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접난을 매우 좋아한다.
우아하고 단단해 보이는 꽃대와 꽃잎이 좋다. 호접난이 가지고 있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도 좋다. 무엇보다도 호접난이 좋은 이유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그 생각을 하면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꼭 엄청난 햇빛이 필요하지도 엄청난 물관리가 필요하지도 않다. 실내 어디든 원하는 곳에 놓을 수 있다.
호접난을 키우는 것은 친정 엄마의 취미였다. 엄마는 항상 꽃다발 대신 난을 선호하셨다. 일주일 남짓 감상할 수 있는 꽃다발보다도 석 달 정도 내내 아름다움을 유지해 주는 그 생명력을 좋아하셨다. 호접난의 꽃이 다 져도 화분을 몇 달 놔두고 관리해 주면 5-6개월 뒤엔 어김없이 새로운 꽃대를 틔웠다. 매일 집안 식물들을 관리하시면서 꽃대가 올라오면 어찌나 아이처럼 좋아하시던지. 우리에게 와서 꽃대를 구경하라고 이르시며 그 기쁨과 행복을 함께 나누셨다.
자연스레 그 취미가 내게도 돌아왔다. 혼자 살기 시작하고 나서는 어딜 가나 호접난을 보면 하나씩 샀다.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하나씩 피어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고 기특했다. 반면 꽃을 틔우지 못하고 죽는 봉오리를 보면 그렇게 마음이 아팠다.
사실 나는 매일 정성스럽게 난을 가꾸지는 못했다. 잊을만할 즈음 물을 한 번씩 줬고 기특하게도 생명력을 잘 유지해 주었다. 많은 관심을 주지 않아도 혼자서 얼마나 잘 자라는지 첫 번째 꽃대가 다 지고 몇 개월 뒤 두 번째 꽃대가 올라오면 그렇게 기뻤다. 어렸을 적 엄마와 느꼈던 행복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뿌리와 꽃대가 나오는 지점은 비슷하다. 처음엔 뿌리인지 꽃대인지 알기가 어렵다. 한 5mm 정도만 고개를 내밀면 그제야 분간이 간다. 새로 난 것이 꽃대인지 뿌리인지 판가름하기 위해 보내는 며칠간이 너무 행복하다. 너는 누구냐.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들여다보는 그 시간들이 제일 좋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뿌리는 아쉬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꽃대는 그렇게 기쁘고 환영받는 대상일까? 뿌리가 자라고 잎이 튼튼해야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꽃대를 올리는 것이거늘 꽃대에게만 유독 기쁨과 사랑을 건네준 지난날이 반성된다.
얼마 전 가까운 지인이 사진을 보내주었다. 내가 선물한 호접난에서 두 번째로 꽃이 개화한 사진이다. 너무 귀중한 순간을 함께 나누어주어 얼마나 마음이 벅찼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만개한 꽃 보다도 그 뒤에 줄지어 달려있는 꽃봉오리와 꽃의 생명력을 단단히 지켜주는 잎사귀에 더 눈이 간다. 보통은 먼저 피어난 꽃에 시선이 사로잡히지만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작고 단단한 꽃봉오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연둣빛 초록의 아름다움이 내내 마음속에 자리한다. 잎은 또 어찌나 단단하고 윤기가 흐르는지 잎사귀를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봉오리가 그 생명력을 이어나가 꽃으로 만개하는 순간까지 아직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꽃을 피지 못하는 봉오리도 많기에 걱정도 조금 된다. 이내 믿음으로 마음을 다스려본다.
'잘 자랄 것이라고 믿어.'
그리고는 미소와 함께 시선을 잎사귀와 뿌리에 오래도록 둔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