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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by 서린

이번 주 월요일부터 '나는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를 되새기며 하루를 시작한 지 4일 차.



새벽 5시 반쯤 아이가 또 깬다.


그 사이 나는 아이들의 새벽 기상에 조금 더 관대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초조하게 했던 것은 새벽에 글쓰기를 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마음만 관대하게 먹을 것이 아니라 기상 시간을 한 시간 앞당기기로 했다.



결심이 서면 초기엔 두 손을 불끈 쥐고 실행을 그래도 곧잘 한다. 사흘 째 하루 한 시간을 일찍 시작하는데 이 시간 동안 원하는 일을 모두 마치니 하루를 공짜로 사는 느낌이다. 너무 후련하고 상쾌하다. 체력이 얼마 나오래 받쳐줄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더 일찍 잠들어 이 패턴에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가 다섯 시 반이 되어 깨어났지만 난 이미 할 일을 거의 다 마쳤다. 여유로운 내 마음은 깨어나 서재방으로 온 아이를 꼬옥 품에 안아주고 눈이 부시지 않게 불을 끄고 뽀뽀를 해준다.


"잘 잤어? 우리 00이 새벽이라 졸릴 텐데 엄마랑 가서 조금만 더 잘까?"하고 물어본다.


아이가 끄덕이며 안방으로 가서 눕는다. 그러고는 내게 물어본다.


"엄마 왜 저번엔 일찍 깨서 엄마한테 자꾸 오면 혼난다고 했는데 오늘은 안 혼나?"


머쓱하고 미안해진다.


"응 엄마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소리를 했어 미안해. 엄마한테 아침시간은 정말 소중한 시간인데 오늘은 이미 충분히 보냈어. 그렇지만 엄마도 여유가 없을 땐 화도 나고 그럴 때가 있어. 그래도 이렇게 잘 이해해 주고 물어봐줘서 고마워. 얼른 자자 사랑해."


'나는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주문의 힘이었을까.

아이를 편한 마음으로 다시 재우는 데 성공했다.



나는 성장의 동력으로 내가 나를 부족하다 생각하지 말자 재촉하지 말자 지난 2년간 되뇌었다. 살면서 그동안 은연중에 나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결핍이 나를 채찍질했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내가 되려는 마음은 뭔가 지금 상태에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만족이 잘 찾아오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다음 목표가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언제나 겨우 목적지에 도달하자마자 무한 부족의 상태로 돌아가는 쳇바퀴에 빠진 것 같았다. 채우기에 급급했다.



멈추고 뒤돌아보니 난 지나치리 마치 너무 충분했고 그 감사함을 몰랐다.


여유와 행복을 만끽하는 요즘이지만 그 안에서도 때때로 조급함과 초조함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젠 그런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내 기분을 좀 더 면밀하게 알아차리려고 한다. 호흡이 가빠지고 미간이 찌푸려질 때 그 순간 나를 본다. 그럼 거의 대부분 ‘충분함’이 ‘부족함’으로 변해있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충분함으로 다시 인식할 수 있도록 내가 마음을 바꾸거나 삶에서 사소한 변화를 선택하면 그만이다.



항상 여유롭고 항상 평온하고 항상 충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깨달음을 얻은 분들은 가능하겠지만 나는 아직 아니다.



이젠 이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원래 그런 거야.



물속에 돌멩이가 풍덩 떨어지면 수면이 출렁이며 물결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잠시 지나면 파동의 진폭도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요해지기 전까지는 여전히 오르락내리락 물결이 움직인다. 때로 찾아오는 ‘충분한가?’에 대한 의구심도 그냥 그런 과정의 일환인가 보다 싶다.



나의 수면이 잠잠해지길 기다려본다.



언젠가 물 위로 대왕 돌덩어리가 떨어지는 날이 또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잔잔해져 가는 물결만 바라본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알면 된다.



물 안에 있으면 함께 출렁여서 정신이 없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언젠가는 수면이 고요해지게 되어있는 것을.



한 걸음만 물러나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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