나 따사롭고

공기는 이렇게나 맑고 상쾌한데

아이들의 마음은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것 같다.




카페인을 거의 안 마시려고 노력하는 요즘이지만

맛있는 커피 한 잔이 필요한 아침이다.

이상하게 마음이 중심에서 벗어나면 몸도 중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아이의 불안이 내게 전해졌는지 나의 행동도 심장의 쿵쾅거림을 찾는다.

거의 무의식에 가깝게 행동을 바꾼다.



"따듯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주세요. 아 아니요. 그냥 따듯한 아메리카노 할게요."



문득 운동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몸이 피곤할수록 더 건강하게 챙겨드셔야 피로회복이 빠릅니다.'


피곤할 때 달달한 디저트에 손이 자꾸 가는 내게 건네준 조언이다.



카페인은 이미 주문했지만 커피를 앞에 두고 노트북을 켠 채로 생각에 잠겨본다.



나는 아이들보다는 큰 어른이니 몸과 마음의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넓혀보고자 한다.

아이들의 불안이 전해지면 함께 동요되기보다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고,

뭔가 자극이 필요할 때 알아차리고 덜 자극적인 마실 것을 행동으로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오늘 내게 공간이 부족했나.

아냐 그래도 아이들 기분 풀어주려고 아침에 많이 노력했어.

이만큼이어도 충분해 괜찮아. 또 주문을 외워본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콩닥거림이 초조함을 가중시킬 수도 있음을 알지만 따듯한 햇볕이 내리쬐는 카페테라스에 앉아 그 초조함을 설렘으로 바꾸기로 마음먹는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할 일을 잠시 미루고 오늘의 아침을 글로 써보며 좀 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싱그러운 봄햇살, 새로운 만남, 즐거운 공부, 힘찬 한 주를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어본다.



요즘 나를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음악이다.

깊게 코로 내뱉는 나의 숨소리.



심장이 뛰고 있음이 느껴진다.

내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충분해.


공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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